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영화보다는, ‘더 나은 세상’이라는 키워드에만 집중한 채 이 책을 집어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2년 전쯤, 불안이 저를 잠식하려 할 때 도서관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오랜 시간을 보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니, 죄책감이라도 덜자라는 심상으로 갔던 그곳에서 보석같은 이 책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저는 늘 주류보다는 ‘비주류’의 자리에 스스로를 세워두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책 속에서 등장한 ‘독립영화’라는 단어에 유독 마음이 끌렸습니다. p.18을 보면 독립영화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막대한 자본이나 고도의 기술력 없이도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됐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

 

 

저 문장에 왜 심장이 쿵쾅댔는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자본이나 고도의 기술력 없이 신선함으로 무장한 글을 쓰기로 스스로 결심했고, 그리하여 처음으로 기사를 발제했던 게 광주독립영화관 취재였습니다. 그 책을 통해 하나의 기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는 게 저에게는 큰 의미로 와닿았죠. 시간이 많이 흐른 어떤 하루, 변영주 감독님의 강연을 들으러 갔습니다. 지적 허영을 채우고자 일을 미루고 달려간 자리였죠. 강연 도중에 그는 영화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같은 것을 보았지만, 각기 다른 의미를 갖고 나오는 그 묘한 매력이 재밌었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지만, 절대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이렇게 다시 곱씹어봤죠. 생각해보면 모든 예술이 그렇지 않은가 하고요. 첫 글의 주제를 무엇으로 꾸며낼까 고민하다 재미난 발상이 떠올랐습니다.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를 나와 또 다른 누군가가 함께 읽는다면, 서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얼마나 다를까. 그 밑줄들을 나란히 놓고 본다면, 결국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통로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이 형식을 통해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를 소개하려 합니다.

 

 

 

#1. ‘왜’라는 질문: 끈질긴 소통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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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질문의 답에 따라 우리의 관계는 바뀌어요. 소통의 목적도 바뀌고, 저는 우리가 살면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식으로 끈질기게 소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A는 ‘무섭더라도 소통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통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을 드러내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그 ‘드러냄’이 어느새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져, 요즘은 그것마저 공포로 다가옵니다. A는 전공 토론 수업을 듣습니다. 10명이 채 되지 않는 학생들이 철학적이고 포괄적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어느 때보다 기다려집니다. 같은 질문에도 너무나 다른 시선과 생각이 쏟아져서, 귀 기울이다 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곤 합니다.

 

이 수업시간 중, 교수님과 의견 충돌이 자주 생기는 편이라, 때로는 감정이 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미묘한 감정의 부딪힘 속에서도 한 사람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A는 교수를 보고 ‘아는 게 많고 배움이 깊다고 해서 꼭 인간적인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A는 저입니다. 전공 수업을 들으며 느끼는 것이 참 많아요. 수강생이 많은 강의에서는 각자 자리에서 무언가에 몰두하느라 바쁩니다. 그것이 교수와의 소통을 막는 건지, 혹은 또 다른 방식의 소통인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짓는 표정, 행동, 옆 사람과의 묘한 기류까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기류가 수업시간을 넘어 이어진다면, 결국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깊이 알게 되겠죠. 자신을 드러내며 상대를 이해하는 일, 그것만큼 세상에 필요한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전 세계적으로 극우가 확산되는 지금,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각종 전문가들이 나서는 이유도 결국 ‘소통’에 있습니다. 세상을 더 ‘잘’ 알기 위해, 저는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B도 수업시간 안에서 공감대를 찾았습니다. 그가 듣는 수업 중 50분에 끝내지 않고 시간을 꽉 채워 수업을 하는 교수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뒷 수업이 없던 B는 교수님의 말을 오래 듣는 것이 흥미로웠지만, 다른 학우들은 달랐습니다. 50분이 지나면 가방을 정리하고 일부러 책장을 넘기며 조용히 항의하는 모습을 보였죠. 교수님 입장에서는 그런 행동이 달갑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의 제기를 한 명이라도 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을 누구도 직접 이야기하지 않았죠.

 

B는 그 장면이 밑줄을 그은 문장과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B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소통이란 결국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 우리는 종종 서로를 제멋대로 해석하거나 어림짐작으로 이해하려 들죠. 그런 의미에서 ‘소통의 끈질김’을 먼저 보여주는 어른으로 변 감독님을 떠올렸습니다. 용기를 내어 대화의 창구를 열고, 다소 창피할 수도 있는 실수를 드러내며 함께 방안을 찾아 고쳐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요.


 

 

#2. 매력적임으로 무장한 대목: “변 감독 심지어 게으르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세 편의 다큐멘터리인 「낮은 목소리」 2편 개봉 당시로 돌아갑니다. 영화계에서 명망받는 임권택 감독이 영화를 보러 왔고 영화 시사가 다 끝난 이후, 변 감독과의 짧은 대화가 장면묘사됩니다.

 

 

(생략) “얼굴은 벌게지고 끊임없이 땀이 나는 와중에 고체로 된 건 아무것도 못 먹고 소주만 들이켜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니까 임권택 감독님께서 우스갯소리로 ”변 감독 생각보다 되게 재미없네“라고 하셨는데 또 이어서 감독님께서 제게 국악 좋아하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국악은 안좋아한다고 대답하니까 ”변 감독 심지어 게으르네“ 그러시는 거예요.”

