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부업으로 책을 쓰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나에게 출판이란 약간은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어릴 때부터 작가라는 직업을 동경해 와서일까. 나는 여전히 작가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내게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는 나와 ‘출판’이라는 세계의 거리를 대폭 줄여준 책이었다. 이 책은 ‘작가가 될 수 있는가?’를 묻기보다, 이미 내가 가진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를 질문하는 책처럼 느껴졌다.
저자 임승수는 20년째 인문·사회 분야의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누구나 한 번쯤 궁금했을 법한 도서 인세, 전업 작가의 수입, 투고 방법, 출판 계약서의 주요 내용, 편집자와 협업하는 방식까지 어디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현실적인 출판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낸다.
책의 초반부부터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저자의 이력이었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인문사회 분야를 중심으로, 와인·예술·역사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책을 집필해왔다. 책의 제목처럼 과연 ‘나의 무엇이 책이 될 수 있는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저자는 독서 생태계를 단일한 취향의 세계로 보지 않는다. 깊고 촘촘한 분석을 원하는 독자, 입문자를 위한 친절한 설명을 찾는 독자, 서사를 따라가며 읽고 싶어 하는 독자까지, 독자층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 그리고 이 다양한 수요 속에서 각자의 ‘쓸모’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독서 생태계에는 다양한 독자층이 존재한다. 어떤 독자는 깊고 촘촘한 분석을 원하고, 어떤 독자는 입문자에게 맞는 쉽고 친절한 설명을 원하고, 또 다른 독자는 진득한 스토리텔링을 갈망한다. 이 다양한 수요 속에서 나의 쓸모가 생겨난다.
-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 p.33
이 대목을 읽으며 예전에 개인 블로그에 연재했던 〈대학생 새내기를 위한 레포트 쓰기〉 글이 떠올랐다. 총 4편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바쁜 일정 탓에 2편만 쓰고 중단했던 글이었다.
당시 내가 그 글을 쓴 이유는 내가 논술에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도, 레포트 쓰기의 ‘고수’여서도 아니었다. 우연히 친동생의 학교 과제를 도와주며, 나보다 글쓰기를 더 막막해하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학생 시절 여러 레포트 과제를 거치며 체득한 최소한의 원칙과 요령을 정리해 두면, 누군가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신기하게도 그 글은 지금까지 블로그 유입률이 가장 높은 포스트로 기록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록 전문가의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경험과 시행착오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글쓰기의 목적을 미문이 아니라 ‘전달’에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저자와 내가 글에 부여한 의미가 꽤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비교적 분명한 답을 얻었다. 결국 내가 가진 어떤 경험이나 관점이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책이 될 수 있다. 한 분야의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어도 괜찮다. 내가 쓰고자 하는 책의 목적이 분명하고, 그 글을 필요로 하는 독자가 존재한다면, 이미 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자산은 확보한 셈이다.
정보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시대예요. 하지만 그 정보들을 어떻게 엮고, 어디에 집중하며, 무엇을 생략할지는 결국 인간의 몫이에요.
-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 p.172
책의 중반부에는 인공지능과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이 책이 단순히 ‘정보를 잘 쓰는 법’이 아니라 정보를 선별하고 편집하는 감각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작가의 역할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 넘쳐나는 정보와 경험 속에서 무엇을 묶고, 무엇을 버리며, 어떤 관점으로 이야기할지를 결정하는 일, 즉 편집의 과정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 시대에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 책은 가장 솔직하고 핵심적인 안내서처럼 느껴졌다.
김영주 방송작가의 추천사처럼,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는 ‘글쓰기 관련 책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이 책은 글쓰기의 기술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글쓰기의 근본적인 의미를 짚으며, 출판이라는 세계를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20년간 글로 먹고살며 직접 부딪혀온 저자의 경험은 그 자체로 생생하고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그 경험들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설득력 있는 기록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덮고 나니 ‘당장 책을 써야겠다’기보다는,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경험과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처럼 늘 작가의 세계를 궁금해해 왔고, 마음 한편에 ‘작가’라는 단어를 아직 완전히 내려놓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