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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영원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언제쯤 확고하게 정립될까.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영원하게 만들고픈 것이 아주 많아서, 모든 걸 영원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고 스스로 다독인 순간도 숱하다. 이리저리 영원함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키고픈 것도 하나둘 더해졌는가 보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지나온 것과 마주하며 지나가는 것과 끝내 멀어지게 될 것들 사이에서 공들여 방황하고 있다.


한번 마음에 두는 사람들은 늘 도처에 자리 잡고 너무 늦지 않게 들여다보려 노력하는 편이다. 자주 보지 못해도 그 인연이 끊기지 않도록, 혹 가늘지라도 팽팽한 실을 유지하려 한다. 그게 내가 내 사람들을 아끼고 지키는 방식이다. 해야 할 것도 부족한 것도 많은 이 몸 하나만으로 애정하는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유지해도 가끔 공허함이 드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 관계에 서로가 부여하는 모양이나 크기가 다르면 어떡하지?’, ‘혹 나만 아직 이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거면 어떡하지?’ 이런 부질없는 고민 말이다. 사람에 의지하든 사람을 좋아하든, 아니면 둘 다 아니든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냉혈한 일지라도 한 번은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삶에 소중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물론 직접 만나면 대부분 해결되는 일이긴 하다. 대면으로 이야기 하고 감정을 나누고 교류하면 그때 느끼는 친밀함과 가까움은 그 어떤 물질적 보상보다 고귀하고 충만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만나지 않을 때이다. 연락을 잘 하는 편도 아니라, 만나지 않을 때는 그저 상대를 믿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관계 중 분명 다음 같은 관계도 존재한다. 같이 한 시절을 보낼 때는 좋은 감정과 시간을 나눈 기억이 선명하지만, 서로의 삶에서 희미해져 갈 때쯤에는 연락 한 번 하기도 머뭇거려지는 관계 말이다. 그때 나는 상대가 느낄지도 모를 불편함을 지레 예상하곤 과장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시무룩해져 버린다. 머릿속에서 홀로 그런 처리 과정을 겪어내면 실제로 멀어진 것도 아닌데도 굉장히 어렵고 조심스러워진다. 그 이후에는 자연히 서글퍼진다. 이 관계도 끝이 났구나, 아니 났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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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처럼 관계에 연연하거나 집착 말고 때에 맞게 놓아주라는 말은 무수히도 접했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나. 나의 경우, 나에게 맞지 않은 인연은 무서우리만치 쿨하게 보내는 편이지만 좋은 인연의 경우는 놓아주는 게 배로 힘들다. 그 미약한 가능성 중에 나와 맞는 좋은 사람을 발견했는데 놓아주라니,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지 않나. 마치 보석을 눈앞에 두고 모래에 파묻히는 걸 그저 보고만 있으라고 하는 꼴이다.


그래도 정녕 놓아주어야 하는가. 그와 함께한 추억을 간직만 해야 하는가. 그럼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추억과 함께 살아가는 것인가. 결국 보험처럼 추억을 쌓으려 사람과 만나는 것인지 사람과 만났기에 저절로 추억이 축적되는 것인지 그 선후 관계에 의심이 든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싶겠지만 내게는 짚어 봐야 하는 실로 중대한 사항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곁에 오래 두는 게 내 욕심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이 내게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무용한 생각이라 여겨져도 괜찮다. 이 혼란을 안고 있으면서 종국에는 또 얻은 것들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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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전년도에 이어 영화 위키드 시리즈가 개봉했다. 이번 연도에 개봉한 시리즈는 위키드1의 속편인 [위키드: 포 굿]이다. 영화를 보고 심하게 감동 받은 쪽에 속해서 원래는 위키드 자체를 다루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감정을 정제시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고 그 시간 속에서 등장하는 넘버를 반복 재생하다가 유의미한 발견을 했다. 위키드1에는 웅장하고 유명한 넘버가 등장한다. 많은 넘버 중‘popular’와 ‘defying gravity’의 영향력은 영화 이전에 뮤지컬에서부터 쌓아왔기 때문에 가히 줄거리보다 유명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과연 위키드 2에서 1편의 감동을 충족시켜줄 새로운 노래가 등장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있었는데 영화를 본 후 그 걱정은 말끔히 씻겨져 내렸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출중한 넘버들 사이에서도 위키드 2의 부제목이기도 한 넘버[for good]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아리아나 그란데가 부드러운 음색을 건네면 신시아 에리보가 든든하게 받아주는 이 노래는 둘 사이의 관계성을 명확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이 둘이 연기하는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와 ‘엘파바’(신시아 에리보)는 각각 사람들 사이에서 ‘착한 마녀’와 ‘사악한 마녀’로 불려왔다. 같이 힘을 합쳐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고 싶어도 너무도 뚜렷한 경계선에 서 있는 둘은 사실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하지만 이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같을지라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이 다르고 처해있는 상황도 극명하다. 운명의 장난같은 상황 속에서 글린다와 엘파바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호흡을 맞춘다.


