
죽음, 사랑, 슬픔, 행복, 우정.
이 모든 단어를 하나로 묶으면 결국 ‘삶’이라는 말이 된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은 섬세하고 조밀한 인물 지도를 펼쳐 보이는 소설이다. 하늘의 빈 공간을 찾아 가지를 뻗는 나무처럼 작가가 만들어낸 수많은 주인공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살아가다가 서로의 삶에 닿는다. 그 접점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필연에 가깝다.
아드레날린 중독자인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이가윤이 만난 환자는 조양선의 딸 승희이고 배윤나는 최애선의 며느리이자 이환의의 아내다. 하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다른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삶이 그렇듯 소설 속 인물들의 삶 역시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삶과 앎은 한 끗 차이라고 한다. 『피프티 피플』이 보여주는 삶이란 결국 사람을 알고 관계를 알고 그 안에서 죽음과 사랑, 슬픔과 행복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 소설을 읽는 경험은 약 5,000조각짜리 퍼즐을 맞추는 일과 닮아 있다. 퍼즐의 한 조각은 인물의 대사 한 줄, 사소한 행동 하나, 잠깐 스쳐가는 생각이다. 하나의 조각이 제자리를 찾으면, 독자는 다시 다음 조각을 찾기 위해 페이지를 넘긴다. 이 반복 속에서 이야기는 서서히 형태를 갖춘다. 이는 작가가 구성한 책의 구성과도 일치한다.
특히 마지막에 배치된 「그리고 사람들」이라는 챕터는 이 퍼즐의 완성에 해당한다. 흩어져 있던 인물들이 마치 영화관의 각 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처럼 제자리를 찾은 순간, 독자 역시 그 공간의 일부가 된 기분을 느낀다. 나는 그 장면이 영화관 E열 3번 좌석에 앉아 있다가 함께 대피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작가는 그 느낌을 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이 감각은 서사 밖에서 책을 읽는 서사 외적의 시간이 인물들이 살아가는 서사 내적의 시간과 비슷한 밀도로 흘러가기 때문에 가능하다.
다시 말해 피프티 피플 –엄밀히 말하면 51명, 그리고 그 이상이지만- 에 포함된 인물들의 사건은 이름 챕터로 구분되어 있지만, 같은 시간선 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면서 서사 외적 시간과 내적 시간의 비슷하게 진행되는 결과가 만들어지고 독자는 그 모든 시간을 한 사람의 시선으로 겹쳐 경험한다.
50명(사실은 51명) 중에서 발견하는 내 얼굴
이 소설의 또 다른 즐거움은, 51명의 인물 중에서 자신의 모습과 닮은 누군가를 발견하는 일이다. 이름이 같아서가 아니라 성격이나 처지, 감정의 결이 닮아서다.
나 역시 ‘죽음’, ‘가족’, ‘사랑’으로 엮인 인물들을 읽으며 여러 번 멈춰 서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죽음은 언제나 가깝다. 인명 사고, 무책임한 분노, 비용을 아끼다 발생한 현장의 사고처럼 비자연적인 죽음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러나 정세랑은 죽음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 곁에 남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랑을 함께 꺼내 든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나는 이 인물들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첫 번째로 마음에 남은 인물은 ‘송수정’이다.
송수정은 결혼식을 준비하는 예비 신부이며, 그녀의 엄마는 암에 걸린 상태이다. 그렇기에 수정의 눈에 자신의 결혼식은 기쁜 날임과 동시에 엄마의 장례식이기에 슬픈 날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아직 결혼도, 장례도 경험하지 않았지만, 그 감정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치마를 흔드는 엄마의 사락사락함을 평생 기억하겠다는 수정의 말 앞에서, 나 역시 엄마의 어떤 모습을 끝까지 기억하게 될지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결혼식과 장례식이 같은 시공간에 놓일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정세랑 작가 작품의 첫 주인공에게 더욱 시선이 가는 듯하다.
두 번째는 ‘유채원’이다.
유채원은 적재적소 능력이 뛰어난 외과 의사로 효율적인 인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적재적소란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씀. 또는 그런 자리.’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나는 이 단어를 고등학생 때 처음 접하게 되었고 하나의 좌우명처럼 생각했다. 적재적소에 들어가는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유채원은 인간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여기가 아니었나. 여기인 줄 알았는데. 어딘가 정확한 자리, 적합한 자리, 제자리를 찾고 싶었다.”(65)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쉽게 해결할 수 없다.
