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8일 롱블랙에서 주최한 ‘롱블랙 컨퍼런스 2026’에 다녀왔다. 작년에 이어 코엑스 강연장에서 올해도 강연자로 서게 된 ‘호소다 다카히로’의 강연을 듣고 나오자마자 그의 책을 구매했다.
롱블랙과 함께 제작한 ‘더 센스(당신도 센스가 있다)’ 라는 제목의 책은 ‘롱블랙 컨퍼런스 2026’에서 판매하고 있었고, 호소다 다카히로의 강연이 끝나자마자 바로 구매했다. 그의 강연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의 책이 너무 궁금해졌다. 그리고, 올해 핫했던 <경험의 멸종>이라는 책이 생각나는 챕터가 있어서 함께 남겨놓으면 좋을 것 같다.
세렌디피티
“Chapter 4 : 소비의 즐거움은 세렌디피티에서 온다”
‘우연한 만남’ - 계획한 순간이 아니라, 뜻밖의 발견에서 시작되는 것. 요즘 시대에 이런 게 얼마나 소중한 지 책을 읽으면서 더 많이 느껴지는 것 같다. 모두가 일상을 살면서 우연하게 만나 좋아하게 된 것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계획에 없던 곳에서의 우연한 만남, 우연히 들었던 음악을 좋아하게 되고, 우연히 먹은 음식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되는 경험. 책에서는 “진짜 편애를 찾으려면, 내가 이미 좋아하는 것만 반복해선 안된다”라고 말한다.
알고리즘 덕분에 우연한 발견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리즘이 골라 보여주고, 터치 혹은 스크롤 1초로 내가 선택하지 않은 다음 것들을 차례로 나열해 주는 것으로 뜻밖의 발견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경험해 볼 수 있을까. 알고리즘이 내가 해야 했던, 내가 해왔던 선택들을 가로막고 있는 때에, 너무나도 안전한 선택지 말고 ‘세렌디피티’라고 할만한 것들을 더 원하게 될 것이다.
책에서 “남이 쓴 후기와 내가 쓴 후기가 같다면 그게 나의 경험일까? 아니면 나는 그저 알고리즘이 시킨 대로 움직인 건 아닐까?”라고 묻는데, 나와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분명 다를 것이다. 후기와 같은 다른 사람의 경험이 도움은 되겠지만, 막상 가면 같이 경험한 친구와 나의 후기가 다를 때도 있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진짜 목적’을 알아야 한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모든 것이 예상한 대로만 흘러가고, 선택도 엇비슷하니 지루하고 피곤하다고 느껴, 이를 ‘예측 피로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인간답게, 각자만의 예민한 감각들을 이용해서 ‘작은 시도’들을 해보면 어떨까? 사람을 만나는 그런 만남 말고도, 어떠한 단어, 소리, 노래,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만남’을 하는 것이 얼마나 재밌을까. 지극히 나의 생각이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리즘에 피로감을 느끼고 이러한 경험을 본능적으로 하고 싶어 할 것이라 생각한다. 본능적으로 삶에 치일 때 자연에 들어가고 싶듯이.
Being human in a disembodied world — how sensually, how fully, am I still living?
<경험의 멸종>이라는 책도 생각이 나는데, ‘Being human in a disembodied world’는 <경험의 멸종> 원제 아래에 적혀있는 부제목이다. 그리고 “how sensually, how fully, am I still living?” 은 내가 옆에 적어보았다.
이전에는 SNS, 숏폼 형식의 무언가를 계속 스크롤 하는 거는 뇌를 쉬게 하는 거고 시간을 죽인다기보다는 휴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다들 퇴근하고 지친 상태로 어딘가에 기대어 스크롤을 하고 있는 모습을 마냥 안 좋게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이 오기 전에는 어떻게 쉬었는가. 사실 나의 연배에는 휴대폰, 컴퓨터가 친근하지 않던 시기도 같이 겪었기 때문에, 기억해 낼 수 있다. 안팎으로 얼마나 감각적으로 살아왔는지. 디지털, 가상 세계 없이 얼마나 나의 감정에 충실하며 지내왔는지.
