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트로트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특정 ‘세대’가 떠올랐던 것처럼, 민요도 떠올리면 특정 ‘시대’가 떠올랐다. 정확히 언젠지 모르겠는 옛날 옛적 말이다. 조선 시대나 고려 시대처럼 한복을 입거나 밭을 일구거나 왕과 서민의 계급이 있는 풍경이 그려졌다. 아니면 수능 공부를 할 적에 국어 파트 중 고전 시가 정도가 떠올랐으려나. 솔직히 시가랑 민요가 정확히 뭔 차이인지도 모를 정도로 무지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넓게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상관이 없는, 민요는 단순히 ‘과거’의 장르라고 여겼다. 하지만 공연장에 들어앉아 상영되는 vcr을 보는 순간부터 지금껏 아주 단단히 오해해왔음을 깨달았다. 아, 지금 당장이라도 민요가 될 소재는 충분하구나!
민요는 민중들 사이에서 감정이나 사상, 생활 등에 대해 부르는 타령이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것들이 민요가 될 수 있다. 약간의 리듬감만 더한다면!
집에서 나올 때 이어폰을 까먹어서 ‘아..’, 버스를 놓쳐서 ‘하..’, 지하철에서 내 앞자리에 좌석이 나서 ‘오!’, 우산을 안 가지고 나왔는데 역에서 나오니 비가 그쳤을 때 ‘휴..’ 내뱉는 모든 감탄사는 민요가 되기에 충분하고 경험하는 모든 사건은 민요의 든든한 토대가 되어준다.

vcr을 통해 민요에 접근하기를 달리 봤음에 신선을 느낄 틈 없이 퓨전 국악 밴드 ‘차차웅’이 무대에 올랐다. 아니, 무대 아래 내 등 뒤에서 등장했다. 등장부터 뿜어져 나오는 그들의 재기발랄함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모든 관객의 눈을 보진 못했지만 모두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우선 내 눈은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눈꺼풀에 막이 내리는 것조차 아까울 지경이었다.

이번 무대를 꾸린 밴드는 메트라이프 재단 문화예술 사회공헌 ‘the gift’의 4번째 예술단체 ‘차차웅’이었다. 이번 공연으로 처음 알게 된 사실 투성인데, 우선 ‘the gift’ 예술단체 프로젝트는 무려 2019년도부터 7년간 진행되어왔다고 한다. 올해 선정된 예술단체 ‘차차웅’은 당일 2명의 보컬과 1명의 코러스, 3명의 댄서와 밴드 3인조로 구성되었다. 무대를 꾸려주신 한 분 한 분 열심히 지켜보았는데, 아무래도 내 눈길을 가장 끌었던 건 댄서분들이다. 그냥 민요만 들려주는 게 아니라 민요에 맞는 춤에 가사를 담고 한과 얼도 함께 담았다. 그들의 몸짓과 표정은 가사가 잘 들리지 않아도 어떤 감정을 겪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드러내놓았기에 ‘묘하게’ 매력적인 그 춤사위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리고 눈을 맞춰 보려 노력했는데 댄서분들은 관객의 눈보다는 어딘가 본인만의 세계에 과감히 몰입한 듯 보였다. 그래서인지 더욱 진정성이 느껴졌고 그들의 춤을 보며 앉아있는 나도 나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민요 자체에 대해서도 감탄한 바 있는데, ‘차차웅’은 그냥 국악 밴드가 아니라 ‘퓨전’ 국악 밴드라는 점을 중요히 짚어 봐야 한다. 기존에 있는 민요를 단순히 커버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표현해내고 싶은 것들에 기존 민요를 잠시 빌려오는 형태로 들렸다. 그래서 그들만의 음악을 새로이 창조해냈다. 민요라고 하면 지루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점이 이들의 음악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데에는 그들의 사려 깊은 노력이 서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악은 시대를 타지 않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노래가 다르고 시기나 때에 따라 달리 보이는 곡이 있다. 그렇기에 개인의 감정과 상황이 반영되어 나 자신을 투영할 수밖에 없는 게 음악이다. 현존하는 곡들도 취향과 시대를 타는데, 옛날 민요라면 그 정도가 더하지 않겠나. 옛날 서민들 사이에서 공유되던 타령들이 많이 달라진 지금 시대의 사람들 사이에서 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똑똑하게 접근해야 한다. 민요를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음악으로, 지금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음을 효과적으로 부여해주기 위해서. 이를 ‘차차웅’은 당당하게 해냈다.
그들이 전하는 문장은 전혀 어렵지 않다. 이들과 비슷한 연령대를 사는 청년들은 물론이고 어린아이와 노인까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모두가 겪었고, 겪는 중이고, 겪어낼 이야기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안에 기존에 있는 민요들의 가락을 빌리니, 이토록 재치있고 진정성 있는 퓨전 민요가 탄생했다. 공연을 보는 중에도 느낀 점이 하나의 곡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중독성이 있는 구절과 짜임새로 타령이 엮여서 곡이 끝나갈 때쯤에는 자연스레 따라부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공연 중간 중간 ‘차차웅’은 ‘열심히 달리겠다’는 말을 전했는데, 혹 그들의 열정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면 선연히 나타났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관객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지 않음을 의도한 건지, 작은 행동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맞춘 건지, 아니면 이 모든 게 의도적으로 맞춘 게 아니고 각자 역할에 진심이어서 그 진심이 단체로 전달된 건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 무대 위에 선 모두가 완벽하게 몰입했다는 거다. 노래가 바뀌어도, 무대에 서는 사람이 달라져도 계속 나를 사로잡은 생각이다. 처음에는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조금 낯설었는데 무대를 꾸리는 그 시간 자체에 흠뻑 빠져있는 구성원들 자체에 몰입이 되어 내 마음만은 무대 위에 같이 서 있는 체험을 했고 나조차 앵콜을 외치고 있었다. 아무리 공연자와 관객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어도 그 검은 관객 너머를 보고 마음을 도모하여 최고의 무대를 선사하려는 공연자들의 노력에 자연히 감사하게 됐다. 그들의 몰입감이 마치 그들끼리 한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과정을 숨죽이고 몰래 훔쳐본 느낌으로 전해졌다. 물론 공연자들끼리 합이 잘 맞으니 그 합이 관객에게도 전해지기 마련이다. 곡이 끝날 때마다 지치지 않던 박수와 함성 소리가 그를 뒷받침 해준다.

그들이 온 마음 다해 내놓는 한과 얼이 시대와 취향을 타지 않고 전해졌음은 관객 한 명 한 명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공연장 안의 분위기와 무대 위에서 발사되는 열정, 그 모든 걸 담아낸 나의 감각이 그걸 증명한다. 평소에 민요와 가깝든 멀든, 익숙지 않다면 더더욱 한 번쯤은 ‘차차웅’의 공연에 일상을 내어줄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나면 ‘와..’ 감탄사가 끊이질 않을 것이고 더 건강하고 유쾌하게 삶에 숨 한 줌을 내어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