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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라지기에 영원히 아름다울 물방울이여 - 김창열 [미술/전시]

<김창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5.08.22~2025.12.21

by 정혜린 에디터
2025.09.19 18:14

 

 

물방울은 연약하다 못해 무르디 무르다. 한 줌의 바람에, 햇살에, 시간에 아스러지고 말라버리는 존재다. 2년 전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에서 화폭 위에 올라 떠나지 않는 물방울들을 마주했고, 내 눈가에는 새로운 물방울이 맺혔다. 그리고 그 방울들을 그리워하던 중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김창열 회고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들뜬 마음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생과 사, 끝나지 않는 애도


 

제목조차 별다른 수식어 없이 ‘김창열’인 이번 전시는, ‘상흔’ – ‘현상’ – ‘물방울’ – ‘회귀’로 이어지는 네 개의 장과 별책부록인 ‘작가의 방: 무슈 구뜨, 김창열’을 통해 작가의 작품세계를 총망라한다.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그가 뉴욕과 파리를 거쳐 어떻게 물방울에 평생을 바치게 되었는가? 물방울이기 이전의 점액질, 점액질이기 이전의 앵포르멜(비정형). 그리고 그림 이전의 기억으로부터 김창열의 세계는 시작된다.


그의 유년기와 청년기는 해방, 분단, 전쟁으로 요동치는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 있었다. 시대라는 거대한 이름이 사격한 것은 그의 동창들, 살갗을 맞대고 부둥켜안았던 친구들이었다. 상실의 경험은 치유되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그의 예술을 일구며 붓을 놓을 수 없게 하는 필연이 되었다.


그래서 김창열은 예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초기에 ‘제사’라는 제목을 붙인 작품들을 여럿 작업했다. 당시의 작품들을 보면 거친 질감과 색채로 캔버스를 지나가는 물감의 흔적이 있다. 가려진 상처를 긁어내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더 꽁꽁 싸매어 상처가 아물 때까지 봉인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전쟁의 참상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발현을 시작한 아픔은 ‘생과 사’, ‘영원과 소멸’ 같은 단어들과 엮임으로써 개인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이 되며, 특별한 것에서 만연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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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어리, 도인


 

1965년 김환기 작가의 권유로 김창열은 뉴욕으로 향했다. 흔치 않은 국제 교류의 기회였으므로 한국 현대예술을 널리 알리겠다는 꿈을 안고 도착했을 터이지만, 당시의 뉴욕 생활은 동양인인 화백에게 가혹했다. 김창열의 앵포르멜 회화는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고, 그는 사물이 범람하는 미국 자본주의 사회에 상당한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낀다.


이때 화풍이 크게 변화하는데, 차가운 색과 기하학적인 구조로 채워진 회화가 등장한다. 주로 원근감을 주는 띠 형태가 중앙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 속에 원들이 응집하여 있는 형태이다. 에너지가 내부에 갇혀 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작은 자극에도 폭발할 수 있는, 공상과학적인 인상을 받았다.


4년 뒤 프랑스 파리로 거처를 옮긴 김창열은 뉴욕에서 그리던 기하학적 형태에서 점액질이 흘러내리는 듯한 작품을 탄생시킨다. 즙처럼 삐져나오는 액체의 매끈한 질감은 2차원의 세계에 묘한 불편함을 주며 침범한다. 이렇게 내부에 응집된 무언가가 고체가 아닌 액체의 형태를 띠게 되면서 파리 정착 초기의 작품은 ‘물방울’이라는 그의 정체성에 다다르는 발자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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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외곽의 마구간을 개조해 만든 작업실에서 매우 열악한 상황 속 그림을 그려야 했던 김창열은, 어느 날 캔버스를 뒤집어 물을 뿌렸고 거기에 맺힌 물방울들이 빛에 반짝이는 것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1971년부터 평생을 물방울 그리기에 몰두하게 된다.


뉴욕에서의 작품부터 처음 투명한 물방울이 맺히는 과정은, 내 머릿속에 ‘응어리’라는 단어로 떠올라 간추려졌다. 가슴 깊숙이 뭉쳐있는 ‘한’ 같은 것. 무엇이라 말로 형용할 수는 없지만, 또 어떻게든 꺼내 보여야 살아갈 수 있는 것. 김창열에게 기억과 감정은 언제나 물방울처럼, 구의 형태로 속속들이 맺히었던 것이 아닐까.

 

스스로 도를 닦는 듯 살았다고 한 ‘도인’으로서, 삶의 고통을 맺고 끊어가며 다스리는 방법으로서 물방울은 존재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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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우리


 

김창열이 물방울을 안착시켜 준 자리는 ‘마포’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로부터 동양 사상을 접해왔다. 덕분에 자연의 존재를 일깨우는 최소한의 절제된 양식을 강조하는 동양 철학의 가치는 화폭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같은 맥락에서 전시의 마지막 장은 ‘원천’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그의 사명에 따라 물방울과 천자문이 중첩되며 작품 세계가 확장되었다. 이는 영구적인 기록을 꿈꾸는 문자를 곧 사라질 물방울이 담음으로써 존재에 대한 사유를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월남과 해외 생활 등 공간을 이동하며 정체성을 인식해 온 그의 삶을 돌아봤을 때, 돌고 돌아 원점을 찾아가는 원의 마음으로 고향을 사랑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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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나도 시작으로 돌아가서, 김창열의 물방울을 처음 보았을 때 작가의 생애를 모른 채에서도 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던지 생각해본다. 아마도, 물방울들이 우리들 같았기 때문이다. 우연히 일어나서 용케도 구를 이루고, 텅 비었지만 잠시라도 가득 담는, 덧없지만 아름다운 존재들. 빛과 어둠으로 예뻐지는 것들.


전시가 끝날 때까지 몇 번 더 찾아갈까 한다. 예술가의 손으로 태어나 유난히 긴 생을 살게 된 치유의 흔적들을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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