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금각사』, 『가면의 고백』, 『풍요의 바다』 4부작 등으로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장편을 비롯해 방대한 양의 단편을 남겼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소개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 점에서 시와서 출판사에서 펴낸 『시를 쓰는 소년』은 의미가 남다른 책이다. 이 책은 미시마가 문단에 데뷔한 스무 살 무렵부터 만년의 사십 대까지 발표한 단편 12편을 묶어 국내 처음으로 소개한다. 자전적 서사를 담은 사소설적 작품부터 형식적 실험이 돋보이는 단편까지, 그의 문학적 스펙트럼을 압축해 보여주는 작품들이 실려 있어 장편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미시마의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비극적 천재, 문제적 작가, 천황주의자, 동성애, 극적인 죽음. 미시마 유키오를 수식하는 단어는 많지만,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단편집에는 미시마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특히 책의 첫 번째 소설인 <곶이야기>는 조숙한 소년이 한 여름 휴가에서 겪은 일을 그리고 있는데, 미시마 특유의 유려하고 시적인 표현들이 가득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영겁의 미사를 끊임없이 노래하는 파도 소리는 바다에서 먼 산기슭 별장의 베개마저 밤마다 흔들었고, 꿈속에서는 어느새 소리도 없이 흘러온 바다가 툇마루 끝까지 밀려와, 물에 잠긴 뜰의 채송화 위로 작고 붉은 도미 떼가 지나가는 모습 따위가 그려졌다.
- '곶이야기', p.11
이 단편은 한 소년이 곶으로 올라가는 길에 비밀스러운 서양식 별장을 발견하고, 그곳에 살고 있던 젊은 남녀와 숨바꼭질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단편을 읽고 나면, 하나의 논리적인 이야기가 아닌 꿈결 같은 연속된 감각만 남는다. 마치 꿈에서 깬 후, 내용은 기억할 수 없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뚜렷한 감각이 남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지점에서 감각을 언어로 치환하는 미시마의 탁월한 방식이 드러난다. 자홍빛 싸리꽃,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솔잎 아래 향기, 뜨거운 태양의 무게, 매미와 오르간 소리 등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다채로운 표현들이 의식에 차례로 자국을 남기면서, 꿈결 같은 여름 오후의 어느 순간을 만들어낸다.
나는 비명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었지만, 그것이 만약 진자 비명이였다면, 비명이란 저토록 아름다운 소리에는 어울맂지 않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순수하며 탁함이 없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기에, 뭔가 고귀한 새 울음소리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 '곶이야기', p.11
이 단편을 미시마는 전쟁의 공습 속에서 유작처럼 써 내려갔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작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과 묘한 위태로움이 깔려 있다. 하지만 그 비극적인 기운은 아름다운 묘사들과 함께 어우러져 더욱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그린다. 평론가 와타나베 가즈오가 이 작품을 두고 “랭보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듯이. 이 작품은 미시마의 환상성과 찬란한 언어들이 유독 돋보이는 작품이다.
표제작 <시를 쓰는 소년은> 서른 살의 미시마가 열다섯 무렵을 회상하며 집필한 소설로, 문학적 방향성과 관념, 언어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단편에서 시를 쓰는 행복에 도취된 소년은 자신의 무의식적 나르시시즘을 깨닫게 되는데, 그 나르시시즘은 스스로를 시의 천재라고 여기는 우쭐함이 아닌, 세상의 모든 감정의 원형이 이미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희한한 믿음 속에 있다.
심지어는 비이성적인 확신에 의해, 그가 이 세상에서 아직 체험하지 않은 감정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처럼 예민한 감수성에는, 이 세상의 모든 감정의 원형이, 어떤 경우에는 단지 예감이기는 했지만, 포착되어서 복습되어 있고, 나머지 경험은 이러한 감정의 원소들을 적절히 조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시를 쓰는 소년', p.55
미시마는 이 작품이 자신의 가장 절실한 문제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의 병적이고 집요한 애정 아래 키워진 미시마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고, 햇빛을 자유롭게 볼 수도 없었다고 한다. 아마 그런 것들이 그의 특유의 예민함과 불안함 그리고 섬세함을 키우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릴케와 오스카 와일드의 글을 탐닉하면서 시를 쓰기를 즐겼는데, 그는 시를 쓰는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시라는 것이 그의 행복을 보증하기 위해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시가 태어나기 때문에 그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행복은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것을 받았다거나, 부모를 따라 여행을 떠나는 행복과는 확실히 달라서, 아마 누구에게나 있는 행복이 아니라, 그만이 알고 있는 것임은 분명했다.
