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직립보행 고양이와 물구나무서는 소녀의 특별한 여정 - 고스트캣 앙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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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고스트캣 앙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가로운 시골 마을에 위치한 ‘소세지절’. 이곳은 고양이 요괴 앙주가 마당을 쓰는 빗자루 소리와 빚으로 인해 절에 맡겨진 11세 소녀 카린의 한숨 소리가 함께 뒤섞이는 곳이다.
아재미 넘치는 37세 고양이 요괴 앙주는 꾹꾹이 안마 알바를 하며 돈을 벌고 있지만 파칭코에 빠져있고, 동네 아이들에게 형님 소리를 들으며 음료를 얻어먹지만 버려진 새끼 메추리를 돌보는 무심한 듯 따스한 츤데레 삼촌 같은 매력이 있다.
이러한 앙주 앞에 시니컬한 11세 소녀 카린이 등장한다. 세상을 떠난 엄마와 빚더미로 인해 도망치는 신세인 아빠. 카린은 아빠를 통해 소세지절에 맡겨지게 되고, 카린은 아빠가 떠나기 전 엄마의 기일 전까지는 꼭 돌아오라고 당부한다. 이후 카린은 혼자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재밌는 일을 찾아보려 하지만 전부 무료하고 한숨만 나올 뿐이다. 그중 제일 카린에게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바로 아무렇지 않게 오토바이를 타고 사람 말을 하며 돌아다니는 커다란 고양이일 테다.
고양이 요괴 앙주의 ‘냐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와 카린의 ‘쯧’ 세상 불만 가득한 입소리의 불협화음이 가득한 영화 <고스트캣 앙주>.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이자 코를 찡하게 만들기도 하는 이 사랑스러운 영화를 보며 흥미로웠던 부분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직립보행 고양이, 앙주
앙주는 사람만 한 고양이 요괴다. 직립보행을 하며 사람처럼 맥주도 마시고 자전거도 탄다. 이러한 고양이 요괴의 탄생 과정은 헛웃음이 날 정도로 일상적이다. 소세지절의 스님이 길거리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 앙주를 데려와 키우다 어느 날부터 앙주가 죽지도 늙지도 않는 요괴가 된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눈 떠보니 머리에 뿔이 자랐다는 말인 거다. 그만큼 하루아침 별다른 기별 없이 요괴가 된 앙주. 하지만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러한 요괴가 존재하는데, 바로 ‘바케네코(化け猫)’다.
영화에서는 자막으로 앙주를 ‘고양이 요괴’로 소개하지만, 원어로는 ‘바케네코’라고 소개한다. ‘바케네코’는 둔갑 고양이라고도 하는 일본 민속 설화 속 고양이 요괴로 뒷다리를 세우고 걸어 다닐 수 있으며 사람의 말을 한다고 한다. 이처럼 일본에는 사람이 기르던 고양이가 일정 나이, 혹은 일정 크기가 되면 바케네코라는 요괴로 변할 수 있다는 민간전승이 있다.
바케네코에 대한 설화 중 죽은 자를 부활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도 그럴 게 영화에서 죽은 엄마를 보고 싶어 하던 카린을 위해 앙주가 함께 지옥으로 향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가난신을 통해 앙주가 지옥으로 향하는 방법을 찾게 되고 앙주는 가난신을 따라, 카린은 앙주를 따라 지옥(영화에서는 화장실 변기가 지옥으로 향하는 문이 된다)으로 향한다.
지옥에 도착해 엄마를 찾은 카린은 지옥귀들에게 들키자 엄마를 데리고 이승으로 도망치게 된다. 앙주는 오토바이에 카린과 카린의 엄마를 태우고 살 떨리는 레이스를 한다. 이때 도깨비의 모습을 하고 방망이를 든 지옥귀들과 염라대왕까지 출두한 이 레이스의 전개가 다소 엉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옥을 탈출하고 나서부터 다른 결의 영화를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영화에 불교적인 내용을 담아내고자 하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물구나무 소녀, 카린
이 영화는 불교적인 내용이 곳곳에 숨어있는 듯하다. 가령 불교에는 부처의 제자인 목련존자가 생전의 업보로 인해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부처에게 청을 하는 목련존자 이야기가 있다. 지옥은 주로 중생의 업보를 청산하는 곳으로, 영화에서도 잔혹하게 업보를 청산하는 영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카린의 엄마는 지옥에서 잡다한 일을 맡아가며 조금 평화롭게 하루를 보낸 것 같이 등장한다. 즉 카린의 엄마는 큰 업보가 있지 않구나 예상하게 된다. 이처럼 여러 장면에서 불교와의 연관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들이 있었는데, 이를 토대로 영화를 해석하다 보면 엉뚱했던 지점들도 제법 흥미롭게 다가온다.
