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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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또 시작이다. 머릿속이 쿵쿵 울린다.

   

다른 것에 집중하려 해봐도 이 소리가 너무 커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렇게 참고만 있을 수 없다.


놈을 찾아야겠다. 내 뇌 덩어리를 두들겨대는 존재를.


나는 지금 내 머릿속을 뒤지고 있다. 전두엽과 측두엽, 후두엽을 지나 그놈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는 내가 상상했던 대로의 모습이다.


드러머.


"안녕?"


그가 내게 말을 건다. 


진짜 드러머가 맞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드러머는 아닌데, 드러머라고 하면 드러머가 되지."


정체가 대체 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너의 불안. 아, 다시 얘기하자면 불안하다는 생각?"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그에게 어떤 말을 건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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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살며 매일 쓸모없는 상상을 하는 '작가'. 그는 누구보다도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피드백은 냉정했다. "혼자 쓰고, 혼자 보세요."


하지만 그는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추지 못한다.


동시에 작가의 머릿속에는 거슬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래서 이 소리를 내는 존재를 '드러머'라고 이름 붙이고, 머릿속을 뒤지며 그를 찾는다. 그렇게 드러머와 마주한 작가는 처음엔 그를 두려워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드러머의 정체가 '자신의 불안'임을 알게 되고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잠깐만요. 전 기쁘거나 즐거울 때도, 슬플 때도 드러머 씨의 소리를 들었거든요.

그럼 전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불안했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적어도 자신의 미래를 상상할 때만큼은, 연주를 좀 멈춰주지 그랬냐며 울분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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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썬더>는 '작가'와 '드러머'가 등장하는 2인 극이다. 작품은 뇌 속의 드러머 이야기, 폐쇄 병동에서 구경하는 주변 인물들 이야기, 작가의 가족 이야기, 친구(동료 작가)와의 통화 이야기가 교차된다. 그럴 때마다 '드러머'는 각기 다른 비트로 드럼을 연주하며, 장면마다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동시에 작가의 불안을 묘사한다. 


극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작가' 역 배우는 그들 한 명 한 명을 표현한다. 그런데 등장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작가 역 배우가 직접 묘사하지 않고 목소리로 등장하며 배우와 대사를 주고받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친구'이다. 그는 작가가 병동 통화 시간에 전화를 거는 유일한 사람이며, 무조건 작가의 전화를 받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어느 날 친구는 작가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며 허락을 구한다. 작가는 별 볼 일 없는 자신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을 의아해하지만, 그건 네 마음이지 않겠냐며 허락한다. 이후 작가가 글의 제목을 묻자, "썬더"라고 답한다. 즉 이 극은 '친구가 쓴 작가의 이야기'이고, 친구는 하나의 등장인물을 넘어 이 이야기의 전지적인 존재인 것이다. (또한 자신에 관해 무슨 내용을 쓰고 있냐는 작가의 물음에, 친구는 "너의 불안."이라고 답한다. 그러니 사실 작가의 불안을 '드러머'라고 정의한 것도 친구인 셈이다.)


이러한 설정은 극 중간중간에 발견할 수 있다. 마치 하나의 책처럼 한 챕터마다 지금이 몇 장인지 알려주고, 극은 제 20장까지 이어진다. 또한 작가 역 배우의 서술 방식이 1인칭과 전지적 서술자 시점을 오고 간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키보드 효과음이 나오며 친구가 마치 이 상황을 글로 쓰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다 키보드 소리가 가장 선명히 들리는 부분이 있다. 친구가 어떤 순간보다도 손가락에 힘을 준 채 썼다는 것이다.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키보드를 그렇게나 세게 두드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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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은 바로 작가와 친구의 마지막 통화 장면이다.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드러머는 너를 위로해. 주저앉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잘 하고 싶기 때문이다.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불안의 본질은 사실 걱정이나 망상이 아니다. 잘하려는 마음이자, 삶에 대한 강한 의지력이다. 


드러머가 우리를 다루는 방식은, 즉 그의 위로 방식은, 따뜻하게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아니다. 꼭 그의 악기가 내는 소리와 같다.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들로 우리의 생명력을 일깨워 주고,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정신을 다잡아주는 방식이다. 

 

친구는 덧붙인다.


"드럼도 완성되지 못한 악기래. 만다라처럼.

너도 조금씩 완성해나가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계속 해."


실제로 드럼은 북통, 헤드, 튜닝, 연주자의 힘과 속도에 따라 소리가 계속 달라지고, 구조적으로 정해진 소리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만다라는 그 문양이 바깥에서 안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끝이 존재한다. 그래서 보는 사람의 내면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그림이다. 즉 완벽해 보이는 드럼도, 만다라도 사실 미완의 상태이다.


따라서 이 대사를 통해 작품은 우리에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래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완성'에 대한 여부는 결국 자기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도 남겨둔다.


친구와의 마지막 통화는 이렇게 끝난다. 작가가 묻고, 친구가 대답한다.


"근데 제목이 왜 썬더야?"

"썬더. 번쩍거리면서 빛나는 거. 모두가 볼 테니까. 그러니까 웅크리고 있지 마."


사실 극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다. 작가는 여전히 불안하고, 그의 가족은 여전히 불우하다.


작가가 지어내는 이야기는 쓸모없고 초라하다. 그렇지만 "그래도 일은 해야지"라며 상상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즉 작가에게 상상이라는 행위는 자신의 불행한 인생을 어떻게든 영위하려는 호흡법 혹은 생존 방식이자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불태우는 행동이다. 


작품은 그를 담담히 위로한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며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작고 하찮은 저항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번개처럼 번쩍 빛나고 그 뒤에 엄청난 굉음의 천둥을 만들 거라고. 모두가 그걸 보고 들을 거라고.


그러니까 불안해도 괜찮고, 미완이어도 괜찮으니 계속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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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작가처럼 머릿속을 뒤져 각자의 불안과 마주해보자. 당신의 불안은 어떤 모습인가?


당신의 것도 드러머인가?

아니면 둥 하고 울리는 깊은 공명감으로 정신을 깨우는 팀파니 연주자인가?

아니면 쨍한 소리로 짤랑거리며 신경을 곧추세우게 하는 탬버린 연주자인가?

그것도 아니면 타악기 말고 다른 걸 연주하는가? 혹은 연주자가 아닌 다른 무언가인가?


그게 뭐든 간에, 불안의 얼굴과 맞닥뜨리는 순간 당신의 마음은 좀 편안해질지도 모른다. 그들은 소리를 내서 살아갈 의지를 다지게 하며 당신을 응원한다. 그러니 머릿속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올 때, 조금은 그 음악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아니면 아예 작가처럼 이렇게 말해보자. "드러머 씨, 경쾌하게 부탁드려요, 경쾌하게!"

 

 

(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 @project_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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