 

who can say if i’ve been changed for the better? But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싶지만,

 

Because I knew you

널 만난 덕분에

 

I have been changed for good

난 영원히 더 좋은 쪽으로 변했어.

 

- 위키드: 포 굿 ost [for good]

 

 

노래가 끝나고 진심을 전한 뒤, 이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어쩌면 영영 만나게 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곁에 있지 않더라도,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서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줬다는 믿음의 확신만으로 각자가 인생의 다음 스텝을 밟아가기에 충분해 보인다.


영화를 보고 노래를 듣는 내내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가 내게 시사해준 건 아무래도 ‘믿음’이다. 어떤 관계든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믿고 의지하는 게 ‘신뢰’라면 그 신뢰를 만드는 건 굳은 ‘믿음’이다. 믿지 않으면 의지할 수 없다. 그러니 그냥 현재의 관계를 믿는 거다. 지금까지 좋았다고 앞으로의 관계를 너무 멀리 내다보지도 확신하지도 말고,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오로지 현재의 나에게 미친 영향만을 믿는 거다. 지금 이 자리에 오롯이 서 있을 수 있는 나를 만든 관계들이었다고 생각하면 혹 지금 당장 함께하지 않는대도 감사하지 않은 관계가 없다. 지금의 나를 형성하기까지 모든 관계가 가치 있었다. 앞으로 나를 위해서 이전의 관계를 지키려 들지 말고 우선 지금 나를 이루고 있는 관계들에 충분히 마음을 두고 집중한다면 미래는 자연스럽게 구축될 것이리라 믿는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내 미래에도 있길 바란다면, 덕분에 영원히 더 나아진 나를 일구는 데 도움을 주어서 감사하다고, 그 감사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we are led, to those who help us most to grow and we help them in return

우리는 마음만 열면, 우리를 가장 성장시키는 사람에게 끌리고,

우리도 그들을 돕게 된대.


well, I don't know if I believe that’s true

그게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But I know I’m who I am today

Because I knew you

지금의 나는 널 만났기 덕분이란 걸 알아.

 

- 위키드: 포 굿 ost [for good]

 

 

성장의 끝이 어딘지, 막연하기도 하고 덧없다 느껴지기도 할 테지만 아마 죽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는 성장할 거고 그 여정에는 늘 누군가가 곁에 있을 것이다. ‘태양을 지나며 궤도를 벗어나는 혜성처럼, 숲을 지나는 중간쯤에서 큰 바위를 만든 시냇물처럼’ 어떤 관계로 어떤 시공간에서 어떤 형태로 만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모든 관계는 서로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줄 것이고 영원히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성장은 계속될 것이다. 그 과정에 추억은 따라오는 것이니, 나를 제외한 내 곁의 사람이란 인생의 동반자가 맞는 것 같다. 그러니 지나오며 놓아주는 관계들에도 많은 걸 바라지 말고 조금이라도 나를 성장시켰다면 그걸로 충분했다는 약소하고 굳건한 믿음이 지금 내게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그 관계들이 또 어떤 형태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그럼 그때에는 또 얼마나 크고 작은 가득한 관계들이 나를 영원히 변화시켰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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