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어딘지 이방인이 된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남들은 아름답다고 예찬하고, 풍부하게 무언가를 감각하고 있는 것 같은 그 공간에 동화되지 않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미술관에서 대체 무엇을 보고 느껴야 하는지 어리벙벙한 상태로 나올 때가 많다.
걸려 있는 그림들은 난해했고, 적혀 있는 더 난해했으며, 작가 설명엔 화려한 학위가 적혀 있고 사람들은 무언가를 느끼는 듯 천천히 유영하며 그림 앞에서 떠나질 않았다.
예술을 향유하는 듯한 그 공간에서, 환영받지 못한 이방인처럼 어정쩡하게 서 있는 감각은 그리 기분 좋지 못하다. 가끔은 미약한 분노나 투정을 부리게 될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이 책을 읽어보면, 미술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시선이 바뀔지도 모른다.
비앙카 보스커의 저서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는 평범한 저널리스트가 미술계 문외한으로 뛰어들며, 현대 미술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브루클린 갤러리 말단 직원, 아트 페어 판매원, 갤러리 큐레이터, 작가 조수, 그리고 마침내 구겐하임 미술관 경비원까지 직접 경험하며 미술계의 겉과 속을 탐구한 잠입 취재기를 담은 책이다.
1. 미술계라는 판에 뛰어들다
앞서 밝혔듯, 미술관에서 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쩔쩔매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저자 비앙카는 당혹과 모호함을 뒤로 하고 집으로 향하는 대신, ‘그 예술이 대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갤러리로 직접 뛰어든다.
이 책의 1부는 그가 갤러리의 잡다한 뒤치다꺼리를 하는 말단 직원 시절을 이야기하는데, 그의 솔직하고도 담대한 질문과 예술에 대한 평이 매우 인상적이고 공감되었다.
화장실 두 칸을 가져다 놓은 난해한 현대 예술 작품을 보며, 비앙카는 솔직하게 “나더러 뭘 느끼라는 거야?”라고 진술한다. 미술관에 가서 이게 예술이야? 묻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지 않는가.
그녀를 골칫거리로 여기는 선배 잭은 그에게 작품을 해설해주며, 퉁명스럽지만 솔직하게 자신이 예술을 느끼는 방식을 설명한다.
“이건 게이 남성에 대한 작품이에요. 여기서 공중화장실은 사랑을 찾아낼 수 있는 곳, 로맨틱한 관계를 가질 수 있고 내가 나 자신일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흠신 두들겨 맞을 수도 있는, 목숨을 잃을 수 도 있는 장소예요.”
“나는 이 작가를, 그의 삶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이해하게 됐고요. 그럼으로써 삶의 경험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요. 인간 경험의 폭을, 그 광대함을 느낀 거예요.”
“이 작품이 소외된 공동체에 목소리를 주기 때문이에요. 나는 사회가 그러한 아이디어를, 라이프 스타일을, 또 다양성을 이해하고 큰 그림에 통합하도록 변화를 만들어내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봐요.”
- 4장, <타인의 이름 없이는 아무도 성공할 수 없다> 84~85p
저자는 잭의 말을 통해, 예술은 단순히 우리의 혀를 자극하는 빅맥 버거가 아니라 체스와 같은 게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룰이 존재하고, 규칙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예술은 단순히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예술 작품은 작가의 의도, 일생, 시대, 배경, 공간, 그 모든 것과 연계되며 그 사이의 치열한 관계 속에서 여러 레이어를 덧입고, 그런 식으로 가치와 의미를 축적해나간다.
나 역시 스무살 초반 막연하게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막막해하며 전시관을 다녔으나, 다양한 예술을 접하고 예술사와 기타 사조를 공부하며, 점점 미술관에서 작품을 읽고 느끼는 방식을 조금씩 취득해나갈 수 있었다.
주인공은 갤러리에서 다양한 예술 종사자들을 만나며, 그들이 각각 예술과 어떻게 관계하고 다양하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눈여겨 배운다.
2. 마이애미 아트 페어에서
비앙카가 갤러리 말단 직원에서, 아트 페어 판매원으로 이직하게 된 2부는 개인적으로 가장 밑줄을 많이 치며 읽게 된 파트였다. 보여주는 ‘전시성’이 주 카테고리인 갤러리와 달리, 아트 페어는 작품을 ‘판매’하게 되는 곳이다.
가끔 숏폼에 비싼 예술 작품에 대한 콘텐츠가 올라오면, 종종 조롱조의 댓글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우리 역시 그 작품이 과연 그만한 가치를 갖는가,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나 비앙카의 솔직한 진술과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우리는 보다 다른 시각으로 그것을 볼 수도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8장에서 비앙카가 논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당찬 평이 즐겁고 인상 깊었다.
아름다움이 늘 예술의 원수였던 건 아니다. …… 그러나 20세기 들어 아름다움과 예술의 지극히 소란스러운 결별이 시작되었다. …… 이들은 아름다움을 부르주아적 억압으로 간주하고, 예술의 겉모습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거부했다. 이들에게 진자 예술은 정치와 사상을 다루는 예술이었다. (중략) 그러나 애초에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 누가 그걸 알 수 있는가? 아름다움은 문화에 따라, 사고방식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르게 규정한다. - 8장, <미술계의 신들, VIP와 나의 첫 그림 판매기> 198~199p
‘찬물만 끼얹는 모더니스트들의 냉랭한 분석 따윈 저리 꺼져.’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우리는 아름다움과 볼일이 없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아름다움은 분명 우리와 볼일이 남아 있었다. - 8장, <미술계의 신들, VIP와 나의 첫 그림 판매기> 202p
‘아름답다’는 말은 이제 와선 어쩐지 낯간지럽고, 장식적인 말처럼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다. 비앙카가 비판하였듯 현대에 와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 절하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가 선언하였듯, “아름다움은 분명 우리와 아직 볼일이 남아 있다.”
비앙카는 작품을 판매하기 위한 해설을 위해, 작품 내에 머무르기 위해 내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비앙카가 스스로 ‘예술 작품’의 판매 가치에 대해 정의하고 논리를 갖추자, 그는 충분히 작품 내에 머무르며 사람들에게 작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이어지는 3부에서 비앙카는 작가의 조수로, 4부에서는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게 된다. 3부에서 비앙카는 예술가의 옆에서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작품과 연결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지, 곁에서 끊임 없이 탐구한다.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하게 된 4부에서는 '미술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탐구한다.
이러한 구조는 비앙카가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문외한에서, 미술관이라는 공간으로 천천히 유입되고 흡수되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 이방인 비앙카에 동화되어, 그가 예술에 어떻게 깊숙이 관계하게 되는지 체험할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쩐지 자신감이 생긴다. 예술을 알 것 같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이제 예술을 좀 더 편안한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비앙카의 솔직한 에세이와 함께라면, 어렵고 난해하기만 한 미술관도 그렇게 무섭진 않을 것이다.
모두가 이방인인 채로 미술관을 탐방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