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너무 금방 찾아와버리는 계절이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창밖을 바라봤을 때 보이는 풍경은, 이제 여유로운 파랑이나 기다렸던 주황이 아니다. 헛헛한 검정이다.
거리를 나선다. 얼굴에 부딪혀오는 바람이 차가워 고개를 절로 숙이게 된다. 땅바닥만 보고 걸으며 몸은 움츠러들고, 발걸음은 괜히 더 무겁다. 그리고 얼른 행선지로 도착하고픈 마음이 간절해진다. 겨울 밤은 그런 밤이다.
얼마 전이 동짓날이었다. 한 해 중 밤이 가장 긴 날. 절기 상으로는 12월 22일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각자 기억하는 가장 길고 추웠던 밤은 그날이 아니라 저마다 다르지 않을까. 작년의 나의 동지는 언제였는지 떠올려 본다.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의 동지는 만연한 봄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게 언제였든 간에 길고 긴 밤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깜깜하며 외롭다. 그런 밤이 찾아올 때면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에게 그 답을 알려주었던 것은 어느 코뿔소와 펭귄이었다. 지구상 단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 '노든'은 '펭귄'과 함께 바다를 향해 걸으며, 코끼리 고아원을 떠난 뒤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설픈 위로로 악몽을 깨워준 긍정적인 코뿔소 '앙가부'와, 버려진 알을 돌보고 바다의 존재를 알려준 펭귄 '윔보' 그리고 '치쿠'까지. 그들의 알에서 태어나 성장해 나가는 '펭귄'과 그렇게 길고 긴 밤을 함께 걷는다.
노든이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 걸었던 밤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함께 걷던 이들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를 잃어버리는 고통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 또한 알고 있었다. 펭귄에게 자신이 겪었던 슬픔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노든은 눈앞에 지평선이 보이는 어느 길 위에서 이만 작별을 하자고 한다. 펭귄은 노든에게 같이 바다에 가자고 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그러자 펭귄은 자신도 바다에 가지 않을 거라고 한다. 자신은 코뿔소가 키운 펭귄이니까, 펭귄보다 코뿔소가 되는 것이 더 쉽다면서. 그리고서는 서럽게 눈물을 쏟으며 말한다. "그러니까 혼자 보내지 마요" 그러자 노든이 말한다. "이리 와 봐. 이야기를 들려줄게."
이러한 그들의 애틋한 작별을 담은 넘버이자 내 눈물 버튼을 소개하고자 한다. 작품의 제목과 동일한, "긴긴밤"이다.
아직 난 모르겠어요
살아남아야 한단 거요
그냥 이렇게 이대로 노든 곁에 있고 싶어요
길고 긴 밤
해 떠도 끝나지 않는 밤
앞이 깜깜한 밤
계속 잃어버리는 밤
펭귄이 부르는 이 가사에서, 항상 나의 길고 길었던 밤과 그때 느꼈던 막막한 감정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이 부분을 들으면 울컥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이 넘버는 다음과 같은 가사로 그때의 나와 그때를 겪은 지금의 나를 위로해 준다.
살아남는 건 그렇게 계속 걷는 것
살아 볼 만해 우리 함께 있으면
이 가사가 그 밤 속을 '계속 걸어왔기에' 비로소 맞게 된 아침을 기억하게 해준다. 살아남는 건, 대단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지금껏 그래왔듯이, '계속 걷는 것'이다. 이 말을 되새기며, 나는 이 넘버를 들을 때마다 또다시 맞이하게 될 밤들 또한 그렇게 계속 걸어보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노든이 길고 긴 밤을 겪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속에서 함께 걸었던 이들과 나눴던 온기와 추억 때문이었다. 바람보다 더 빠르게 달린 기억이, 악몽을 깨워준 어설픈 위로가, 사막 한가운데 함께 그린 바다가 그를 멈추지 않고 계속 걸을 수 있게 했다. 비록 그러한 기억을 함께한 친구들을 잃었기에 노든의 밤은 아프고 길었지만, 그는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밤이 완벽한 밤이었다고 노래한다.
이 가사는 펭귄에게 건네는 말이지만, 나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와닿기도 한다. 특히 "네가 있어 줬기에 완벽한 밤, 너의 모든 밤도 그럴 거야"라는 가사가 가슴 깊이 박힌다.
우리는 모두 밤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밤을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긴긴밤이 완벽한 밤이 될 수 있다. 노든과 펭귄은 서로 그러한 존재였다. 하지만 작별의 순간에서, 노든은 자신이 아니더라도 펭귄이 완벽한 밤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거라고 축복해 준다. 그런 마음씨가 닮고 싶을 정도로 어여쁘다. 그리고 만약 나도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게 된다면, 노든처럼 그렇게 말해주겠다고 다짐하게 한다.
노든이 펭귄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넨다. "넌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그러자 펭귄이 노든에게 외친다. "노든도 훌륭한 펭귄이에요."
작품을 보고 나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누군가와 길고 긴 밤을 함께 걷는 사람이었나. 그랬다면 그 밤은 완벽한 밤이었을까. 나는 훌륭한 코뿔소가 될 수 있을까. 훌륭한 펭귄이 될 수 있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같이 걸으며 그 숱한 발걸음을 버틸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려줄 줄 아는 이가 되고 싶다.
온 세상에 추위가 만연하다. 아직 다가올 겨울 밤이 많이 남았다. 그렇지만 계속 걸어볼 것이다. 나와 걷는 이와 같은 종이 되어가면서.
따스한 진심을 담아, 당신의 동짓날을 함께 걸을 작품으로 <긴긴밤>을 추천한다.
(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 @library_theat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