이미 Disembodied world(디지털, SNS, 알고리즘, 가상)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고 거기에 따른 도움도 너무 많이 받고 있다. ChatGPT와 <경험의 멸종>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내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 느끼는 건데, 사람들은 힘들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실존하는 것들을 더 찾는 것 같아요. 자연을 찾는다든지, 힘든 마음을 기록한다든지, 사람을 만난다든지. 책에서는 Disembodied World에 살고 있는 인간을 걱정하지만 과도기일까요? 그럼에도 적절한 때에 실존하는 것들을 더 찾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을 공감하기는 하지만 요즘은 또 "웰니스"가 유행이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가상의 세계, 누군가가 만들어낸 SNS의 Fake News 그런 것들에 많이 절여져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그래서 요즘같이 제 상태가 온전치 못할 때 SNS부터 멀어지게 두는 거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정보들을 얻는 것을 포기해야 하지만.”
ChatGPT의 답변 중에 확 와닿은 부분이 “웰니스가 유행한다는 것은 집단적으로 그런 걸 깨달은 건 아닐지”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미 우리는 디지털 세상에 지나치게 빠르게 스며들고 있고 그러면서 이면적으로,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는 건 아닐지. SNS와 알고리즘에서 얻는 정보들을 너무 좋아하지만, 올해 마지막 12월만큼은 좀 멀어져보고 싶어 인스타그램부터 지웠다. 조금 더 인간적이고 감각적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SNS에서 늘 찾아보는 클래식 음악, 전시, 노래, 패션에 대한 정보들을 놓치는 것은 아쉽지만, 안 보면 아쉽지 않은 게 된다. 책에서 ‘세렌디피티’를 경험하고, 좋아하는 문장들을 꺼내어 손으로 적고, 기억 속에만 남아있던 노래들을 꺼내어 들어보고, 걸어 다니면서 폰 말고 저어 멀리 시야에서 제일 먼 곳도 바라보고 그런 연말을 한 달 정도 보내보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우연한 만남에 대한 경험을 쓰고 싶다. 어느 한 날에, 시집을 선물하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 선물하려고 정해둔 시집을 집어 들었고, 시 한 편씩 선물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시 뒷면이 비어있거나 그림으로 채워져있어 찢을 수 있는 시집이 있을까 하여 구경했다. 그러다 집어 든 시집의 표지에 적혀있는 한 줄을 보고 눈코입이 크게 확장되었다. 내가 21살쯤, 그때 만났던 남자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어 원 데이 클래스로 캘라그래피를 배워 한 시를 예쁘게 적었던, 그 시의 한 행이었다. 그 시를 액자에 넣어 선물했던 만큼 처음으로 내가 좋아했던 시였고, 한 줄을 보자마자 그 기억과 추억이 강하게 스쳤다. 그 시집에서 그 한 줄이 들어있는 그 시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시는 사실 그 시집을 꺼내들었을 때 생각난 게 아니라, 그 주에 이미 그 시를 내 기억에서 한번 꺼냈었다. ‘사랑’에 대한 주제의 책을 그 주에 읽었었고, 그 시가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당최 제목과 시인과 시구절들이 생각이 나질 않았는데, 그 주에 찾으려고 찾은 게 아닌데 우연히 발견해버렸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주제의 책에 대해 독후감을 쓰면서 마지막에 그 시 사진도 같이 넣어둘 수 있었다. 이게 ‘세렌디피티’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인터넷 세상에 없는 이 '우연한 만남'에 아직도 심장이 설레는 경험이 되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지나치게 많이 보고 사는 건 아닐지?
그리고, 당신은 얼마나 감각적으로 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