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영혼 없는 작가』를 읽을 때 작가인 다와다 요코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그는 일본인이지만, 독일에서 공부한 이중 언어 작가이다. 그리고 해당 도서는 독일어로 집필되었고 이것은 한국의 번역가 최윤영의 입을 통해서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언어적 배경과 특수성은 본작을 정의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특히, 『영혼 없는 작가』는 다와다 요코가 일본과 독일, 그리고 그 외 여러 국가들을 이동하며 마주한 낯섦과 언어에 대한 독특한 사유를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글이다.
일본과 독일은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고 있는 국가라 그 자체만으로 호기심과 기대감이 생겼다. 이전에도 한 번은 이중언어 작가라는 점, 그리고 일본인이지만 독일어로 글을 쓴다는 점에 매혹되어 『목욕탕』이라는 작품을 위시리스트에 저장해두기도 했다. 물론 이 둘이 같은 작가라는 사실은 본작을 읽는 중 알게 되었는데, 이러한 우연이 해당 도서에 대한 더 큰 애착을 갖게 만들었다.
언어란 무엇인가?
『영혼 없는 작가』를 대표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자면, ‘언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중 “엄마말에서 말엄마로”라는 단편에서 일본에서 연필은 어떠한 성(性)도 갖지 않는다. 하지만 독일어는 단어 안에 성(性)이 존재한다. 이러한 언어적 특성은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 타자기가 하나의 재밌는 예시로 등장하는데, 책상 위에 놓인 연필, 볼펜, 만년필은 모두 남성명사이지만, 타자기만이 여성명사이다. 동시에 타자기는 언어를 종이 위에 제공하는데, 그 말인 즉슨 본문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이 시도 덕분에 독일어는 내 모어(母語)가 아니라는 사실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나는 새로운 말엄마[語母]를 얻게 되었다.” (『영혼 없는 작가』, 46p.)
하나 더,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한국어로 이 글을 읽고 있다. 우리 또한 다와다 요코와 유사한 언어적 놀이, 혹은 새로운 의미 탐구 실험을 해볼 수 있다. 실제로 ‘모어’는 한자어지만, ‘말엄마’는 순우리말의 조합이다. (물론 실제로 ‘말엄마’라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모어에서는 어쩐지 딱딱하고 학술적인 느낌을 받는다면, 타자기라는 표현에서는 어릴 때부터 엄마를 통해 배워온 언어들을 떠올리게 되는 애틋함이 있다. 이는 영어지만, 마치 마더텅(mother tongue)이라는 표현처럼 말이다.
언어 너머에서 드러나는 것들
매일같이 쓰는 언어를 찬찬히 뜯어볼 기회가 있다면, 언어가 얼마나 생경한 매개체인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글자들의 음악”에서는 작가가 완전히 낯선 프랑스어를 마주했을 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맥락과 의미가 제거되고, 오직 글자 그 자체만을 바라볼 때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모양을 분석하고, 패턴을 찾고, 알고 있는 언어 지식과 연관시키고자 한다. 이런 상황에 놓여있을 때 아이러니하게 피어나는 언어적 의미가 있다.
외국어를 마주했을 때, 모국어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발상이 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언어를 발음하게 될 때를 생각해보자. 몇 개의 영어 단어를 읊게 될 때가 있다. 어떤 건 입에 특히나 잘 붙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또한, 어떤 건 한국어의 특정 단어와 닮아 있어서 전혀 의미상 연관성을 갖지 않더라도 괜히 연관 지어보곤 한다. 여기서 모국어 화자가 생각지 못했던 독특한 조합이 탄생하기도 한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아주 가볍게는 “A: 어금니가 영어로 무엇인지 알아? B: 몰라. A: 응? B: 몰라(molar)” 같은 말장난 같은 것.
낯선 곳으로의 이동
우리의 영혼은 언제 옮겨가는가? 여행, 유학, 이민 등 이러한 행위들은 단순히 신체의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 진정으로 이동하여 그곳에 정착했다고 느끼는가? 몸이 도착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영혼이 그곳에 묶이게 되는가? 어쩌면 영원히 묶이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몸은 오로지 한 순간에 한 곳에만 머물 수 있지만, 영혼은 그렇지 않다. 기억과 습관 속에서 과거의 삶이 남아있고 그것은 현재 감각하고 있는 것과 교차한다.
“영혼은 비행기처럼 빨리 날 수 없다는 것을 인디언에 관해 쓴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할 때 영혼을 잃어버리고 영혼이 없는 채로 목적지에 도착한다.” / 58p.
바로 표제작인 “영혼 없는 작가”에서 이러한 고민이 드러난다. 비행기보다 영혼은 빠르게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이민자 혹은 이방인이 겪는 필연적인 문제이다. 몸은 과거를 잊고 낯섦에 적응했을지라도, 영혼은 과거의 흔적과 뒤섞여 지금의 낯섦과 과거를 연결시킨다. 여기서 또 다른 낯섦이 등장하고, 이는 수없이 반복될 것이다.
『영혼 없는 작가』는 에세이이지만, 경험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다소 모호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다와다 요코의 경험 속에서 묘사되는 모호함 자체가 ‘언어’의 특성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언어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면, 혹은 한 번이라도 언어가 어색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면 누구든 공감하고 사유할 수 있는 도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