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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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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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들』은 정신병동에서의 시간을 토대로, 저자 수잔 스캔런이 고통의 의미와 문학이 그 고통을 어떻게 품을 수 있는지를 사유한 에세이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의 형식을 “인용과 기록, 성찰과 비평이 콜라주처럼 맞물리는” 형식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이 소개에 걸맞게, 책의 내용은 때때로 혼란스러울 정도로 파편화되어 있다. 글과 글 사이에 유기적인 흐름이 느껴지기보다는 순간순간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는 것처럼 보이며, 그 형식은 때로는 소설 같은 대화문이기도, 담백한 회고록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집중력을 가지고 완주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어 나갈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다면, 이 책이 선사하는 ‘읽을거리’로서의 형식상 재미와, ‘문학’으로서의 내용상 재미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조각난 문단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면서, 그 말 조각이 책 속에서 가지는 위치와 그 의미를 고민하는 과정이 마치 게임을 하는 듯한 원초적인 재미를 제공했다. 가장 보편적인 읽기의 재미가 기승전결의 흐름을 따라가며 저자가 의도하는 지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라면, 이처럼 중간이 듬성듬성 비어 있는 지도를 가지고 직접 그 땅을 한 걸음 한 걸음 밟아 나가며 채워 나가는 것도 분명 읽기의 재미일 것이다. 이는 일종의 지적 탐구심을 자극하는 과정이기도 해서, 과연 이 탐험의 끝에 무엇이 보일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게 했다.

 

게다가, 이 책은 기존의 책과 연구를 다양하게 언급하고 인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방식은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쉽게 질리고 포기하게 만들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인용의 과정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느낌을 주기보다, 저자 역시도 그 책(또는 연구)을 읽은 ‘독자’의 입장임을 보여줌으로써 그 허들을 낮춘다. 이는 책이 회고록의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러다 보니 나와 같이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도 무언가를 알고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고, 저자가 그 책을 보고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지에 집중하게 되어 전혀 어렵지 않게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책 자체의 주석이 많지 않았던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앞서 언급한 것이 읽을거리로서의 재미라면, 내용적인 재미 역시 탁월한 책이었다. 저자가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주제 의식은, 나에게는 크게 다음의 2가지로 전달되었다.

 

 

 

고통은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 고통이란 것이 맥락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 당시 정신병동에서의 경험을, 고통을 서사(Narrative)로 설명하고자 했던 의료진과 고통을 설명함으로써 돌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한 환자의 상호작용으로 풀어낸다. 의사는 설명이 가능한 상황에 만족하고, 환자는 만족한 의사가 자신을 보살펴준다는 결과에 의존해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한다. 이로써 고통은 실질적인 통증이나 증상이 아닌, 서로 간의 수요가 일치하는 맥락적 의미를 갖게 된다. 이것은 정신병동에서 환자가 “존재하는 방법”이라고 설명된다.

 

 
너의 비밀을 우리에게 말해
가 내 치료 계획의 표어였다. 넌 딱 네 비밀만큼만 아픈 거라고! – 그들은 나를 치유하고 치료할 수 있었다. 일종의 보상으로.
 
하지만 그 무엇도, 특히 우리가 병리라 부르는 것 중에는 그 무엇도 고립된 채 존재하는 건 없으며, 우리는 맥락 속에, 그 순간이라는 맥락과 서로의 존재라는 맥락 속에 존재한다는 것, 우리는 부서지기 쉬우며 유동적이라는 것은 꼭 말하고 싶다. 우리는 존재하는 방법을 배워 간다.
 

 

이처럼 환자의 요청을 의료진이 확증해 주는 순환의 과정이 병동의 장기 입원 환자들에게 내재되면, 병원에서의 일련의 상호작용에서 치료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그 과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구조적 욕구만이 의미를 갖는다. 아는 것을 묻고, 원하는 것을 답한다. 거기에 어떤 의미도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고통은 “연기되고”, 진단서에 간단한 진단명으로 요약됨으로써 갈무리된다.

