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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낯섦을 들여오기 - 영혼 없는 작가 [도서]

쓰기 위해 필요한 건 듣기

by 안태준 에디터
2025.09.1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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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와다 요코의 초기 에세이 <영혼 없는 작가>. 5월에 대산문화재단 행사로 뵈었을 때 모국어를 통해 국가의 폭력성을 감지하고 독일어와 일본어를 오가며 언어의 특성을 통찰하는 여러 인상 깊은 말들을 들었는데, 그때 말씀하신 철학들이 이 오래 전에 쓰인 에세이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그때 강연과 이 에세이집 사이에 내가 읽은 다와다 요코의 소설들(비교적 최근작인 ‘헌등사’, 'Hiruko 3부작' 시리즈)을 디딤돌처럼 놓고 보니 한 작가는 평생 하나의 이야기만 쓴다는 말이 실감이 가면서도, 또 그 하나의 이야기가 얼마나 넓고 깊고 다양한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낯섦에 대해


 

그의 에세이는 단어와 단어 간의 의미적 유사성이 아닌 외형적 유사성에 초점을 두는 끝말잇기처럼, 서로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들을 접합하는 식으로 이어져 있어, 다 읽고 나서야 처음과 끝이 연결된 커다란 고리(O)를 발견하게 된다(다와다 요코는 <고트하르트의 배 속에서>에서 말한 것처럼 이를 틀림없이 입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인가, 읽다보면 작가가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리고 나도 끝도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런 이야기의 출발점이 뭔가 하면 낯섦이다. 낯섦은 미지를 뜻하며 미지는 두려움, 경계심으로 기울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다와다 요코는 적극적으로 낯섦을 추구한다. 하나의 세계를 배우게 된다는, 마치 아이 같은 설렘을 간직하고 있다. 아이가 놀면서 무언갈 배우듯이, 그 또한 언어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면서 여러 통찰을 얻는다.


그건 언어의 그물코 사이에서 빛나는 조각들, 그러나 언어를 처리해야 하는 도구로만 여기는 어른들은 눈길도 주지 않고, 아이들에게도 교육하지 않는 빈 공간들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에 몸 담고 있었던 다와다 요코는 독일로 넘어가 독일어를 배우게 되면서 그것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가 낯섦을 마주하는 방식은 천진하고도 어른스러우며 동시에 자유롭다. 내가 다와다 요코의 글을 읽을 때마다 뇌가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을 느꼈던 건, 낯섦을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그만의 열려있는 태도 때문인 것 같다.


대부분의 책들은 말미로 가면서 하나의 깨달음으로 수렴되는 반면 이 책은 읽다가 불쑥불쑥 깨달음이 솟아나서 메모를 끄적이고 싶게 만들었는데, 최대한 머릿속에서 굴리며 사유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을 기다리려 했던 나는 참다참다 결국 이렇게 적었다.


‘생에 두 번째 낯섦이 필요한 이유는, 첫 번째 낯섦은 낯설다고 느끼기도 전에, ‘낯설다’고 생각하고 판단하며 숙고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자기만의 언어를 발명하기도 전에 적응해버리기(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가 마주하는 낯섦은 두 번째 낯섦이자 두 배의 낯섦 같다. 낯설 수밖에 없는 것들과 익숙한 것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일본어와 독일어는 마주보는 거울쌍처럼 계속해서 낯설어지고, 그럼으로서 연결된다.

 

 

 

낯선 물, 낯선 맛, 낯선 언어


 

다와다 요코는 낯섦을 감정이 아니라 감각으로 드러낸다. 처음 실린 <유럽이 시작하는 곳>에서도 초장부터 하는 이야기가 ‘우리 할머니에게 여행이란 낯선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p.10)이다(강연에서도 이 말씀을 하셨기에 첫 문장을 보자마자 마치 시간을 역행하며 깨달음이 꽂히는 것 같이 소름이 돋았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향하는 여정에서 그가 유럽의 한 가운데에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가 아니라, 그곳의 물을 마셔 자기 내부에 들어선 낯섦을 감각했을 때다.


<통조림 속의 낯선 것>에서도 ‘나는 입안에서 “S”의 음을 반복해보았고, 그때 내 혀에서 갑자기 아주 낯선 맛이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까지 나는 혀에도 어떤 맛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p.80)라고 말한다. 그에게 낯선 곳은 낯선 물, 낯선 맛, 낯선 언어로서 감각되었던 것이다. 그에게 언어는 장소성보다 육체성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장소는 고정되어 있지만 육체는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인 걸까.


<엄마말에서 말엄마로>에서 그는 독일어의 남성 명사와 여성 명사를 처음 마주하며, 독일어에 깃든 사물(명사)의 남성성 여성성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책상 위의 유일한 여성 명사인 타자기를 말엄마로 간주하게 되고, 독일어의 비인칭 주어 ‘es’에 주목하는 등 독일어가 모어인 사람이 하지 않을 법한 생각들을 하며 언어와 실제의 관계를 탐구한다.

