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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영화]

우리가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모를 수밖에 없는 타인에 대하여

by 김하은 에디터
2025.11.05 13:36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영화 <굿뉴스>를 여는 트루먼 셰이디의 대사다. 이 구절을 아냐는 물음에 남자는 ‘뒤에서 어떤 지랄이 벌어지든 간에 사람은 눈에 보이는 걸 믿고, 믿으면 더 이상 구라가 아니다, 저 뉴스처럼’ 이라고 답하며 진실을 뒤에 감추어도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는 간편한 합리화식 해석을 도출한다. 그러나 내겐 이 명제가 약간은 다르게 읽힌다. 의도와는 다르게, 우리가 영원히 알 수 없는 타인의 한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밝히는 문장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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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평소엔 어떤 사람을 만나고 무슨 일을 하는지, 무얼 싫어하고 어떤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지 같은 것들. 요즘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함께 고민하고 나눌 정도면 달의 뒷면까진 아니더라도 옆면 정도는 다 보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그 사람이 속마음을 털어놓은 글을 보고 달의 뒷면을 조용히 짐작해 보게 되었다. 어렸을 때 꿈은 뭐였는지, 지금은 어떤 걸 가장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요즘 새로 읽고 있는 책은 뭔지, 꽂힌 음악은 뭔지.. 내가 보고 있는 앞면이 전부고, 설령 뒷면이 있다해도 그와 같을 것이라고 오만한 착각을 해왔다는 것을 반성했다.


나는 그 사람의 앞면을 알기는 알지만, 그게 거짓이 아닌 것도 맞지만, 여전히 그 사람의 그림자 정도만 더듬더듬 밟아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루걸러 하루도 아니고 시시각각 바뀌는 타인을 같은 속도로 공전할 순 없는 것이다.


우리는 한날한시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나와 개기월식처럼 만나는 타인보다 내 궤도 바깥의 타인이 더 크다. 내가 참아준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오히려 나를 참아주고 있었고,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나조차도 모르게 늘 내게 호의를 베풀고 있었다. 오래 볼 것 같았던 사람은 생각보다 빨리 헤어졌고, 잠깐 보다가 말겠지 싶었던 사람은 신기할 정도로 꾸준히 내 곁에 있다. 타인의 진실이 뒷면에 존재하기에 우리는 영원히 한 부분은 모르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도, 그 사람의 안경을 써서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해도 완전히 타인의 입장이 될 수 없다. 나는 타인과 분리된 객체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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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에는 이러한 달의 뒷면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달의 뒷면이 존재하는지 몰라서 슬픈 이야기, 달의 뒷면이라서 아름답게 남아있는 이야기. 미나토는 겉보기에 사춘기를 맞이한 것 같다. 갑자기 머리를 마구 자르거나 아빠처럼 살 수 없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내 뇌는 돼지의 뇌라는 둥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어디서 담아온 지 모르겠는 더러운 물과 어디서 잃어버린지 모르는 신발 한 짝,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행동은 미나토를 향한 어머니의 의구심을 더 짙게 만들뿐이다.


이런 미나토는 학교에서 ‘괴물’이라 불리는 요리에 관심이 간다. 요리는 화장실에 갇히는 괴롭힘까지 받는 교내 따돌림의 대상이지만 나무늘보와 같은 자세로 힘을 뺀 채 아이들의 공격에 무대응으로 대응하는 친구다. 요리는 미나토에게 다정하다.


