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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한국 영화 속 탈식민주의'를 참고했습니다.
최근 극장가에 활기를 되찾게 해준 영화,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난 후,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다. 바로 배종 감독의 ‘웰컴 투 동막골’이다. 영화의 소재, 서사적 구조 등 닮은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두 영화를 보고, ‘익숙하지만 낯설다’ 라는 공통된 느낌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한국 영화의 흥행 공식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익숙하다’라는 감각을, 동시에 장르의 전통적 구조를 우회한다는 점에서 ‘낯설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웰컴 투 동막골’이 그랬듯 ‘왕과 사는 남자’는 ‘낯섦’의 감각이 선사하는 재미와 감동을 통해 한국 영화 시장에 새로운 긴장과 설렘의 새싹을 틔우고 있다.
1. 영화의 위치- 익숙한 '사건'보다 낯선 '과정'에 집중하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쉬리>,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들과 같이 200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계보를 잇는 영화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선 영화들이 시각적 스펙터클과 갈등 구조를 강조하며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한 반면, 본편은 관객의 기대를 유도함과 동시에 해체하는 방식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가령 영화의 초반, 남과 북의 대치 상황을 보여주며 갈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유명한 ‘팝콘 신’(남한 병사 표현철(신하균)이 무심코 던진 수류탄이 옥수수 곳간에 불시착하며 팝콘이 되는 장면)을 통해 긴장감을 완화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 긴장감을 느슨하게 풀어주며 기존의 영화들과 다른 경로를 택한다.
그렇다면 ‘왕과 사는 남자’는 어떨까.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흥행했던 작품들을 나열해 보면 주로 오컬트, 범죄 액션 등 자극적인 소재의 영화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폭력적인 장면을 전시하고 즐기는 경향 속에서 ‘왕과 사는 남자’는 조금 벗어난 선택을 한다.
이를테면 시각적 스펙터클이 발생하는 유일한 장면(이홍위가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 호랑이를 잡는 장면)에서 위협적으로 보여야 할 호랑이의 모습이 어딘가 엉성하다. 물론 기술적인 한계였는지도 모르지만, 이 장면은 ‘동막골’의 멧돼지 장면과 교차한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 ‘멧돼지 신’은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큰 멧돼지를 생포하는 장면으로 긴박함과 속도감이 요구된다. 그러나 멧돼지가 달려오는 장면은 느리게 편집되어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으며, 코믹하게 연출돼 액션의 재미는 약해진다. ‘왕과 사는 남자’의 호랑이, ‘웰컴 투 동막골’의 멧돼지 장면은 화려한 액션을 전시해 관객을 사로잡기보다, 이를 기점으로 화합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초점을 두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계유정난 이후의 시간이자 권력의 중심지에서 한참을 떨어진 유배지를 영화의 메인 공간으로 설정함으로써 영화는 피바람이 부는 정쟁의 현장과 거리를 둔다.
“연차가 쌓이며 사건보다 인물의 동기에 집중하게 됐다.”
- 씨네21 장항준 감독의 인터뷰
장항준 감독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듯, 본편은 관객에게 익숙한 ‘사건’ 그 자체보다 낯선 ‘과정’에 집중한다. 어린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비운의 왕이 아닌, 인간 이홍위가 약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유배지에서 보냈던 미궁의 시간을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복원하는 것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흥행 가도 속에서 관객의 기대를 흥미롭게 전복시키는 ‘웰컴 투 동막골’처럼 ‘왕과 사는 남자’는 폭력 미학을 전시하는 극장가에서 현시점, 관객에게 필요한 자극을 제공하고 있다.
2. '동막골'과 '광천골'의 환상성
‘왕과 사는 남자’와 ‘웰컴 투 동막골’을 비교하는 것은 단순히 산업적인 측면에서 교차하는 두 영화의 위치 때문만은 아니다. 두 영화의 배경이 되는 강원도 산골에 있는 ‘동막골’과 강원도 영월에 있는 ‘광천골’은 어딘가 닮았다.
예컨대 ‘동막골’은 한국 전쟁이라는 외부 상황의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한 공간이자 현실성에서 이탈한 상상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어떤 이유, 조건 없이 마을에 방문한 손님들을 환대한다. 동막골이라는 신비로운 공간,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순수함에 주인공 표현철과 리수화(정재영)는 서로에 대한 경계심과 각자 품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는다.
물론 ‘광천골’은 ‘동막골’의 순수함과 거리가 있지만 외부와 단절된 유배지(삼면이 강으로 막힌 독특한 지형)라는 점, 마을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홍위가 마음을 열고 상처를 치유받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영화의 초반, 마을과 마을 간의 경쟁, 질투, 욕망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채워지기에 어쩌면 ‘동막골’에서 작동한 환상성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두 공간의 환상성은 남과 북, 왕과 백성이라는 거리를 큰 사건 없이도 설득력 있게 봉합한다. 이념, 신분, 나이 등 현실 속에서 나와 타인을 가르는 수많은 조건들은 이곳에서 무력화되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시대극에서 유일하게 영화적 상상력이 허용된 이 공간은 아마도 감독이 진정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곳이다. ‘동막골’에서 남한 병사와 북한 병사가 동그랗게 둘러 앉아 함께 멧돼지 고기를 먹는 것처럼, ‘왕과 사는 남자’에서 이홍위와 마을 사람들이 마주 앉아 음식을 나누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것은 단순하다.
따듯한 음식을 나누듯,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나누는 것. 그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3. 상실, 그 치열함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두 영화를 관통하는 것은 ‘상실’이라는 감각이다. 그리고 '상실감'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두 영화는 교차한다. 가령 ‘웰컴 투 동막골’에서 ‘뱀이 나와’라는 대사와 함께 강렬하게 등장한 여일(강혜정)은 영화의 중반부, 연합군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한다. 동막골의 순수함을 상징했던 여일이라는 존재의 죽음은 마을 사람들, 그리고 여일에게 호감을 느꼈던 북한 병사 서택기(류덕환)에게 슬픔을 안겨준다. 여기서 영화의 특별한 지점은 ‘상실’의 고통에 순응하고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맞서 싸우는 저항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주저앉아 우는 것이 아니라 무기를 들고 싸우러 나가는 저항의 정신이 영화 곳곳에 서려 있다.
다시 '왕과 사는 남자'로 돌아와서, 계유정난 이후의 시간을 다루는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이홍위에게 주어진 여분의 삶을 보여준다. 이홍위뿐 아니라 엄홍도,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주어진 상실감은 영화의 중심을 지탱하는 요소다. 그렇다면 누구나 겪는 상실이라는 감각에 대해 영화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영화는 상실에 대해 호랑이 앞에 선 이홍위의 눈빛, 그리고 이홍위의 시신을 품에 안는 엄홍도의 몸짓처럼 치열한 것이라 말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 그리고 기꺼이 보내주는 것의 치열함을 두 사람의 눈빛과 몸짓 속에서 배울 수 있다. 박지훈 배우의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듯, ‘더 이상 사람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는 결심’은 그 무엇보다 강력하다.
두 영화는 처음 보는 공간에 관객을 초대하고, 우리가 잊고 있던 인간의 본질이자 연대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가 반가운 것은 실은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화합과 공존의 가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