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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나를 안아주는 포근한 중력 [영화]

다르덴 형제 '자전거 탄 소년'

by 한소현 에디터
2025.11.13 21:29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전거 탄 소년.jpg

 

 

 

1. 존재하기 위한 몸부림-감각의 전환을 중심으로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
 

 

주인공 시릴은 두 손으로 전화기를 쥔 채로 숨죽이고 있다. 또렷한 음성으로 송출되는 기계음은 아버지의 부재를 말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잔인한 현실을 통보하지만, 시릴은 완강히 거부하며 프레임 밖으로 도망친다. 그러나, 카메라는 시릴을 곧바로 붙잡는다. 철문을 넘고, 철조망에 올라타지만 보육원 직원들에 의해 제지당한다. 양손을 붙들린 채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내는 시릴의 모습 위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제 2악장의 화음이 흐른다.

 

<자전거 탄 소년>은 물리적 감각이 모여 추상적 감각으로 수렴되는 영화다. 감각의 전환은 다르덴 형제의 창작론과 연결된다. 다르덴 형제는 영화평론가 미셸 시망과의 인터뷰에서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한다.

 

 
“저희는 액션을 조합해 가면서 인물들의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인물들의 캐릭터에서 출발해 액션을 찾아내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줄곧 신체의 움직임에서 출발했다.

 

이를테면 시릴의 행위는 망설임이 없으며 결사적이다. 시릴의 강렬한 신체적 반응은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비롯되었다. 인간은 외부에서 공격이 가해졌을 경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반응한다. 이것은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동물적 본능이다. 그러나 시릴은 오히려 위험이 도사리는 공간으로 뛰어간다. 그 순간 카메라는 ‘살아야 한다’에서 ‘존재해야 한다’로 이행하는 움직임을 포착한다.

 

 

자전거5.jpg



본편에서 시릴-사만다가 맺은 관계의 성질 또한 동일한 구조로 이행한다. 이들의 관계는 혈연, 이성애와 같은 형태로 묶이지 않는다. 단지 우연에 의해 촉발된 물리적 고통에서 시작된다.

 

첫만남으로 다시 돌아가보면, 시릴은 보육원에서 탈출해 아버지와 살았던 옛 거주지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건물의 문은 굳게 닫혀 있고, 경비실의 음성은 아버지의 부재를 되풀이한다. 포기할 수 없는 시릴은 건물 내부와 연결되는 병원 벨을 눌러 안으로 침입한다. 곧바로 보육원 직원들이 찾아오고 잡히지 않으려는 몸부림 끝에, 시릴은 사만다를 끌어안고 있다.


사만다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 시릴의 모습은 오프닝의 모습과 닮아 보인다. 기계음이 흘러나오는 전화기, 병원에 앉아있는 모르는 얼굴을 붙잡아야만 하는 것이 시릴이 놓인 현재다. 이후 사만다가 시릴을 위해 하는 모든 행위는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시릴이 사만다를 놓은 이후, 선명히 남아 있던 통증이 그녀의 안으로 서서히 삼투했을 것이다.

 

사만다에게 우연히 찾아온 통증은 그녀를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끈다. 그녀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시릴을 보듬는다. 그것은 중력과 같은 자연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사만다가 시릴의 자전거를 찾아 보육원을 방문했던 날, 시릴이 그녀의 차 주위를 빙빙 돈 것처럼 그리고 그녀의 차가 멀어지자 빠른 속력으로 뒤따른 것처럼 말이다.

 

 

 

2. 시릴의 몸부림에 응답하는 사만다의 몸부림


 

시릴-사만다의 관계가 보호아동-위탁모에서 가족의 형태로 전환하는 시점은 연출적 특이성을 지닌다. 움직이는 시릴을 중심으로 뒤따르던 카메라가 갑작스레 멈춰 있는 사만다를 조명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외화면 밖으로 이탈한 시릴의 시간을 생략하고 사만다를 긴 호흡으로 담아낸다. 이 불연속적인 변화는 이전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시릴은 불량 청소년 웨스의 계략으로 한밤중에 나가 범죄를 저지를 계획을 세운다. 이를 의심한 사만다가 시릴을 막으려 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추격전이 발생한다. 시릴에게 팔을 물리고, 칼에 맞아 피를 흘리지만 사만다의 움직임은 필사적이다. 시릴이 떠나간 후, 그 자리에서 사만다는 흐느끼고 있다.


이것은 마치 시릴의 몸부림에 응답하는 사만다의 몸부림으로 보인다. 그녀의 움직임이 러닝타임 내내 지속되었던 시릴의 움직임과 조응하는 순간이다. 카메라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윤리적 주체의 얼굴을 포착하기 위해 그곳에 남은 것이 아닐까. 시릴 없이 존재하는 사만다의 쇼트에는 시릴이 존재했다.

 

 

자전거6.jpg

 

 

 

3. 나를 안아주는 포근한 중력을 향해


 

시릴은 줄곧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다. 구원의 얼굴을 마주하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그러나 그 끝에는 불가피한 추락이 소년을 기다리고 있다.

 

이를테면 마지막 시퀀스, (사만다와 함께 바비큐 파티를 하기 위한) 숯을 사러 주요소에 방문한 시릴은 피해자의 아들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시릴이 나무 위로 빠르게 올라가 보지만, 결국 그가 던진 돌에 맞아 하강한다.

 

이 추락 곡선은 시릴이 아버지 카토울에게 훔친 돈을 건네는 장면과 정확히 포개진다. 웨스에게 버림받은 시릴은 훔친 돈을 갖고 카토울을 향해 달린다. 카토울은 시릴이 건넨 돈을 보고 잠시 고민하지만, 감옥을 가는 것이 두려운 듯하다. 그는 벽돌로 높이 쌓은 담 위로 시릴을 밀어 올리고 말한다.

 

 
“뛰어내려”
 

 

나무에서 떨어진 시릴이 땅을 향해 엎어져 있는 모습은 카토울의 주문과 호응한다. 아버지의 주문은 마지막 시퀀스에 이르기까지 지연된 후, 돌이 되어 시릴을 향한다. 어쩌면 시릴은 아버지가 던진 돌에 맞아 추락했다. 잠시 기절해 있던 시릴이 꿋꿋이 일어나 걸으면, 상처의 쓰라림은 오롯이 보는 사람의 몫이 된다.

 

그럼에도 시릴의 뒷모습에서 따스한 화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시릴의 몸짓 때문이다. 전속력으로 내달리던 소년이 숯을 품에 안고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몸짓이 아닌 기다리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몸짓으로. 마침내 소년은 자신을 추락시키는 중력으로부터 벗어나, 포근하게 안아주는 중력의 품으로 향한다.

 

 

자전거탄소년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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