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지나간다. 이곳저곳에서 홀리데이를 꺼내 들었다. 지금이 지나면 금방 연말이라고 온 세상이 속삭이는 시기. 그렇지만 한국에서 11월은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수험생을 응원하는 현수막, 합격을 응원하는 간식들. 은행은 업무시간 변경을 공지하고 예비소집일이 되면 대중교통은 학교를 알려주는 종이를 붙인다.
귀한 수험생님들 학교 가는데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직장인이라면 응당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여 피해가 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럴 일이 없어서 늘 정시에 출근한다. 오늘도 비행기는 착륙하지 못하고 뱅뱅 돌고 있다더라, 관공서는 10시에 업무 시작이라더라 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모두가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조심, 또 조심.
아이가 도시락을 놓고 가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학부모의 이야기, 지각할 뻔했다는 조마조마한 일화,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된 수능 한파 등 그날 하루는 모두가 같은 주제를 이야기한다. 걱정하기도 하고 응원하기도 하고 지나간 추억을 나누고.
수능이 끝날 시간이 되면, 가채점 답안지가 뜨고 나면 수능 망했다고 자책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조언이 이어진다.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겪어보면 알지 않나, 모두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날인데 그날의 결과가 어떻게 가벼울 수 있을까. 더군다나 직접 마주하는 건 아직 여물지도 않은 여린 10대 청소년이다.
긴 시간 수능과 대입을 향해 달려왔는데 사실은 조금 망해도 괜찮다는 말이 귀에 와닿을 수가 없다.
재수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아 이게 현실이구나, 이게 진짜 내 거구나. 누구보다 최선을 다한 게 아니었고 순수한 노력도 아니었기에 요행을 바라기도 했다만, 그래도 조금은 나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왠지 억울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그 시절의 나는 다른 위로의 말을 좋아했다. 내가 너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네 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뭘 하든 응원하고 지지하겠다. 그 말이 제일 좋았다.
아직도 마음은 10대 같다고 생각하던 것도 옛날의 일, 엊그제 같았던 대학 생활도 아득해져 가고 있다. 수능 끝나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신나게 놀아야 한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 그게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수험생 할인은 잘 누리고 있을까, 스무 살이 되는 1월 1일을 기다릴 수도 있겠고 면허를 딸 준비를 할 수도 있겠고. 삶의 한 단락을 넘어가는 때, 수험이 끝난 학생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속상해도 너무 오래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운이 좋았으면 좋겠고, 보상이라고 느낄 만큼 돌려받았으면 좋겠다. 일찌감치 다음 기회를 준비한다든가, 아쉬운 현실을 받아들이다든가 뭘 하든지 간에 선택을 응원하고 싶다.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니라는 말, 누군가에게는 큰 눈덩이를 꼭 껴안아 온몸으로 녹여서 작게 만드는 과정일 수도 있다. 아무렇지 않아질 때까지 속상한 날이 몇 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밤이 몇 번,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순간들, 괜찮다가도 안 괜찮아지는 어떤 순간. 하나씩 밟고 지나가야 지나간다. 괜찮다고 말했다가 괜찮아야만 하는 강박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속상하면 울고, 아까워도 울고, 억울해도 울자. 안 괜찮아도 괜찮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