- '시를 쓰는 소년', p.47
미시마의 모든 주제들은 언제나 아름다움과 나란히 놓인다. 하지만 그 탐미주의는 꽤나 극단에 가까워서 때로는 현실을 넘어서고 죽음과 맞닿아 있다. <우국>은 에로티시즘과 죽음을 담고 있는 미시마의 대표작으로, 군부 쿠데타 사건 당시 일어난 젊은 중위 부부의 동반 자살을 그리고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육체적 욕망과 충성심, 죽음과 아름다움이 하나가 되는 기쁨의 순간을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것은 잠깐 동안의 신비로운 환상으로 중위를 이끌었다. 전장의 고독한 죽음과 눈앞의 아름다운 아내, 이 두 차원에 발을 걸치고, 불가능한 이 둘의 공존을 구현하면서 지금 내가 죽으려 하고 있다는 이 감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미로움이 있었다.
- '우국', p.268
이 작품의 생생한 묘사는 간혹 현기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우아한 문장을 한 줄만 더 읽고 싶다는 마음이 읽기를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밀어낸다. 어떤 치밀한 힘에 이끌리듯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낭만주의 시대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구현된 죽음의 광경이 펼쳐진다. 잔혹한 죽음은 미시마의 정교하고 유려한 문체를 통해 하나의 의식처럼 단정하고, 철저하고, 엄숙한 형태로 완성된다.
조금 전 그렇게 죽어가던 남편과 자신을 갈라놓은 고통이, 이번에는 자신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자, 남편이 이미 영유하고 있는 세계에 함께할 수 있다는 기쁨만이 있을 뿐이다. 괴로워하는 남편의 얼굴에는, 처음 보는 뭔가 불가해한 것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다. 레이코는 남편이 믿은 대의의 진짜 쓴맛과 단맛을 이제야말로 자신이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남편을 통해 경우 맛보았던 것을 이번에는 틀림 없는 자신의 혀로 맛보는 것이다.
- '우국', p.277
작품을 읽어 내려가면서, 아주 오래전부터 죽음을 사유하던 사람이 아니라면 쓸 수 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미시마의 마지막 순간, 전통적 가치와 천황제의 회귀를 외치며 할복하던 그의 극적인 죽음을 떠올리게 됐다. 그는 할복 1년 전부터 자신의 최후를 준비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을 비롯해 단편집에 실린 여러 작품들을 읽다 보면, 그의 죽음은 아주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선 작가였지만, 결국 자신의 삶마저 스스로 쓴 가장 극적인 작품으로 남겼다.
불꽃처럼 살 거야. 한순간 온 힘을 다해 밤하늘을 물들이고, 곧바로 사라져버려야지”하고 열렬히 생각했다. 여러가지 생각해보았지만, 그 외의 삶은 떠오르지 않았다.
- '시를 쓰는 소년', p.50
꽤 오랫동안, 문장들을 음미하고 글을 통해 마음속에 무언가 그려보는 기쁨을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소설을 읽을 때조차 나를 ‘깨우는’ 묵직한 문장들을 찾는데 집중했고, 간혹 감탄은 하면서도 소설 속 세계와는 항상 한 발짝 떨어져서 텍스트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는 사이 문학은 어느 순간 너무 건조한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름답고 섬세한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으로 가득한 <시를 쓰는 소년>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텍스트가 하나의 생생한 세계로 느껴졌다. 정교한 문체, 감각적이고 생생한 묘사, 그 안에 열광적인 힘이 가득한 책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번 단편집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이 미시마의 숨겨져 있던 단편들을 만나고, 그 문장 하나하나가 지닌 매혹을 천천히 음미해 보기를 바란다. 그의 세계는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강렬하며, 그래서 잘 잊히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