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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고등학생 아델은 빈칸들로 점철된 미래의 답을 찾고 있는 문학소녀다. 아델 앞에 어느 날 파란 머리의 대학생 엠마가 나타난다. 아델은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엠마로 인해 이전에는 몰랐던 뜨거운 감정을 느끼게 되고, 평온했던 아델의 삶은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시놉시스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열다섯 살, 아델이 파란 머리의 대학생 엠마를 만나며 사랑을 경험하는 퀴어 영화이자 성장 영화다. 영화의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 ‘블루’는 영화의 중심을 지탱하는 색이다. 물론 (영화의 주인공 아델이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해석이 싫다고 말한 것처럼) ‘블루’의 의미는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아델의 여정을 따라간 끝에 떠오른 단어는 바로 ‘자유’였다.


영화에서 ‘자유’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해 논하는 엠마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사르트르 철학의 핵심은 존재가 본질을 앞선다는 거야

태어나자마자 존재는 있지만 본질은 행동으로 만들어가는 거지

그래서 각자 책임이 막중해

 

 

이에 덧붙여 엠마가 ‘자신의 자유와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 있어 도움을 줬다’라고 말하면, 듣고 있던 아델의 눈빛이 반짝인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것, 스스로 인생을 책임지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심오한 철학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들의 관계는 아직 인생도, 사랑도 어려운 아델에게 엠마가 좋은 스승이 되어줄 것임을 암시한다.


본편의 원제목은 <아델의 삶, 1장과 2장>이다. 제목에서 아델의 삶을 두 개의 장으로 나누듯, 영화는 세 개의 문학작품을 활용해 아델의 여정을 설명한다. 강렬한 첫 만남과, 예정된 비극, 그리고 자기 자신에 이르는 과정까지. 아델에게 다가올 미래를 마치 예언하듯 배치된 작품들을 보고 있자면 이 영화 자체가 아델을 위한 하나의 거대한 문학 수업처럼 보인다.

 

 

 

1장, 사랑이라는 상실을 경험하다



 

첫사랑은 이처럼 순진하게 시작되나보다

너무 달콤하기에 잘 보일 욕망마저 잊는다

그 애도 남다른 눈길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가슴 한구석에 구멍이 뚫린다는 게 뭘까?

가슴엔 뭔가 보태질까? 빠질까?

 

 

마리보의 소설, <마리안느의 생애>로 시작하는 영화는 영화의 주인공 아델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질문한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가슴에서 무엇이 빠져나가는지. 사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자체는 상실에 가깝지 않은지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해 아델과 같은 반 학생은 이렇게 답한다.


 

후회감이에요,

마음에서 빠져나간 것을 채우지 못하는 후회감.

 

 

똑부러지게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는 또래 친구와 달리, 아델의 표정은 아리송하다. 아델은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이고, 사랑을 하는 순간 무엇이 내게서 빠져나가는지 답할 수 없다. 문학소녀 아델에게 사랑은 책 속에만 존재하는 아름답고 고귀한 대상일 뿐이다.


그런 아델에게 생애 처음 느껴보는 강렬한 감정을 주는 인물, 파란 머리의 엠마가 나타난다.  아델이 같은 학교 선배와 데이트 하러 가던 길, 횡단보도에 서 있는 엠마에게 단숨에 시선을 빼앗긴다. 엠마 또한 아델을 향해 시선을 보내는데, 이때 서로를 향한 눈빛에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엠마가 아델을 향하는 자신의 시선을 이해하고 있다면, 아델은 자신의 시선이 엠마에게 머무는 것을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아델에게 이 순간은 숨겨진 욕망과 처음으로 마주하는, 무언가 가슴에서 빠져나간 강렬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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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은 엠마를 만난 이후 인생의 첫 상실을 경험한다.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인정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이전의 삶과 이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짜 같아
 

 

그럼에도 아델은 사랑이라는 상실을 경험한 끝에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유년기란 크지도 강하지도 성숙하지도 못한 무력함의 시절이지

안티고네는 유년기에 속해있어


비극이란 막을 수 없는 것, 우리가 뭘 해도 피할 수 없는 것,

영원에 닿아있으며 시간을 초월한 것, 인간의 원리나 본질에 연관된 것이지

 

 

이제 아델은 이전의 삶과 작별한 뒤, 엠마와 사랑을 시작할 일만 남았다. 그러나 이 무렵 수업의 주제는 <안티고네>, 막을 수 없는 비극에 대해 다룬다. 새로운 챕터에 선 아델은 사랑을 하기로 결심한 순간, 통제할 수 없는 감정들과 마주해야 함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2장, 나 자신에 이르는 길



 

나보다 더 낮게, 언제나 나보다 더 낮게 물이 있다. 언제나 나는 눈을 내리깔아야 물을 본다. 땅바닥처럼, 땅바닥의 한 부분처럼, 땅바닥의 변형처럼.


