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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한 해의 마지막을 실감하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때일 수도 있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일 수도 있다. 공연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내년에 올라올 공연 리스트를 하나씩 훑어볼 때다. 이때 연말이 다가옴을 느낀다.


새해 다짐을 적듯이 내년에 보고 싶은 뮤지컬을 마음속으로 정해본다. 물론 새해 다짐이 쉽게 지켜지지 않듯이 보고 싶다고 마음먹은 공연을 모두 보지는 못하기도 한다. 일정과 비용, 타이밍이 맞지 않아 놓치는 작품들도 많다. 올해 역시 많은 공연을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봤던 공연들이 다 기억에 남고 의미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올해의 끝에서 2025년에 내가 만났던 뮤지컬을 돌아보고 2026년에 꼭 보고 싶은 공연들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특히 내년에는 이미 한 번 봤기에 다시 보고 싶은 작품들과 제목만으로도 기대가 커지는 새로운 공연들이 눈에 띈다.


먼저 올해 내가 관람했던 세 편의 뮤지컬부터 돌아보고 싶다. 앞서 말했듯 올해는 많은 공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선택을 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본 공연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여성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 혹은 여배우가 서사의 중심에 서 있는 작품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가지 말하고 싶은 건 나는 남배우, 여배우를 구분하는 호칭이 싫다. 성별 구분 없이 모두를 다 배우라고 칭하고 싶다.

 

 

 

2025년, 올해의 나를 만든 세 편의 뮤지컬



 

이프덴, 라이카, 레드북.

올해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세 편의 뮤지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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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덴>은 올해 첫 뮤지컬로 선택한 작품이었다. 보통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면 선택하지 않은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뮤지컬 <이프덴>은 그런 당연한 전제를 뒤집는다.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서로 다른 두 개의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선택에 따라 삶의 모습은 전혀 달라지지만, 각각의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살아간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이 삶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어느 한쪽의 인생이 정답이고 어떤 선택이 옳았는가 보다 선택한 이후를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뮤지컬처럼 느껴졌다. 다른 선택, 다른 삶, 다른 후회와 만족. 그 모든 길이 결국 하나의 사람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올해의 나 역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순간이 있었다. 고민 끝에 하나를 선택했지만, 그 선택을 한 직후에는 오히려 후회가 더 컸다.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내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선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선택하지 않았던 길 위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다른 방식으로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올해의 시작으로 이 작품을 보았다는 사실이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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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라이카>는 단연코 올해 최고의 뮤지컬이었고 자연스럽게 인생 뮤지컬이 된 공연이다. 창작 초연 뮤지컬이라는 점도 인상 깊었지만 우주로 보내진 강아지 라이카의 이야기와 소설 『어린 왕자』의 세계를 엮어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낸 방식이 특히 좋았다. 기다림과 사랑,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요소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라이카가 B612에서 어른이 된 어린 왕자와 여러 존재를 만나며 겪는 일은 따뜻하면서도 잔인하다. 특히 반복되는 "기다려"라는 말은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되묻게 만든다. 사랑받았지만 동시에 상처받았던 캐롤라인과의 관계는 인간의 모순적인 얼굴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 이야기가 더 마음에 남는 이유는 결국 이 세계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는 존재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혈연은 아니지만 함께 머물고 기다리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동화 같아서 더 아름답다. 이 모든 서사가 사실은 인간이 만들어낸 꿈이라는 점도 오히려 이 작품을 더 사랑하게 만든 이유다.


<라이카>는 올해 내가 가장 많이 본 공연이었고 내 생일에도 보러 갈 만큼 애정이 깊은 작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히 '좋았던 공연'을 넘어 올해의 나에게 가장 가까웠던 이야기로 남아 있다. 최근 다양한 부문에서 '제10회 한국뮤지컬어워즈 노미네이트' 소식을 접하며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마음도 커졌다. 하루라도 빨리 <라이카>가 무대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그때까지 기꺼이 기다릴 생각이다.


<레드북>은 재미를 넘어 나에게 하나의 계기가 된 공연이다. 이 작품을 보고 처음으로 '나도 글을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분명해졌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글이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지원을 위한 첫 오피니언이 되었고, 그래서 <레드북>은 올해 내가 본 뮤지컬 중 가장 직접적인 의미가 있는 작품이 되었다. 안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적듯이 나 역시 <레드북>을 계기로 나의 언어로 생각을 기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돌아보면 올해 내가 만난 뮤지컬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조금씩 바꿔 놓았다. 선택 이후의 삶을 보여준 <이프덴>, 기다림의 의미를 알려준 <라이카>, 그리고 나를 말을 하는 용기를 건넨 <레드북>까지.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남은 공연들이었다. 공연을 많이 보지 않았어도 한 해를 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들은 충분히 쌓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년에 볼 공연들이 기대된다. 특히 정말 좋아했던 뮤지컬들이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은 내용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더 큰 기대를 품게 만든다. 장면과 노래를 미리 알고 있어서 그 감정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렌다. 동시에 아직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작품들 역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함께 놓인 내년의 공연 리스트 속에서 기대되는 몇 작품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026년, 새해를 기대하게 만드는 공연들


 

 

엘리자벳, 디어 에반 핸슨, 레베카,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새해를 기대하게 만드는 공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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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엘리자벳>은 <라이카>를 만나기 전까지 나의 인생 최고작이었다. 처음으로 세 번 이상 관람했고 다른 지역까지 따라가며 볼 만큼 애정이 깊은 작품이다.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보았지만, 무대 위에서 흘러나오는 넘버와 연출에 예상보다 깊게 빠져들었다. <디어 에반 핸슨>은 추천받아 처음 관람한 작품으로 공연 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따라가고 스크린을 사용한 무대 연출 역시 오래 기억에 남는다. <레베카>는 중학생 시절 음악 시간에 접했던 영상이 떠올라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친한 친구와 봤는데 실제 무대는 그때의 기억을 훨씬 뛰어넘는 경험이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좋아했던 동명의 원작 애니메이션 영화가 무대 위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지에 대한 기대를 안긴다. 그리고 뮤지컬 은 제목만으로도 시선을 붙잡는다. 또한 여성 서사를 중심에 둔 작품이라는 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다.


이 작품들 외에도 마음이 이끄는 공연들을 더 많이 만나보고 싶다. 내년에 볼 공연 목록을 바라보며 아직 오지 않은 2026년을 조금 먼저 기대하게 된다. 다시 만나고 싶은 이야기들과 처음 마주할 새로운 무대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설렌다. 연말이 되어 다음 해의 공연 리스트를 들여다보는 이 순간이야말로 공연을 좋아하는 내가 한 해의 끝과 다음 해의 시작을 동시에 실감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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