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의 회피 심리를 소개합니다, 제1편 [도서/문학]

글 입력 2023.05.08 18: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fantasy-g2e54b1f5f_1280.jpg

 

 

나는 주변 사람들과 책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책을 좋아하고, 그 책을 왜 좋아하는지, 어떤 책을 좋아하지 않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또는 책에서 어떤 구절이 마음에 들었고, 흥미를 가지고 읽은 책은 무엇인지 등 말이다. 그럼에도 남이 추천해 준 책은 통 읽지를 않는다. 누군가 추천해 준 책이 나와 맞지 않아서나 별로일 것 같아서, 그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단지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넘칠 뿐이다. A 책을 다 읽어 갈 때가 되면 새로 읽고 싶은 B가 생기고, B를 다 읽어 갈 때쯤 새로운 C가 생긴다. 나를 위해 추천해 주었을 그 사람의 의견은 고맙지만, 추천 도서를 읽을 정도로 독서에 대한 여유가 넘치지는 못한다. 지금도 읽고 싶은 책, 읽어야겠다고 빌려 뒀거나 사 둔 책이 열 권은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잠을 줄여가며 ‘추천 받은 책’ 한 권을 읽었다. 처음 책 소개를 들었을 때 그것이 좋게 느껴져서는 아니었고, 이 책을 추천해 준 사람이 지금의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크다. 책 제목이나 그로부터 들은 내용들이 퍽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끌렸다는 것은 두 번째 이유였다.


나의 친애하는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은 소혜윤 작가의 <회피형 인간>이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회피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회피형 본인에게는 공감과 이해, 위로와 조언을 주고, 또 회피형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라는 것이 이 책의 소개다. 다만 이 내용이 회피형 인간을 전부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작가 자신의 삶을 통해 회피형은 이럴 수 있다, 라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나의 애착 유형이 무엇인가를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맞서기보다 회피와 외면에 익숙했던 것을 생각하며 회피형 정도겠거니 생각했던 게 다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은 역시 나에게 회피형 기질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 형성과 유지 패턴을 설명하는 애착 이론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이 이론에 의하면 성인 애착 유형을 회피형, 불안형, 안정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안정형은 누구와도 비교적 건강하고 정서적인 관계작용을 유지할 수 있는 유형이지만 불안정형은 서로 크게 대비되는 불안형과 회피형으로 나뉩니다. 불안형이 다소 의존적이라 파트너로부터 과도한 친밀감, 인정, 반응을 요구한다면, 회피형은 반대로 정서적 친밀감을 불편해하는 유형으로, 높은 독립성을 추구하는 거부 회피형과 상대를 불신하며 혼란스러워하는 공포 회피형으로 나뉩니다.

 

 

이 책은 위와같이 애착 이론에 대해, 그리고 당연히 회피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모 아니면 도, 이분법적 사고, 확실한 것에 끌려, 애착 유형마저 무엇 하나로 정해질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사람은 각 유형의 요소들을 고루 가지고 있으며,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고 한다. “이 협소한 몇 가지 틀 안에 사람을 가둬놓고 재단하는 일은 없어야겠지요.”라고 작가 또한 주의를 주고 있다.


  
라캉의 욕망이론에 따르면 사람의 욕망은 공허, 결핍과 관계가 있다. 내 욕망은 결코 완전히 충족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가지지 못할 것을 갖고 싶어'만' 하는 것이 편해진 사람이다. 진짜 갖게 되었을 때 그것에 떨어질 흥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갖게 된 것이 진정 내가 원하던 것은 아닐 것이므로, 나는 그저 욕망 속에서 부유한다. 상상은 자유라지.
 


