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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램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 얼음과 불밖에 없는 아이슬란드에서 양에게 희망과 절망, 인생까지 건 농장 사람들이 있다. 그중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볼스타다르 농장에는 40년 넘게 대화하지 않는 두 형제가 산다. 그들은 양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아내도 자식도 없는 그들에게는 서로가 유일한 이웃이자 가족이지만 사이가 좋지 않다. 그렇기에 가족 같은 존재는 양들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양에게 스크래피가 발병하고 만다. 그것도 올해 최고의 양 순위를 결정하는 페스티벌에서 말이다. 스크래피는 양의 뇌와 척수를 파괴하는 일종의 전염병이다. 이를 최초로 발견한 것은 동생인 굼미. 그는 형 키디의 양이 1등을 차지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형의 양이 얼마나 좋은 근육을 가졌는지 남몰래 살펴보다가 그 양에게서 스크래피 증상을 발견하게 된다.
농장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모든 양을 도살 처분하고 2년 뒤 다시 새로운 양을 들이는 것, 또 하나는 내가 키우는 양이 스크래피일 수도 있다는 불안의 씨앗을 가진 채 계속해서 양을 키우는 것. 결국 검역청은 전염병 퇴치를 위해 모든 양의 도살 처분을 결정한다. 형 키디는 이를 거부하고 동생 굼미는 직접 보내주고 싶다며 총으로 양을 모두 죽인다. 하지만 우습게도 키디는 양을 모두 잃고 굼미는 남몰래 양을 빼돌려 키우게 된다.
이렇듯 영화 <램스>는 사이가 좋지 않은 형과 동생이 혹독한 아이슬란드의 겨울 속에서 ‘양’이라는 접점으로 침묵을 끝내고 힘을 합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왜 ‘RAM’인가
영화 제목이 왜 'RAMS'
앞서 말했듯 두 형제에게 있어 양은 희망과 절망을 담은 존재다. 희망도 양으로부터, 절망도 양으로부터 오는 그들은 영화 초반에 양을 모두 잃어야 한다는 절망을 얻었으나 영화 중반부에서 약간의 희망을 얻기도 한다.
‘ram’은 숫양을 뜻하기도 한다. 굼미는 빼돌린 양 중 그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숫양 ‘가르푸’와 암양 여러 마리를 통해 번식을 시도한다. 즉 숫양 가르푸는 볼스타다르 농장의 회복과 미래를 담은 희망적인 존재로 상징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굼미가 양을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키디는 그에게 이렇게 묻기 때문이다. “숫놈도 있어? 볼스타다르에 남은 유일한 숫양이잖아.”
또 ‘ram’은 ‘들이받다’라는 뜻을 가진다. 농장에 스크래피가 발병된 이후, 키디는 굼미를 탓한다. 키디는 술을 마신 뒤 분노와 원망에 휩싸여 굼미의 집 앞에서 진상처럼 소리 지르기도 하고, 총을 쏴 창문을 깨트리기도 한다. 또, 굼미는 키디에게 양을 빼돌린 사실을 들킨 이후 그가 집으로 쳐들어올까 싶어 총을 든 채 경계한다. 마치 머리 박치기를 하는 양과도 같은 살벌함. 이를 통해 우리는 'ram'이란 한 단어 안에서 양과 형제 모두를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빼앗길 수 없는 나의 ‘RAMS’
양은 형제에게 빼앗길 수 없는 것이다. 형 키디는 끝까지 양을 도살하길 반대하며 내 양에게 손대지 말라 경고하지만, 결국 강제적으로 양을 잃고 만다. 그에 반항하듯 축사를 소독해야 함에도 키디는 이를 끝까지 거부한다. 현실에 순응하며 모든 양을 처분한 듯 보였던 동생 굼미도 사실은 빼앗길 수 없어 양 몇 마리를 빼돌린다.
양은 이들의 삶과 같다. 2년 후 새로운 양을 들여 다시 농장 일을 시작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그들에게 있어 그저 낙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그 2년 동안 혹독한 아이슬란드를 견디기란 어려운 일이며, 더군다나 다른 농장주는 이미 파산해 마을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형제가 빼앗기지 않으려 한 것은 양, 동시에 볼스타다르 농장에서의 삶이다.
이 영화는 비교적 정적이고 느릿하다. 그래서일까. 결말은 예상 밖의 강렬함을 제공한다. 지하실의 양들은 축사 소독을 위해 볼스타다르 농장을 찾은 한 직원에 의해 발각되고 만다. 굼미는 검역청이 집에 들이닥치기 전, 형의 집 앞으로 양을 모두 데리고 가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형제의 비밀스럽고 위태로운 양몰이가 시작된다.
검역청은 본부에 인력 지원을 요청해 농장 전역을 살피려 하고, 그 사이 키디는 양들을 모두 데리고 나와 굼미와 함께 산으로 향한다. 산에 양들을 풀어두면 알아서 살아남을 거란 희망으로 두 사람은 산을 향해 양몰이를 한다. 하지만 날씨는 점점 혹독해지고 거센 눈보라가 그들을 뒤덮고 만다. 그럼에도 키디는 계속 가야 한다며 점점 더 눈보라 속으로 들어간다. 양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당장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를 눈보라 속에서 굼미는 양을 모두 잃고 자신의 양 가르푸를 애타게 찾다 결국 기절하고 만다. 쓰러진 동생을 발견한 키디는 굴을 판 뒤 동생과 함께 그 속으로 몸을 숨긴다. 동생의 옷을 벗기고 자신도 옷을 벗은 뒤 동생을 끌어안는 키디. 체온을 나눠주는 듯한 키디의 애처로운 손길과 흐느낌이 가슴을 저민다. 사실 이전에도 굼미는 자신의 집 앞에서 동사할 뻔한 키디를 자주 집 안으로 데려와 옷을 벗겨 몸을 녹여주곤 했다. 그럼 키디는 정신을 차린 뒤 익숙한 듯 굼미의 집을 떠났다.
서로를 원망하고 싫어하지만 결국 서로를 살리는 형제. 영화는 양의 행방과 형제의 생사에 대한 힌트조차 남기지 않고 끝이 난다.
“괜찮아질 거다. 내 동생아.”
정말 그들은 괜찮아질까. 희망과 절망을 계속해서 저울질당했던 형제의 마지막은 그래도 괜찮아질 수 있을까. 빼앗길 수 없어 행한 선택이었으나 결국 모든 걸 눈보라 속에 내던져버리게 된 결말 속 키디의 마지막 흐느낌은 후회일까 원망일까. 아이슬란드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설경과 더불어 살벌하면서도 결국은 애틋해지고 마는 형제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영화 <램스>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