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국내 여행을 다녀왔다.
보고 싶은 전시가 있고, 숨 한 번 돌릴 시간이 필요해서 겸사겸사 부산으로 향했다.
요즘 부산이 해외 여행객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한다. 번화한 도시인데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여러모로 매력적인 곳이라고. 유명한 관광지 위주로 다녀왔더니 아니나 다를까 앞으로도 뒤로도 외국인이 가득했다. 부산, 핫한 곳이었다.
첫 행선지는 아르떼 뮤지엄이었다.
비 소식이 있어서 바닷가 구경 대신 넣은 일정이었다. 사진 찍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면, 사진 찍어줄 일행이 없는 혼여가 아니라면 연령대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컨텐츠라고 생각했다.
인생 사진이란 뭘까.
SNS의 확산으로 인한 일상의 전시화, 모방이나 동조 심리 뭐 그런 것들 때문에 이런 컨텐츠에 대한 수요가 이어지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예쁜 사진을 남기는 게 목적인 곳. 체험과 몰입이 공존하는 곳에서 사진을 남기는 행위가 무엇보다 의미 있다.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영역으로 두고 따지려는 건 아니고 이렇게 전에 없던 체험 공간이 생겨서 여행할 때 요긴하다.
사람이 들어가야 완성되는 체험도 좋지만, 화폭에서는 재현될 수 없고 기술이 뒷받침되어야만 하는 환상을 그려내는 영상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다음 날은 현대 미술관에 가서 힐마 아프 클린트 전시 관람으로 문화 생활의 시간을 가졌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추상화의 선구자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여성이 미술계에서 주류를 차지하지 못하던 때, 보이지 않는 것을 큰 화폭에 그려냈던 힐마. 성별이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걸림돌이 되는 환경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힐마는 생전에 조카에게 작품을 맡기며 사후 20년간 공개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세상이 힐마보다 느리게 흘러갔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편견을 피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힐마는 칸딘스키보다 빨랐다. 하지만 몬드리안도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그런 미술계에서 힐마의 작품이 도마 위에 올랐다면 난타가 벌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알고 있던 추상화와는 다르게 우아함이 느껴졌다.
자연을 언어로 삼았기 때문일까 보색의 대비도 강렬한 혼선이 아닌 오묘한 혼란처럼 느껴졌다. 추상화를 감상하는 시선은 사람에 따라 다를 텐데 나는 작가의 작품 변천사를 보며 어떠한 개인의 언어가 확립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대표작이나 후기 작품을 보면서 '이 화가의 언어는 이런 거구나' 하는데 나와는 달라서 그 언어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감상한다.
전시 구성에 독특한 부분이 있었다.
보통은 전시 동선을 따라 시선이 흐르는데 힐마展에서는 벽을 뚫어 시선이 미래의 작품으로 흘렀다가 초기작으로 돌아갔다가, 경계를 허물어두었다. 시간대가 다른 이곳과 저곳이 동시에 존재한다.
거주지가 아닌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바짝 긴장하게 되거나 묘하게 들뜬 상태인 해외 여행과는 다르다. 실패해도 다음에 또 오면 되니 평소보다 더 풀어진 상태로 관대한 마음이 된다.
생활감이 묻어있지 않은 장소, 현실과의 거리두기.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