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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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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바탕 연극과 같다.”

 

셰익스피어의 이 오래된 문장은 국립극단의 연말 공연 〈태풍〉에서 더없이 구체적인 장면으로 되살아난다. 2025년 국립극단의 마지막 라인업 작품인 〈태풍〉은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걸작 『템페스트』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불러낸다. 공연은 시작과 끝에서 끈질기게 관객에게 상기시킨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이 모든 것은 ‘연극’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렇기에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는 역설을. 복수 대신 용서를 택한 고전의 통찰은, 미움과 분노가 일상이 된 지금 이 시대에 오히려 더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미움의 시대에 용서를 말하다


 

이번 극이 올려지는 명동예술극장은 한국 연극사에서 ‘고전’이 가장 자주 현재형으로 갱신되는 장소다. 번화한 거리 한복판에서 극장은 늘 시대의 소음과 호흡을 나눠왔고, 그 상징적 공간에 셰익스피어가 다시 한번 호출되었다.〈태풍〉이 이 공간에 오른다는 사실은 단순한 공연 일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연출을 맡은 박정희는 기술적 효과를 최소화하고 배우, 언어, 그리고 관객의 상상력에 집중한다. 이번 극이 구현하는 무대는 사실적인 무인도가 아니라, 현실과 환상이 겹쳐지는 ‘연극적 공간’에 가깝다. 이곳에서 고전은 박제된 텍스트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향해 말을 거는 살아 있는 질문이 된다.


작품은 동생 알론자의 배신으로 밀라노의 권좌를 빼앗기고 딸 미란다와 함께 바다로 내쫓긴 ‘프로스페라’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외딴섬에 도착한 그녀는 12년의 세월 동안 마법을 익히며 살아가고, 마침내 자신을 몰락시킨 이들이 탄 배가 태풍에 휩쓸려 섬에 도착하자 복수의 기회를 맞이한다. 프로스페라의 마법 아래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섬에서는 권력에 대한 욕망, 배신과 음모, 사랑과 연대가 뒤얽힌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이야기는 통쾌한 응징이 아닌, 복수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가 무엇을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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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인상적인 지점은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연극이 시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객석의 불이 완전히 꺼지기 전, 무대 위에는 몸을 풀고 발성 연습을 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인물 이전에 ‘배우’로 존재하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곧 보게 될 세계가 허구임을 숨기지 않는다. 이어 갑판장이 객석에서 등장해 상황을 전개시키는 장면은 관객을 이야기의 외부가 아닌 내부로 끌어들인다. 태풍은 무대 위에서만 몰아치지 않는다. 관객이 앉아 있는 이 공간 자체가 이미 사건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메타극적 장치는 셰익스피어가 말한 “세상은 무대”라는 인식을 오늘의 극장 문법으로 번역한다. 우리는 연극을 ‘본다’기보다, 잠시 그 안에 참여한다.


그리고 이 무대의 중심에는 관록의 배우 예수정이 있다. ‘프로스페라’ 역을 맡은 그는 과장된 마법사나 비극적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고, 오랜 시간 내면을 숙성시킨 인물로 무대를 이끈다. 그의 연기는 분노를 외화하기보다 눌러 담는 쪽에 가깝고, 그 침착함은 오히려 복수의 가능성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권력을 가졌으되 쉽게 행사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프로스페라는,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용서의 무게’를 설득력 있게 체현한다.


미란다 역의 황선화는 순수함과 현실 감각을 동시에 지닌 인물로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에어리얼 역의 이경민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환상의 결을 섬세하게 완성한다. 칼리반을 연기한 홍선우는 억압과 분노, 비틀린 욕망이 교차하는 인물을 통해 작품의 어두운 층위를 밀도 있게 드러낸다. 이외에도 알론자, 안토니오, 세바스찬 등 권력과 욕망의 얼굴을 상징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에너지로 무대를 채우며, 선악의 이분법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 군상을 입체적으로 완성한다. 국립극단 시즌 단원들과 개성 있는 배우들의 앙상블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이 세계를 단단하게 지탱한다.

 

 


‘프로스페로’에서 ‘프로스페라’로 ― 권력과 용서를 다시 묻는 여성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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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태풍〉의 가장 중요한 재해석은 주인공을 남성 ‘프로스페로’에서 여성 ‘프로스페라’로 바꾼 선택이다. 이는 단순한 젠더 스와프를 넘어, 권력과 복수, 용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재구성한다. 여성 주인공으로의 각색은 ‘용서’라는 선택을 감정적 미화가 아닌 능동적 결단으로 읽게 만든다. 이는 오래도록 남성 서사의 결말로 소비되어 온 용서의 개념을, 다시 사유하게 하는 지점이다.


〈태풍〉은 관객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복수는 정말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오늘날 분노는 너무 쉽게 소비되고, 미움은 정당한 감정처럼 유통된다. 그런 시대에 〈태풍〉은 불편할 정도로 느린 질문을 던진다. 모든 것을 되갚을 수 있는 힘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작품은 유토피아가 먼 어딘가에 있는 이상향이 아니라, 이미 삶 안에 존재할 수 있음을 조용히 암시한다. 그 깨달음은 인물보다 관객에게 먼저 도착한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 프로스페라는 관객을 향해 말을 건다. “여러분께서 모든 잘못으로부터 용서받으시듯, 여러분의 즐거움이 절 풀어주시길.” 이 장면은 극의 종결이자, 질문의 시작이다. 마법을 내려놓는 인물은 이제 관객에게 선택을 넘긴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 극장을 나서는 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는 어떤 역할을 선택할 것인가. 타인에 대한 관용과 용서가 곧 스스로의 해방과 즐거움으로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메시지는 긴 시간을 넘어 현대의 관객들에게까지 녹아든다.

 

그래서 이번 공연은 단순히 셰익스피어를 기념하기만을 위한 공연이 아니다. 시대와 성별을 넘어 인간의 내면을 응시하는 질문, 그리고 그 질문을 오늘의 극장 언어로 다시 묻는 용기. 그 모든 것이 한데 모여 지금 우리의 마음을 건드린다. 연말의 명동에서, 이 태풍은 파괴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기적의 마법으로 관객을 휩쓴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혁명적인 선택은, 어쩌면 용서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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