매슬로우가 인간 욕구 5단계 이론을 제시했다면 라캉은 욕망 이론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위와 같다. 위의 문단을 읽었을 때 누군가에게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사람에 관해서도 퍽 그런 면이 있지만, 또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말하면 나는 물건을 살 때 저런 경향을 보인다. 이를테면 애플워치를 사고 싶을 때, 나는 그것이 내게 필요한지, 그 쓰임에 충실히 응답할지를 수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사야겠다는 결론을 늘상 뱉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애플워치가 없다. ‘진짜 갖게 되었을 때 그것에 떨어질 흥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저 그것을 사고 잘 이용하는 나를 상상하는 게 즐겁지, 그것을 정말 손에 얻고 이용하다 재미없어지는 순간을 맞이하는 게 두렵기만 하다. 더불어 그것을 사 봐야 잘 쓰지 않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오늘도 애플워치를 찬 사람들에 나를 대입시켜 그 즐거움을 상상할 뿐이다. 나는 내가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알게 모르게 회피형 기질이 드러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좀 두려운 건 사실이다. 가령 모두가 의존과 연대를 외칠 때에 거리 두기가 이미 익숙하다고 중얼거린다면, 따뜻함 안에서 차가움을 슬며시 붙들다 보면, 고독과 우울을 가지런히 품고 있노라면, 마치 꿈속에서 꿈이라고 외쳤을 때 모두가 아득한 무표정으로 건너보듯, 횡단보도를 어떻게 건너는지 절박하게 묻는 사람을 간첩 혹은 외계인으로 오인하듯, 나는 한순간에 비정상으로 낙인찍힐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나뿐만 아니라 결국 모두에게, 그저 존중이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받아들여지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나, 너는 너로 존재하고 손바닥을 가끔 대보되 몸을 부딪치지 않아도 되는 관계면 족하다. 다른 색깔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저들을 물들일까 봐서인가? 또는 내가 나의 색을 고집하는 것이 단순히 보기 싫은 것일까? 내가 더 유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내게 결코 유연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닫혀 있다고 나무랐지만 내게 닫혀 있던 것들은 어쩌면 그들 같았다.

 

 

크게 마음에 다가왔던 내용 중 하나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나도 모두가 의존과 연대를 외칠 때 거리 두기가 이미 익숙하다고 중얼거리는 것이 두렵다. 덧붙여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면 그를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슬픔이나 기쁨, 하물며 아픔까지도 자신의 기준에서 재단해 버리곤 하는 것이다. “그게 뭐가 기쁜데?”, “그게 뭐가 힘든데? 나는 더 힘들어.” 등으로 남을 온전히 이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강요한다. 마치 본인만이 정답이라는 듯이. 각자의 감정으로 살아가고, 서로의 기준으로 이해해준다고 해서 누구 하나 피해 보는 것이 없는데, 왜 단 하나로 정립되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내가 멋있게 생각하는 인물은 구병모 작가의 <파과> 속 주인공이다. 한때 구상했던 어느 소설의 결말 역시 주인공이 사랑했던, 사랑할 뻔했던 것에 칼을 꽂고 끝을 내는 것이었다. 나를 잃게 만드는 것으로부터 나를 분리해냄으로써 주체로 서는 것, 이는 내가 내 인생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해 무한히 반복하는 의식이다. 앞으로 쓸 소설에서도 나는 내 분신과 같은 주인공을 끝내 홀로 남겨둘 생각을 했다.

 

 

작가는 ‘한 번에 두 사람 이상을 좋아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했다. 반대로 나는 둘 이상을 동시에 좋아하는 게 안 된다. 연인이나 썸 따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덕질 같은 부분에서 말이다. 충성스러운 신하라도 된 것마냥 하나에 얽매여 그것만을 바라보게 된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이 많고, 좋아할 가치가 있는 것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남들이 이것도 좋아하고, 저것도 좋아한다고 바쁠 때 나는 나의 원앤온리의 장점을 쏟아내기 바쁘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나는 그 단 하나에 얽매여 통 내 일들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가수의 노래를 듣거나 그 가수가 나온 예능 프로그램을 봐야 한다. 또는 그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야 하고, 그 작가의 신작을 읽어야 한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만리장성을 건축할 수 있을 만큼 쌓여 있는데, 나는 좋아하는 것을 향유하기 바쁘다. 내가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것이 어렵고, 사랑하기란 더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나를 보지 못하고 다른 것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점 말이다. 나를 즐겁게는 해 주지만 진정 나를 잃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닮고 싶어 하며, 그들의 말이나 행동을 따라 하게 되곤 한다. ‘그런 모습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도 결국 나인 것은 맞지만, 억지로 변화시켜 이룩하려는 나와 원래의 나는 결코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글을 많이 공감하며 읽었지만 둘의 차이가 있다면 그 부분이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어쩐지 하고 싶지 않게 느껴진다는 점은 비슷한 것 같다.

 

위 내용은 그런 나에게 참으로 와닿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없애기보다는 그것을 좋아하면서 당당히 나를 더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혼자는 싫고, 내가 우선이되 좋아하는 것을 당당히 대면할 수 있는 나를 꿈꾸고 있다.

 

외에도 곱씹어 읽거나 색을 표시한 부분은 많았다. 그중 몇 가지를 고르고 골라 적어 보았다. 심지어 앞서 적은 내용은 책의 1부 <회피형 보고서>만을 두고 생각한 것들이다. 다음에 이어 2부를 읽고 또 나의 모습을, 나와 비슷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 볼까 한다.

 

 

 

에디터 명함.jpg

 

 

[박수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