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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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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에는

영화 <주토피아 2>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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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 2> 공개 이후 가장 많이 회자된 질문이 있다. 닉과 주디는 과연 우정일까, 사랑일까.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닉과 주디는 닮은 구석이 적어 보인다. 주디는 세상을 구하기 위한 이상과 정의를 따라가고, 닉은 현실을 먼저 따지는 정반대의 파트너다. 이 차이로 인해, 둘은 잠시 떨어져 다른 길을 걷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이 둘의 어긋남을 관계의 실패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관계가 되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로 보여준다.


중요한 변화는 두 인물이 다시 마주하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바라보고, 다름을 인정한다. 이 지점에서 닉의 “내 무리는 너야”, 주디의 대사 “너는 내 솜뭉치야”라는 자신들만의 언어를 통해 서로를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인정한다.


필자는 이 장면을 보고, 이 관계는 더 이상 우정으로만 볼 수 없는 관계임을 깨달았다. 함께 위기를 해결하는 동료를 넘어, 서로의 세계 안에서 이름 붙여진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흔히 다른 영화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로맨스와는 결이 다를 수 있지만, 우정보다 깊은 관계임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 둘의 감정 흐름과 주토피아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치가 바로 OST ‘ZOO’다.

 

 

 

 

Hey, oh-ayy, only reason we are here is to celebrate

우리가 여기 있는 유일한 이유는 축하하기 위해서야


In a place where anyone can be anything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이곳에서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사는 주토피아의 이상을 나타낸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차별 없이 받아줄 누군가가 존재하느냐는 점이다. 닉과 주디는 서로의 존재를 통해 이 문장의 의미를 완성한다.


<주토피아 2>는 끝내 우정과 사랑을 구분 지어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이 영화는 관객에게 ‘포용’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지 않는 태도,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용기. 이 모든 것이 모여 이루어낸 포용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한 것이다.


<주토피아 2>가 그려내는 포용은 사회적 메시지를 넘어, 서로 간의 관계에 해당하는 언어로도 관객에게 남는다.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곳에서, 누군가에게 무리이자 솜뭉치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끝내 말하고자 한 유토피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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