글을 쓰면서도, 이 방향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채원이 “하지만 세계는 효율적이지 않지.”(65)라며 찰나의 긍정을 낚아챈 것과 같은 도전이 필요하다. 세계는 효율적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간다.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글쓰기 역시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 번째는 ‘브리타 훈겐’이다.
최고의 안경 모델이자, 자신의 사진을 찾아서 먼 한국으로 온 인물이다. 그녀는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안다. 자신이 모델로 찍힌 사진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화도 내지만, 이내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어를 배우고 끝내 자기 얼굴 사진을 찾아낸다. 나 역시 그녀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독특한 이름을 가진 덕분에 한 번도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가족과 여행을 간 군산에서 ‘은파’라는 간판을 굉장히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 내내 은파 병원, 은파 레스토랑, 은파 호수 공원 등 여러 간판에서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이처럼 일상의 사소한 행복을 느끼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정세랑 작가 역시 이러한 행복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네 번째는 ‘김한나’다.
김한나는 8년 동안 계약직 사서로 일하다가 임상실험 책임자가 되었다. 책을 좋아하며 누군가를 상상할 때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이 읽을 법한 책을 상상하는 독특한 사람이다. KDC에 따라서 100번대 책이 몇 퍼센트, 200번대 책이 몇 퍼센트, 와 같이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해주면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는 순수한 사람이다. 사람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이 있는 사람이기에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한나는 마치 ‘하나뿐인 나’의 줄임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나뿐인 나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인 결혼, 안정된 직장 찾기보단 원하고 좋아하는 일인 책과 연관된 행위를 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북트럭을 구매하여 실험자들이 무료하지 않도록 본격적으로 책 추천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치 <개미와 베짱이> 이솝 우화에서 성공한 베짱이와 같은 인물이다. 내 꿈의 인물이다. 좋아하는 일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베짱이 같은 김한나, 나 역시 그런 삶을 꿈꾼다.
그리고 다섯 번째 주인공은 결국 ‘나’다.
소설 속 인물들이 각각의 지면에서 조명되는 것처럼 독자인 우리네 역시 각자의 지면에서 조명되어 빛나야 한다. 삶의 주인공은 언제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국 우리는 오늘도, 이어질 날들도 살아가야 한다.
책을 덮으며 남은 문장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문장, 공유하고 싶은 문장, 주인공들이 나에게 말하는 듯이 느껴지는 문장들을 남겨두고 싶었다.
“서른다섯인 양선은 거울 속의 자신을 마흔다섯으로, 마음속의 자신을 쉰다섯으로 착각하곤 했다.”
- 25p
삶에 지친 양선에 대한 문장을 보며 거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거울은 우리의 얼굴을 가장 가까이서, 스스로 직면하게 도와준다. 마음속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공간에서 인물은 실제 나이보다 자신을 더 늙게 본다. 이 문장을 통해서 양선이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이자 세월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하고 담아내고 있는 문장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알고 있었어, 내가 좋아한다는 걸. 내가 내내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언제부터 알았을까? 아마도, 눈만 보고.”
- 100p
아마도, 눈만 보고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것. 이는 혼자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섬세한 문장을 촘촘하게 유지시키는 정세랑 작가의 능력에 대단함을 느꼈다.
“알고 보니 세상에서 자기 아프다는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 시인들이었다. (…) 우리가 쓰는 시가, 사실은 간질의 후유증이면 어떡하지? 발작 같은 것이면 어떡하지? 윤나로서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 103p
시인은 아픈 사람이라는 문장으로 치환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시를 쓰는 사람이지만, 항상 아픈 지점, 아팠던 부분을 꺼내와 문자로 나열하게 된다. 이때 역설적인 것은 내가 스스로 그게 아픈 것이라고 확신하여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아픈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여전히 그 문제로 낫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에 관해서 말하는 문장도 있다.
“큰 파도를 하는 것과 비슷했다. 파도가 부서질 줄 알았는데 계속되었다. 평생 그랬다. (…) 별로 욕심이 나지 않는다. 발밑에서 큰 파도가 다 부셔져도 좋다. 지금껏 너무 많이 가졌다. 잃어도 좋다.”
- 118p
나 역시 이호처럼 운이나 인생을 파도에 비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항상 파도 위에서 서핑하는 서퍼가 되고자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경험하지 못했던 거대한 파도가 닥쳐오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피프티 피플』은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결국 한 사람의 삶을 향해 수렴한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은 책을 덮은 뒤의 ‘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