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함께했던 분께 글을 한 편 쓰고 싶었습니다. 책 제목은 『제자리에 있다는 것』, 저자는 클레르 마랭입니다.
책 소개를 잠시 빌리자면, 이 책은 "오늘날 세계의 현실과 그 속에 놓인 우리의 실존이 겪는 첨예한 딜레마를 가로지르는 질문의 책이며, '자리 옮김'의 사유를 시작하기 위한 단서들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고 합니다. 한 권의 책 안에 여러 저작들이 막하게 소개되며 저자의 비평 같지만 또 비평만은 아닌 사유를 읽을 수 있어 가독성이 좋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거나 '불안'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손을 뻗어볼 만한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매개로, 새로운 출발선에 선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글을 써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저 빛 속으로 스며드는 자신을 느끼며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걸어가길 바랍니다.
축하의 순간에는 풍성하게, 슬픔을 전할 때는 힘을 조금 빼서 건넵니다. 저는 이런 자기 조절의 능력을 갖춘 존재야말로 꽃의 값어치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환희'와 '축복'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것도 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꽃이 어둠의 내면을 상징하지 않는 이유는, 섬세한 감각으로 맡을 수 있는 향기와 눈으로 구분할 수 있는 아름다움 속에서 '절정의 미(美)'를 구현해 내기 때문이겠죠. 애초에 어둠과는 거리가 먼 색채만을 지니고 있는 것도 꽃의 속성입니다. 그런 용도를 타고난 꽃의 '수(數)'로 우리는 마음의 정도를 표현합니다. 그래서 저도 '제자리'의 범주를 벗어나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꽃다발로 마음의 무게를 전해보려 합니다.
최근 함께 기자직 스터디를 준비하던 한 분이 '그만두겠다, 이 길이 맞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2년여 동안 꾸준히 자신의 길을 닦아온 사람이었고, 워낙 성실한 본성을 지녔기에 그 말을 듣는 순간 막막함이 밀려왔습니다. '앞으로 내 글을 누가 봐줄까'하는 현실적인 생각과 함께,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섭섭함이 마음속에서 뭉게뭉 피어올랐습니다.
그는 인턴을 해보니 알겠다고 했습니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어떤 상황을 바라보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고,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고 싶은데, 그렇게 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게 흘러가버린다고 말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분은 성실함으로 '맞지 않는 일'을 버텨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실함이 마치 기본값인 양 살아왔던 그 모습이, 얼마나 그를 옥죄었을지 생각하니 안타까웠습니다.
책에서 나온 말이 중첩돼 보입니다. "언제나 환영받지 못하는 비합법적인 존재로 느껴지는 공간이 "침입해" 들어간다는 느낌을 주는 접근 불가능한 공간이 있다" 그에게 기자직은 그런 공간처럼 느껴졌던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반대로 저는 인턴을 하면서도, 스터디를 함께하면서도 단 한 번도 그런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결국 그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저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공간이 있긴 합니다. 대학교에 처음 올라와 낯선 도시에서 삶을 스스로 꾸려가야 했던 시절, 그때의 방황이 문득 떠오릅니다. 적응을 하기 위해, 이 도시와 친해지기 위해 일부러 힘든 아르바이트만 골라서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다 오늘 광주시립미술관 근처를 달리다 문득, 다른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요즘 따라 타지로 다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잦기도 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스쳤습니다. "아, 이제 정말 이곳에 적응했구나." 그 사실이 괜히 신기했고, 시간의 흐름이 묘하게 내 편처럼 느껴졌습니다.
스터디원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면, 식사 자리에서 마주한 그의 표정이 유독 오래 남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품어온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후련함이 스쳐 지나가는 얼굴이었습니다. 사적으로 친분이 깊지 않아, 질문 하나하나를 던질 때마다 조심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뱉었습니다. "그만두고 난 후에는 무엇을 해보고 싶나요?" 그는 "여행을 다니며, 책을 쓰고 싶다"는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그 책이 훗날 어떤 파장을 일으켜 그의 새로운 직업으로 이어질지, 혹은 그저 소중한 경험으로 남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시간만큼은, 스스로를 옥죄지 않은 자유 속에서 머물길 바랐습니다.
보통은 나라에서 제안한 일련의 과정을 마무리했을 때 성대한 꽃다발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안은 인생에서 그리 자주 주어지지 않기에 꽃다발을 받을 기회 또한 한정적입니다. 저는 여기 한 가지 상황을 추가하고 싶습니다. 종잇장이 수여되는 공식적인 순간만이 아니라, 스스로 시간을 쏟아 한 장의 열정을 다한 일을 마칠 때, 그 결심의 순간에도 꽃다발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어떤 만남은 수년에 걸친 성찰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깊은 곳부터 흔들어놓습니다. 한때 동료였던 스터디원의 앞길이 꽃다발에 제가 채워놓은 꽃처럼 만개하길 바라며, 셀 수 없이 많은 꽃들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