미나토의 어머니 사오리는 미나토의 행동들을 토대로 아들이 학교에서 선생에게 학대받고 있다고 오해하고, 그 선생은 장난 같은 타이밍이 축적된 결과로 미나토가 요리를 괴롭히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사실 미나토와 요리의 입장에선 아무것도 모르는 혹은 알아도 모르는 체하려는 어른들이 괴물이다. 미나토는 요리에게 생애 처음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던 터라 혼란에 빠져 울분을 토한 것이다. 요리도 마찬가지로 남자에 끌리는 아이지만 요리의 아빠는 요리에게 학대를 일삼으며 병은 다 나았고 좋아하는 ‘여자애’도 생겼다고 하라며 숨통을 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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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물은 요리와 함께 죽은 고양이를 묻어주려다 불이 나 급히 끄기 위해 배수로에서 담았던 것이고, 신발 한 짝을 도둑맞은 요리를 위해 자기 신발을 하나 내어준 것이었다. 자신이 왜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는 어른과 알지만 본인이 정의하는 ‘정상성’을 강요하며 모르는 체하는 어른 사이에서 미나토와 요리가 느끼는 심리를 대변하듯 한차례 동네를 뒤집어엎는 폭풍우가 지나가고, 둘은 눈앞에 펼쳐진 맑은 풀밭, 자신들의 낙원으로 자유로이 뜀박질해 간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나의 시각만이 한 사건을 규정하고 인식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도 인정하게 된다. 내가 보는 앞면 뒤에 타인의 시각으로 보는 불가분한 뒷면은 의심의 여지 없이 동시에 존재한다. 영화 <애프터썬>의 캘럼과 소피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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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소피와 소피의 아버지인 캘럼 두 사람 모두의 시선으로 ‘여름휴가’를 보여주기에 관객은 사건의 양면을 고루 알지만, 소피는 자신의 천진난만한 시각으로밖에 세상을 볼 수 없는 것이 이 영화가 서글픈 이유이다. 소피가 봤을 때 이번 여름휴가는 완벽하다. 아빠와 단둘이 떠나는 신나는 여행. 수영장 딸린 리조트는 내리쬐는 햇살에 제격이고, 그곳 바에서 만난 언니 오빠들은 다들 멋있고 친절하다. 간만에 친구도 만들고, 같이 게임도 한다. 리조트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마음껏 노래 부르고 아빠와 춤도 함께 추었다. 무료 음료 팔찌를 차거나, 양탄자 값을 지급하지 못하는 등 간혹 의아한 모습들을 목격하지만 소피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이야기 속에서 함께 한 아버지 캘럼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캘럼은 아내와 이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 곧 자신의 생일이지만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려있고,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다다랐다. 겨우겨우 태극권으로 심란한 마음을 달래도 보고, 다리 깁스를 감추고 소피 몰래 울어도 본다. 하지만 압박을 이겨내고 딸과 함께 노래 부르러 나갈 용기는 차마 없다. 점점 더 외롭고 우울하지만, 딸에게 티 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공항에서 속이 무너지지만 소피를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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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소피는 노력하지 않아도 캘럼을 저절로 이해할 나이가 되었고, 그 여름 튀르키예에서 아빠가 캠코더로 기록해 놓은 영상들이 이젠 다른 기억으로 재구성된다. 그때 아빠는 이런 마음이었구나, 그때 찬 노란 팔찌의 기능이 이거였구나, 밤마다 혼자 사라지던 아빠는 어디서 울부짖었구나. 이렇게 우리는 늘 서로를 놓친다. 그리곤 뒤늦게 깨닫는다. 달의 뒷면을.


따라서 우리는 덜 폭력적이고 더 다정하기 위해 달 뒷면의 존재를 인식해야 한다. 타인을 나의 좁은 시각에 가두지 않기 위해, 내가 모르는 타인의 뒷면에 실수로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달의 뒷면에 무지하면 안 된다. 타인의 앞면이 거짓이 아니라 해도 앞면만으로 타인을 한정하지 않기 위해. 언젠가 타인이 자신을 뒤집어 기꺼이 뒷면을 내어놓았을 때 놀라지 않고 따뜻하고 담담한 미소로 포용하기 위해. 또 같은 이야기 구성원에 속한다 해도 타인이 무얼 겪는진 알 수 없고, 남몰래 어떤 고통을 지나는 중인지 모르기 때문에. 타인과 내가 인식하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를 수 있기에, 정말로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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