 

 

여는 질문이 끝나고 여섯 달에 한 번씩 하는 정규 평가로 넘어가 병원 생활에 관해 질문한다. 어젯밤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물론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

 

완벽한 도피가 덫이 되는 거야. 너도 아주 금방 알게 돼. 탈출하고 나면 그다음엔 탈출하는 역할을 연기하기 시작한다는 걸. 그리고 일단 네가 그 역할을 연기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네가 연기하는 역할에 걸맞게 너에게 반응해. 그렇게 너는 덫에 갇히는 거야. 그 덫이 네 삶이 될 수도 있어.

 

 

 

언어로 고통을 건너는 법


 

둘째, 이처럼 취약해진 개인에게 찾아온 문학은 단순히 읽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저자는 ‘광기’에 대해 이야기한 다양한 여성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내고자 했다. 이때 책은 개개인에게 동일한 텍스트로 제공되지만, 그 텍스트가 수용되는 지점과 정도는 개인마다 크게 다르게 나타난다.

 

 

독자와 책 사이 그 수용의 순간은 하나의 화학적 반응이며, 난 늘 그것이 마법이라고 생각해왔다. 때가 딱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 취약성, 자아와 텍스트 사이 흐릿해지는 경계는 계획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수용의 순간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고유한 특성일 수도, 상황적 특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특성 요인을 구분하는 것보다, 그 순간의 스스로를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책이 선사한다는 점이다.

 

고통의 맥락에서 살펴보자면, 고통이 더욱 괴로운 것은 나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오로지 나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의 감각은 타인에게 전이될 수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설명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내가 나의 고통을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중요한데, 이 언어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책이 되는 것이다.

 

 

그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독자가 열려 있을 때, 목소리와 가능성을 필요로 할 때 가능해지는 수용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 읽기는 내 삶을 적극적으로 다시 쓰는 한 방법이 되었다. …(중략)… 그 여자에게 그 책은 자신을 알아갈 방법, 자신을 표현할 언어, 하나의 선물이었다.

 

 

나와 유사한 고통을 겪어 온(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느낀 감정을 텍스트로 이해하고 수용하여 나의 상황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고통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 사회적인 종류의 것으로 변모한다. 기존의 정신병동이 고통의 이유를 개인적인 서사에서만 찾았던 기억을 돌아보며, 저자는 그 치료가 얼마나 “탈정치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개인의 아픔을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때, 고통을 느끼는 개인은 취약한 존재로 간주되고, 실패자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고통을 드러내고자 하는 용기에 제동을 걸고, 고통받는 개인을 사회에서 숨겨 문제의 원인이 더 깊게 곪아 버리도록 만든다. 결국 문제는 악화되고 고통은 보편화되지만, 이를 표현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에게는 회복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진보의 서사. 이는 치료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요구하는 의료계와 제약계의 서사일 뿐 아니라, 정신 질환이 사회가 아닌 자아에 존재하는 것이라 보는 문화의 서사이기도 하다.

 

 

한국은 정신 질환에 대해 사회가 느끼는 거부감을 낮추기 위해 정신과라는 표현을 정신건강의학과로 변경한 바 있다. 또한 정신건강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조기에 정신건강 문제를 발견 및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사회적으로 동의를 얻으며 국가건강검진에서의 우울증 검사 대상이 확대되고 그 주기가 단축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질환은 개인의 나약함의 문제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정신질환으로 고통받았던 개인의 회고적 에세이를 뛰어넘는 의의를 가진다. 사회적으로는 정신질환의 이유를 개인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문화적인 시야로 확대하고 성찰하여 공론의 장을 제공하고, 고통받는 개인에게는 치유의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서 책 읽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특정한 정신질환의 맥락에만 한정되지 않고, 사회적 갈등 상황에서 고통을 느끼는 상황이라면 그 어디든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접근 방식일 것이다. 결국 『의미들』은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 언어로 번역하는 시도이며, 독자에게도 자기 고통의 맥락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나의 고통은 어떠했는지, 그 고통은 어떠한 사회적인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었을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고통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어떤 책에 있었을지, 또 다른 책을 찾아가는 내일을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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