물은 희고 반짝이며, 형태 없고 신선하며, 수동적이라 못 버리는 한 가지 아집이라면 그것은 중력. 그 아집 못 버려 온갖 비상수단 다 쓰니 감아 돌고 꿰뚫고 잠식하고 침투한다.


그 내면에서도 그 아집은 또한 작용하여 물은 끊임없이 무너지고, 순간순간 제 형상을 버리고, 오직 바라는 것은 저자세, 오체투지의 수도사들처럼 시체가 다 되어 땅바닥에 배를 깔고 넙죽이 엎드린다. 언제나 더 낮게, 이것이 물의 좌우명.'향상(向上)'의 반대.


- 프랑시스 퐁주(1899~1988) '물' 중

 

 

엠마가 아델의 학교로 찾아온 다음 날, 아델의 친구들은 엠마의 정체를 물으며 아델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아델이 레즈비언 클럽에 갔다는 사실을 빌미로 언어폭력을 행사하기에 이른다. 그 다음 장면에서 등장한 작품이 바로 프랑시스 퐁주의 시, <물>이다. 장면의 연결과 ‘가톨릭의 바른 마음과 반대되는 시’ 라는 부연 설명으로 짐작했을 때 이 작품은 다수의 고정관념(‘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면 안 된다는’), 친구들의 행위를 비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아델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점과 작품에 포함된 구절(‘제 형상을 버리고’)을 연결했을 때 그 의미는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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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엠마와 아델의 사랑과 이별을 다루는 2장의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정확히는 사랑이라는 비극을 경험하게 될 아델의 여정을 설명한다. 이를테면 아델은 물의 본능이자 거부할 수 없는 아집, ‘엠마’라는 중력을 따라 흐른다. 남들이 말하는 높은 곳(고정관념)이 아닌 ‘향상’의 반대로, 자신의 본질(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향해 내려간다. 그 과정에서 아델은 때때로 제 형상을 잃어버리곤 하는데, 보통은 이런 식이다.

 

아델은 화가지망생인 엠마를 위해 화폭의 모델이 되어준다. 발가벗은 채로 포즈를 잡고 있는 아델과 아델을 화폭에 그려넣는 엠마의 위치는 둘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엠마의 전시회를 축하하는 기념으로 모인 파티에서 엠마가 아델을 ‘자신의 뮤즈이자 영감의 원천’이라 소개하는 것처럼, 이제 아델은 엠마를 위해 존재한다.


여기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아델이 놓친 것이 있다면 물의 본성이다. 물은 끊임없이 무너지고 아래로 흐른다. 그렇게 어딘가에 갇히지 않으며,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엠마와 사랑에 빠진 아델은 아래로 흐르는 것을 거부한다. 가령 엠마는 현실에 안주하는 아델에게 ‘나를 위해 요리하지 말고, 너를 위해 글을 써라’ 라고 조언하지만, 아델은 ‘이게 내 행복의 방식’이라며 맞받아친다. 그제야 둘의 견고했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결국 아델이 동료 교사와 바람 핀 사실을 엠마에게 들키면서 둘의 관계는 종지부를 찍는다. 아델은 엠마를 처음 만나 겪었던 상실의 아픔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데, 그것은 이전의 것보다 더 깊고 진한 상실이다.


 
내가 너 없이 어떻게 살아?
 

 

엠마를 향한 아델의 대사에서 알수있듯, 아델은 엠마가 없는 자신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이는 영화의 초반,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해석은 싫다고 말하던 아델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영화는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엠마와 평생 행복하게 사는 것이 유일한 꿈인) 아델에게 ‘상실’이라는 고통을 쥐어주며 다시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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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이 여정을 따라가며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자유’란 마냥 푸르고, 붉기만 한 것이 아니다. 사랑이 비극을 포함하고 있듯, 자유는 상실을 포함한다.

 

아델이 1장에서 엠마와의 만남을 통해 이전의 삶과 이별했듯, 2장에서는 엠마와의 이별을 통해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우리가 볼 수 없는 3장에서 아델은 엠마라는 중력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 이르는 새로운 중력을 찾아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아델을 찾아 전시회장을 뛰쳐나온 남자가 결국 아델을 놓치고 마는 것처럼, 카메라가 아델을 따라가지 않는 것처럼 아델은 자유롭게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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