 

 

그 후로 변 감독님은 국악만 들었다고 합니다. A는 이 대목을 읽고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유는, 두 영화감독의 고집의 세기가 여실히 드러나보였기 때문입니다. ‘국악을 싫어하나 보네’라는 상대의 의향을 떠보는 듯한 질문에 한 마디도 못한게 분하여서 다음날부터 국악만 팠다는 것도 변영주 감독다웠고, 하고 싶은 말들을 거르지 않고 툭툭 뱉는 임권택 감독도 보통은 아닌 것만 같았죠.

 

A는 개인적으로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적 표현에는 고집이 드러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각자가 지닌 지적인 고집을 좋아합니다. 심지가 확실한 사람들이 작품을 만들어낸다 생각하면 그 정체성이 더 도드라진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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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는 ‘게으르다’는 표현을 다르게 느꼈습니다. 보통 무언가를 안 좋아한다고 말할 때, 상대가 누구든 게으르다는 반응을 하는지 의아해했습니다. 대개는 이유를 묻거나 권유를 하죠.

 

그러나 임권택 감독님은 확고했던 거예요. 임 감독 본인이 느꼈을 때 국악은 분명 재밌는 분야였고, 변 감독이 재미없다고 느낀 건 찾아 듣지 않아서 그렇다는것을.

 

B는 어쩌면 임 감독이 변 감독의 평소 성향을 꿰뚫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예상을 합니다. 만약 임 감독이 ‘한 번 들어봐’라고 말했다면 변 감독이 일순간 국악에 매몰될 수 있었을까하며 다른 상황을 교차시킵니다. 분명 이 사람(변영주 감독)는 재밌는 인간이고, 끈질긴 인간이기에, 그걸 끄집어 내는 본인만의 표현을 쓴 게 아닐까. 그렇게 B는 넘겨 짚어봤다고 합니다.

 

 

 

#3. 우리는 모두 특별하지 않다. 그래서 아름답다.


 

A는 <우리는 모두 특별하지 않다>라는 챕터를 특히 아낍니다. 감성에 젖어 하루를 보내다가도 현실로 돌아가 사회 속으로 다시 던져졌을 때 누군가의 힘 없는 말 한마디에 생채기를 입고 위축된 채 집으로 돌아온 적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아지는 듯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다가도 이런 순간 문득 힘이 빠지곤 하지요.

 

그날 변영주 감독의 강연에서 A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에게는 미치도록 하고 싶은 일이 신문기자 인데요. 인턴을 해보니 굳이 알려진 중앙지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고, 취재를 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독립신문을 창간하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다만 아직은 세상에 내던져지는게 두렵고 그런 상황 속에서 자주 벽을 느끼곤 합니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요?"

 

 

그러자 변 감독은 "하고싶은 일을 하려면 멘탈을 키워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A가 강연 이야기를 중간에 꺼낸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는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하나의 실감나는 이야기로 엮어내는 일'이야말로 편법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 믿습니다. 그런 신조로 세상을 살아내다 책 속의 한 문장이 A를 붙잡았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뻔하게 살아요. 특별한 사람은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존중받아야 할 유일한 이유는 내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만큼 뻔하기 때문이에요."

 

 

표면적으로는 '넌 특별해'라는 말이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자신을 끊임없이 입증해야만 살아남는 시대 위에 서있죠. 그래서였을까요. 그 문장은 A에게 오히려 독특한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뻔하게 살아도 괜찮다'는 담담하지만 깊은 위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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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는 상처를 받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합니다. 그저 다들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겠지 어림짐작하죠. 하지만 B는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어요.

 

 

“우린 다 똑같이, 비슷한 정도로 불행한 사람들이야.”

 

 

그렇게만 생각하면 삶에 특별한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요. B는 이 생각을 소설 속 주인공에 빗대어 설명했습니다.

 

"소설가가 집필한 주인공은 늘 매력적이에요. 그래야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으니까요. 작가는 그 인물을 둘러싼 여러 설정을 덧입히죠. 주인공은 결코 평범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만의 분명한 지위를 가져요. 현실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제 인생의 주인공은 저잖아요. 그렇다면 제 캐릭터 역시 평범할 수는 없겠죠."

 

A와 B가 공통적으로 초점을 맞춘 건 '존중'인 듯합니다. 평범하지만 유일무이한 존재들이 모여 이루는 사회. 그 사회가 조화롭게 굴러가길 바라는 마음을 바탕으로 둔 채 말입니다. 그 말은 마치 <우리는 모두 특별하지 않다> 속 한 문장을 거꾸로 비춥니다.

 

A가 그은 밑줄과 B가 그은 밑줄을 비교하며 읽다 보니 서로의 성향이 확연히 다른게 드러났습니다. 이를테면 A는 '성취'라는 키워드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문장이라도 자연스레 '계획'과 '지향'의 방향으로 해석했어요. 반면 B는 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A처럼 '나'를 책에 지속해서 투영하기보다는 책 소개란에 적힌 문장인 '당신의 이야기를 얌전히 듣고자 한다'에 오히려 집중한 듯 합니다. 그래서 그는 변영주 감독을, 자신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드러내는 인간적인 매력이 가득한 사람으로 느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개인적인 사견을 덧붙이며 소개를 마치고자 합니다. 책을 읽는동안, 문장을 훔쳐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차용해 또 다른 나의 글 속에 녹여내곤 하지만, 이 책만큼은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 그 문장들을 온전히 품어낼 만큼 제 그릇이 깊고 넓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솔직하게 변영주 감독님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며 그의 시선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닮아가려 시도해보았습니다. 삶에서 이런 책을 만난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좋은 길잡이를 얻은 듯 마음이 많이 따뜻해졌습니다.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로 추운 겨울 말랑히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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