 

 

 

번역 가능성


 

그런 탐구는 <번역가의 문 또는 첼란이 일본어를 읽는다>에서 유례 없는 절정에 이른다. 여기서 다와다 요코는 일본어로 탁월하게 번역된 첼란의 시에 흥미를 갖게 되고 이를 원서로 보면서 ‘번역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출발어가 번역가의 손길과 눈길을 거쳐 도착어로 가는 번역의 모험이 첼란의 시에선 마치 출발어가 도착어를 이미 낱낱이 들여다보고서, 그 목적지가 어딘지를 미리 제시한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든 다와다 요코는 첼란의 시집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에서 한자 문이 부수로 쓰인 일곱 한자 단어가 적용된 번역시들과 원어 시들의 상호텍스트성을 상세하게 해설한다. 그가 여기서 주목하는 건 문장이 아니라 단어다. 단어는 고립된 채 문장을 연결하는 경계들이며 최소한의 의미 단위다. 거기서부터 번역이 시작되기에 문학적인 의미는 거기서부터 내재해 있는 셈이다. 이것이 벤야민이 말했고 다와다 요코가 첼란의 시로 마주하게 된 ‘번역 가능성’이다.


시적화자와 대상 간의 거리가 한자 문이 부수로 쓰인 한자들을 통해 조명되고 이것이 시가 조성하는 분위기를 넘어, 같은 의미가 다른 언어로 온전하면서도 풍부해지게끔 번역하는 번역론, 다와다 요코와 첼란이 공명하는 시론까지 도출하며 경계 없는 문학으로 나아간다. 언어와 번역과 문학의 삼위일체처럼 느껴지는, 그야말로 신비로운 글이다. 이 글에서 ‘시간’이 ‘사이 공간’이라는 귀한 통찰을 얻었다.

 

 

 

경계 무화하기


 

두 언어를 겹쳐보는 다와다 요코의 언어(유희)모험은 세상에 놓인 여러 경계를 무화하는 방식으로 모험이 불가능해진 세계의 한계를 허물기도 한다. 표제작인 <영혼 없는 작가>와 <귀신들의 소리>, <이격자>는 그런 점에서 큰 고리가 보이는 인상적인 이야기들이다.

 

다와다 요코는 여행자는 영혼 없이 떠돌고 있으며 자신은 영혼 없는 작가임을 선언하는데, 이는 자신에게 결핍이 있다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뜻하며, 그는 귀를 활짝 연 채 자유로운 사유를 통해 그 자리에 영혼들을 불러모은다. 그 영혼은 죽음을 건너간 귀신들의 영혼이며, 그들은 산자들이 알지 못하거나 감추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영혼 없는 작가>).


그들은 인형(나무 인형 ‘코시케’ 같은) 혹은 기도를 하는 스님, 샤먼들의 목소리에서 두드러지는 ‘배음’을 통해서 포착된다. 작가는 그런 것들을 통해 익숙함을 벗어나, ‘듣고 싶은 갈망’을 느끼게 된다(<귀신들의 소리>).


그런 갈망은 ‘언어가 방향을 트는 곳’에서 여러 국적 사람들과 대화하는 경험, 언어가 독특한 방식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오해되기도 하는 과정을 겪고 언어의 자의성과 고정관념들을 하나하나 거치면서 목격자가 아닌 이격자로서, ‘들을 수 있는 것과 들을 수 없는 것을 모두 다 주의깊게 듣는 일에만 몰두할 것’(p.260)이라는 다짐으로 굳는다. 쓰기 위해선 세상을 관찰해야 한다는 작가들의 창작이론을 다와다 요코는 쓰기 위해선 세상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비틀고 있다. 세상의 실질에서 언어와 이야기를 건져올리기 위해서는 이미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들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형식의 변화


 

이 산문집에서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탁월하다고 느껴졌던 글은 <사랑의 광물학>이다. 한창 잘 나갔다가 나이가 들며 포르노 배우로 전락했다는 중년 여성 배우의 사진집을 사게 된 어린 다와다 요코. 그는 그 배우를 관찰하면서 사랑을 느끼는데, 그와 달리 어른들은 그 배우의 주름를 보며 세월의 무색함을 한탄한다. 그러다 광물의 지층에 주름이 생기는 이유가 나이들어서가 아니라 삶의 형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라는 생물 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다와다 요코가 다시 그 사진집을 보며 사람들이 성적 성숙이라고 폄훼하던 배우의 삶에서 성스러움을 길어올리는 지점이,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망막 한 층이 되었다(즉 세상을 보는 시야가 되었다)는 지점이 따뜻하고 근사했다. 삶의 외면만 가지고 가치를 판단하는 인간 시선의 본성을 경계해야겠구나 생각하게 한 이야기다.


나는 자유로울 때 외롭다는 생각을 자주하는데, 이번 책으로 다와다 요코의 자유로운 문학세계를 들여다보면서 외롭지 않은 자유로움을 맛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라면 좀 더 걸어가볼까, 라는 생각이 들 것 같고, 걷다보면 마주치게 될 낯선 것들에게도 어린아이처럼 무구한 눈빛으로 인사를 건넬 수도 있을 것 같다.

 

 

 

에디터 안태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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