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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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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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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을 보며 떠오른 영화가 있다. 바로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이다.

 

'세계의 주인'은 관종과 인싸 사이, 종잡을 수 없는 열여덟 '주인'이 같은 반 학우 '수호'의 서명 운동을 거부하면서 벌어지는 스토리,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선천적 청각 장애로 양쪽 귀가 들리지 않는 프로 복서 게이코가 어느 날 복싱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변화하는 일상을 다루는 스토리다.

 

전혀 다른 스토리로 전개되는 두 영화는 어떤 지점에서 닮아있을까.

 

 


1. 게이코와 주인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의 게이코와 ‘세계의 주인’에서 주인은 위치성을 공유한다. 게이코는 청각 장애를 지니고 있고, 주인은 과거 성폭행 피해를 겪었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문득 불편한 순간들과 마주하곤 한다.

 

이를테면 게이코는 소통의 불편함을, 주인은 단편적인 시선의 불편함을 느낀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 게이코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과 매일같이 만난다. 편의점에서, 길목에서, 복싱장에서, 직장에서. 그때마다 게이코는 마스크를 내려주기를 부탁하거나, 펜과 종이를 이용해 의사를 전달하거나, 혹은 상대의 말을 듣지 못하고 지나간다.

 

주인은 학교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미묘한 변화를 겪는다. 수호의 서명 운동에 동의하는 것을 거부한 주인은 이후 자신이 성폭행 피해자임을 밝힌다. 그러자 함께 동고동락했던 친구들의 시선이 달라진다. 주인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고 어색하다. 섣부른 단정과 과한 배려는 되려 주인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래서 게이코와 주인은 누군가에게 어렵고 조심스러운 존재로, 혹은 이해할 수 없는 무례한 사람으로 남는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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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후의 시간


 

두 영화는 모두 사건 이후의 시간을 다룬다.

 

(관장의 인터뷰를 미루어 짐작했을 때) 게이코는 어린 시절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으나 영화는 이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긴장감을 형성하는 ‘복싱 경기’는 극의 초반과 극의 후반에 배치되어 팽창과 이완의 리듬 또한 깨져버린다. 결국 영화가 보고 싶은 것은 복싱 경기의 스펙터클함이 아닌 반복되는 훈련, 그리고 상처를 회복하는 시간에 있다.

 

‘세계의 주인’ 또한 마찬가지다. 극의 초반, 주인은 자신이 성폭행 피해자였음을 밝힌다. 이때 영화는 그 시점의 생생한 공기만 담아낼 뿐, 플래시백으로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거나 특정 정보를 나열하지 않는다. 영화는 사건 이후의 삶, 고백 이후의 일상에 출발점을 찍는다.

 

그렇다면 게이코와 주인이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어떨까. 게이코는 복싱을 주인은 태권도를 통해 에너지를 표출한다. 게이코는 손을, 주인은 발을 사용한다. 게이코는 매일 복싱장으로 출근해 있는 힘껏 손을 뻗고, 주인은 매일 태권도장을 찾아 마음껏 발차기를 한다. 이들은 모두 자기 안에 응축된 어떠한 힘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미트를 타격한다.

 

타격하는 행위는 닦아내는 행위와 함께 이루어진다. 게이코는 생계를 위해 호텔 룸메이드로 일하고, 주인은 성폭력 피해자 자조 모임의 일원으로 청소 봉사를 한다. ‘청소’하는 행위란 다시 어질러짐을 전제로 하듯, 이들은 덤덤한 표정으로 어질러진 풍경을 정리한다.

 

게이코와 주인은 반복적 행위(때리고 닦아내는)를 통해 계속해서 쌓이는 부스러기들을 청소한다. 괜찮다가도 갑자기 터져 나오는 분노와 눈물을 꿋꿋하게 주워 담고, 주름을 펴고, 닦아내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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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각자의 방식으로 보듬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세계의 주인’은 아버지가 부재한 세계다. 게이코와 주인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과 살고 있다.

 

두 영화에서 어머니는 딸의 아픔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한다. 게이코의 어머니는 게이코의 복싱 경기를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거나, 복싱을 그만둘 것을 권유한다. 주인의 어머니는 매일 술을 마시고 꽃을 사는 행위를 반복하는데, 딸의 피해 사실을 몰랐거나 혹은 외면했다는 죄책감의 발현으로 보인다.

 

반면 게이코와 주인의 남동생은 이들이 겪는 고통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예컨대 게이코의 동생은 게이코에게 ‘맞고 때리는’ 복싱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면에서 동생은 복싱장의 한 가운데 있다. 게이코가 매일 출근하는 그곳에서 복싱의 기본에 대해 배운다.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이 찍은 게이코의 경기 장면이 온통 엉망인 것으로 짐작건대, 동생은 분명 누나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이 괴로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게이코의 위치에 서서 게이코가 되어볼 것을 택한다. 그제야 시종일관 무표정이던 게이코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띤다.

 

주인의 남동생 해인은 마술을 좋아한다. 극의 후반부, 학예회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 해인의 마술은 주인을 향해 있다. 무언가 사라지는 마술을 연습하는 해인의 행위에는 주인의 아픔이 눈 녹듯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래서 결국 주인의 마술이 실패할지라도, 그 마음은 주인에게 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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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부재는 가족 구성원을 넘어 주변 사람들을 통해 채워진다. 특히 복싱을 하는 게이코와 태권도를 하는 주인에게 관장은 좋은 어른이 되어준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서 관장이 게이코의 경기를 분석하고, 게이코의 몸짓을 복기한다면, ‘세계의 주인’에서 관장은 주인을 위해 태권도장을 열어두고, 간식과 음료수를 건넨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서 관장이 게이코의 옆에서 함께 섀도복싱을 한다면, ‘세계의 주인’에서 관장은 상처로 그을린 벽을 함부로 지우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 게이코의 옆에, 주인(그리고 미도)의 뒤에 서서 일상적 리듬의 일부가 된다. 이로써 존재하는 결핍은 각자의 방식으로 보듬는 사랑에 의해 채워진다. 게이코와 주인이 만들어내는 반복적 리듬이 따뜻하게 와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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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화가 서 있는 자리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관장의 위치에 서서 게이코를 바라본다. 게이코의 옆에 서서, 게이코의 경기를 돌려보고, 게이코에게 물을 건네고, 게이코의 동작을 복기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 세계가 생생하고 섬세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게이코의 속도에 발을 맞추는 영화의 걸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게이코의 생략된 시간과 마음은 느린 속도와 롱테이크, 같은 장소를 같은 구도로 보여주는 방식, 반복되는 일상적 리듬 등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세계의 주인’은 세계 속 모든 인물들의 위치에서 주인을 바라본다. 주인의 상처를 바라볼 땐 거리를 두고, 주인의 연애를 바라볼 땐 가까이 다가간다. 주인의 아픔에 대해 함부로 위로하진 않되, 멋대로 지우지도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 세계가 생생하고 섬세하게 느껴진다면, 주인에게 맞춰 변화하는 시선의 자리 때문일 것이다. 혹은 누군가에게 이 세계가 불편하다면, ‘선의의 혼란’(윤가은 감독) 속에 놓인 수호의 시선도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닮아 있는 두 세계를 통해 우리는 게이코의 인간적인 기량을, 주인의 변화무쌍한 현재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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