여기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한국불교문화포탈에 의하면 『목련경(目蓮經)』에서는 중생이 지옥에 떨어질 때 문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업풍에 날려 거꾸로 매달려 가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즉 거꾸로 매달린다(도현, 倒懸)는 것은 지옥에 떨어진 중생이 거꾸로 매달려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며, 서서 생활하는 인간이 거꾸로 매달린다는 것은 고통스럽고 부자유스러운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영화를 복기해 보면 많은 것이 들어맞기 시작한다. 가령 지옥으로 향하는 방법이 문을 통해서 가는 것이 아닌 화장실 변기에 머리부터 집어넣어 거꾸로 들어가야 하는 방식이었던 점이 그러하다. 또한 지옥에 도착한 카린 일행이 갑작스레 천장에서 거꾸로 매달린 채 내려오는 카린의 아빠를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이는 카린의 아빠가 빚을 탕감하는 과정에서 이승과 저승을 왔다 갔다 하며 죽기 일보 직전에 놓여있다는 걸 코믹하게 그린 장면이다. 이 또한 거꾸로 매달린 모습으로 저승에 들어왔다 나가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또 영화에서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소재가 있는데, 바로 ‘물구나무서기’이다. 카린은 종종 화가 나거나 울적할 때 방 안에서 뜬금없이 홀로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이후 카린의 엄마가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게 되어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카린은 이제 혼자서 물구나무서기를 잘할 수 있다며 갑작스럽게 엄마에게 물구나무서기를 보여준다. 비틀거리는 카린을 보고 엄마는 완벽한 물구나무서기를 보여준다. 그 상태로 엄마는 지옥행 차에 올라타기까지 한다.
카린이 홀로 방 안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한 이유는 카린의 당시 상태가 무척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게 카린은 엄마를 따라 자신도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그럼에도 카린의 물구나무서기는 아직 아슬아슬하고 반면 엄마의 물구나무서기는 꼿꼿하고 자유자재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엄마는 세상을 떠난 저승의 존재이고 카린은 앞으로도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이승의 존재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가장 인간적인 요괴들에 대하여
이 영화에서 나를 울리게 한 것은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한 요괴들로 인해서였다. 외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 가장 인간적인 마음을 가진 요괴들, 그 마음과 행동이 사랑스러워서 울컥하게 만드는 요괴들 말이다.
거짓과 진실을 오묘하게 섞은 카린의 이야기에도 요괴 친구들은 진심으로 함께 울어주며 돈이 없는 카린을 도와주기 위해 직접 돈을 벌기 시작했고, 아무도 없는 숲속 구멍에 떨어져 엉망진창이 된 카린을 개구리 요괴가 발견해 구해주었다. 또, 어른들이 없는 곳으로 둘이서 도망치자 약속했던 남자아이는 카린과의 약속을 무심하게 생각했지만, 앙주는 카린을 위해 카린과 엄마를 데리고 지옥에서부터 끝까지 도망쳤다. 그러다 염라대왕에게 붙잡혀 벌벌 떨어도 그의 앞을 가로막아 카린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한 요괴들은 우리의 염원과 상처에서 탄생한 캐릭터들이 아닐까 싶어진다. 어두운 구멍에 고립되어 엉망진창인 나를 찾아내고 알아봐 주는 요괴. 진땀 흘리고 이곳저곳 맞아가면서도 나를 데리고 도망쳐줄 사랑스러운 요괴. 그리고 죽지 않고 내 곁에 오래도록 있어 줄 요괴.
“나는 고양이 요괴라서 안 죽어. 늘 곁에 있을 수 있다냥.”
지옥에 있던 엄마를 데리고 이승으로 도망친 카린의 선택이 보는 내내 터무니없다고 느껴짐에도 어딘가 가슴이 저릿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지옥에서 꺼내어 손을 꼭 붙잡고 세상 끝까지 함께 도망가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은 11살의 카린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가슴 깊이 존재하기 때문 아닐까.
하지만 카린과 엄마가 결국 다시 헤어졌던 것처럼 우리는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야 한다. 슬플지도 모르는 이 세상의 법칙에서 죽지 않고 늘 곁에 있어 줄 고양이 요괴 앙주가 우리의 곁에 있다고 생각하면 울상을 짓다가도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월 22일 개봉하는 영화 <고스트캣 앙주>를 보며 외로움과 상처를 가진 이들이 더는 딱딱한 벽에 기대어 물구나무서지 않을 수 있길, 부드럽고 포근한 고양이 요괴의 품에 안겨 하루의 고통을 떨쳐낼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조유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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