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시간을 들인다는 건

글 입력 2023.03.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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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 어떤 한 행위에 진득이 몰입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게 느껴진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시청하고 있으면 며칠 전 사놓고 읽지 않았던 책을 읽고 싶어지고, 기다렸던 유튜브 영상을 재생하면 그 아래에는 나의 흥미를 더 자극하는 영상이 존재한다. 무얼 해야 할지 정해놓고 온전히 하나에 빠지는 건 쉽지 않다. 이제는 나에게 어려운 숙제와 같이 느껴진다.


이런 유혹 거리가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내가 온전히 나의 시간을 들일 수 있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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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쓴다는 것은.


타인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노력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무얼 좋아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므로. 나는 받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엽서 한 장을 신중히 고른다. 평소 대화했던 이야기들을 곱씹으며 고민한다. 어떤 색을 선호했는지, 특별히 좋아하는 마음으로 보던 것이 무엇인지 등.


펜을 잡았을 때, 최대한 나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고민한다. 큰 애정은 글로 표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함께했던 많은 추억을 압축하여 작성한다. 이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잠시 상상해 본다. 비록 나의 상상일 뿐이지만 받는 이들의 환한 미소가 그려진다.

 

바쁜 일상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작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 것에 관해 감사하다고. 진심을 담아 작성한다.


또한 나는 편지로 사과한다. 애석하게도 나는 연락 빈도가 잦은 편이 아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안읽씹’을 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이들은 일상 공유가 어렵냐며 서운함을 토로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색게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한다.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성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나에게 아무런 말 없이, 내가 어느 때나 연락해도 반갑게 맞이해주는 이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연락의 횟수와 우정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 주는 이들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을 담아 편지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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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록법.


타인과 함께 영화를 보면, 그날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또렷하게 기억나지만 혼자 봤던 날은 영화에 관한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게 느껴졌다.


우연히 지나가다 영화 포스터를 보면 몇 년 전에 봤던 게 분명한데 뚜렷한 기억이 없어 끙끙 앓았던 적이 있다. 어느 곳에서 관람했고 어떤 장면들이 펼쳐졌는지 내 기억 속에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끝끝내 찾은 나만의 방식은 보고 나온 직후 막힘없이 기록하는 거였다.


처음에는 핸드폰 메모장에 영화에 관한 모든 감정을 적었다. 내 생각을 바로 남길 수 있어 편했지만, 그 편리함이 무미건조했다.


'쓰는 맛'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가지고 다니던 다이어리에 쓸까 했지만, 너무 장황하게 느껴졌다. 잘 꾸며진 공간에 불완전한 내 감정을 쓰자니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꾸깃꾸깃 넣어놓은 ‘지류 티켓’ 뒷장에 내 감상을 작성했다. 준비물도 간단하다.

 

그냥 펜 하나만 갖고 있으면 된다. 영화를 보고 나온 후, 느낀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막힘없이 써 내려간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흐려지지 않기 위해, 그렇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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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는 것.


차를 끓이기 위해서는 온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날 상황에 어울리는 티백을 고르는 일과 물을 끓이며 잠시 기다리는 일. 그리고 티백이 우려질 때까지 기다리며 따뜻한 컵을 잡고 있는 시간까지. 한 모금을 마시기 전까지, 꽤 적지 않은 시간이 요구된다.


차의 우려지기 전까지 기다림을 참지 못해 잠시 눈을 돌렸던 적이 있다. 잠시 몇 분을 기다린다고 다짐해놓고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차를 마주한다. 따뜻함이 아닌 식은 티백이 나를 맞이한다.

 

색의 농도는 진해져 있고 씁쓸한 맛만이 가득했다. 잠시의 기다림이 지루하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다. 차를 마신다는 건. 온전한 시간을 들인다는 것과 정해진 기다림이 필요하다.

 

가끔 나의 시간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목적을 잊은 적이 빈번하다.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를 집중하게 만드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내면과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온전한 시간을 갖는 건, 나에게 계속 필요한 일이다.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또는 참다운 행복에 이를 방법이다.

 

 

[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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