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워홀에서의 사랑을 꿈 꿔봤다면 - 더 셜리 클럽 [도서/문학]

사랑의 다양한 형태

by 한우림 에디터
2025.09.14 07:26

 

 

한때 세상에 널리 퍼진 이름들을 만난 시간

지금 세계에 하나뿐인 목소리와 사랑에 빠진 순간

나의 생애에 가장 아름다울, 보라색 여행기

 

 

131.jpg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건 워킹 홀리데이에 대한 관심 덕분이었다. 워킹 홀리데이, 줄여서 '워홀'은 다른 나라에서 자유롭게 일하며 여행할 수 있는 제도다. 관련 책을 찾으려고 검색을 하던 중, 수많은 실용서 사이에서 분홍색 표지의 소설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제목은 '더 셜리 클럽'. 얼핏 보면 워홀과는 상관없어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호주 워홀과 사랑 이야기를 함께 다루고 있었다. 내가 궁금해하던 두 가지 키워드가 모두 담겨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책장을 열었다.

 

주인공 설희는 호주 멜버른으로 워홀을 떠나고, 그곳에서 우연히 ‘더 셜리 클럽’을 만나게 된다. 행렬에 합류한 그녀는 그 속에서 낯섦과 소속감을 동시에 경험하고, 결국 유일한 ‘젊은 셜리’로 클럽에 가입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처럼 만난 인연, 사랑, 연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 이방인이라는 감정, 그 속에서의 연대에 대하여


 

이 책이 내게 인상깊었던 이유는, 타지에서 동양인으로서 살면서 느꼈던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설희를 통해 공감 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 속 설희가 느끼는 감정이, 내가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느꼈던 감정과 동일하게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호주나 유럽에 산다고 막상 좋은 게 아니고, 온전한 고향이 아니기에 완전한 융합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돌이켜 보면 나는 타지에서 피해의식이 참 많았다. 나에게 차가운 얼굴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실제로 그들이 차가운 반응을 보여준 게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대로 본 것에 가까웠다. 내 마음이 스스로 무시 당하고, 소외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나의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을 많이 찾으려 했다. 마치 셜리가 '표정의 책임의 반은 짓는 사람에게 있고, 반은 해석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구절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가끔 생각나요. 나에게 차가운 얼굴을 보여 준 사람들.

그렇지만 사실은, 그냥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람들이 내게 냉담한 표정을 지었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이 그런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속에서 연대를 발견했기에 이 이야기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셜리는 이방인이었지만, '더 셜리 클럽'에 가입했고 그 속에서 다른 할머니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더 셜리 클럽'이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소속감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감정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인상깊었던 장면들은 '더 셜리 클럽' 속 모든 셜리들이 리틀 셜리, 즉 젊은 동양 셜리를 성심성의껏 도와주려했던 장면이다. 마치 이전부터 알아왔고, 친했던 것처럼. 나 또한 타지에서 많이 힘들었지만,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결속감과 소속감이 떠오르기도 했다. 소외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문 밖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볕이 비추던 때.

 

 

할머니들이 입을 모아 Fun, Food, Friend라고 외쳤다.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건?'

'친구!'


할머니들이 다시 제창했다. 해먼드 할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들었죠? 더 셜리 클럽에 셜리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 우리는 모두 셜리고, 우리는 모두 셜리를 아끼죠. 부담 느끼지 말아요. 우리가 도울게요. 셜리를 돕는 게 우리를 돕는 거니까.'

 

 

 

2. 사랑에 대하여


 

이방인으로서의 소외감과 소속감도 이 책에서의 인상깊은 부분이지만, 그보다 내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었던 건 셜리와 S의 사랑 이야기다. '더 셜리 클럽'을 찾아 가게 된 호프집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두 사람. S는 토종 한국인은 아니지만, 한국인 부모가 있어 한국 문화에 익숙하다. 그 둘은 그래서인지 더욱 빠르게 가까워지고,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서는 그들의 첫만남부터 사랑을 할 때 한 번쯤은 겪는 복잡미묘한 감정,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까지 담겨져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다 알지만 여전히 생각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까지 하나하나 빠짐없이 사랑받고 싶다고.

이런 나라도 사랑해 줄 수 있어요?

 

 
네가 찾고 있는 사람도 혼혈이라고 했지. 여러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은 그 문화적 배경에서보다 그들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정체성을 찾게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안에서 우리가 된다. 내가 찾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주는 사랑이 그 사람을 완성 해 줄 거다.
 

 
하지만 그를 만난 것 또한 누적된 선택들의 결과였다.

나는 퍼레이드 구경을 선택했고, 더 셜리 클럽을 따라 펍에 들어가기를 선택했고, 그보다 좀 더 오래전에 셜리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그럼 결국 내가 셜리라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는 거야?

 

 

내 본연의 모습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랑, 그리고 결국엔 내 선택으로 만들어낸 운명. 이런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3. 그럼에도 남는 추억에 대하여


 

 

블로그에 워킹홀리데이 일지를 남기는 사람들 중에 한국에 돌아왔다가 어떻게든 다시 호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꽤 많던데, 그 마음들을 조금 알 것도 같아요. …(중략)… 무엇보다 거기서 만든 기억들이 너무 생생해서일 거에요. 왜냐하면 대부분은 힘과 의욕이 넘칠 때 워킹홀리데이를 가니까. 너무 어리지도 너무 늙지도 않은 몸에 용기를 꽉꽉 채운 채로 호주에 가니까, 그 기억 속의 자기가 현재의 자기만큼, 어쩌면 바로 현재의 자기 자신보다도 더욱 생생한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요. 내가 그렇거든요.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힘냈던 때. 공장에서, 농장에서, 호텔에서, 식당에서, 워킹홀리데이를 가기 전에는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힘든 일들을 했지만, 다 좋았어요. 힘들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힘든 것까지 포함해서 다 좋았다고요.

 

 

나 또한 타지에서 6개월 간 교환학생으로서 살아 본 입장으로서, 너무 공감이 가는 구절이었다. 어려서 해외에 가는 것과 나이가 들어 해외를 가는 것의 차이를 둘 수 있다면, 마음 속에 담은 설렘과 용기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그 제한된 시간들을 오래 기억하고자 하루하루를 꼭꼭 씹어 살아가니까, 그 기억들이 너무 생생하다. 나는 1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하고, 그 때의 공기나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 풍경과 장면이 생생해서 가끔 그립기도 하다. 이 구절에 쓰인대로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냈던 때'가 맞다. 더욱 애쓰고, 더욱 도전하고, 더욱 신나게 놀았던 그 시기. 그래서 더 생생하다.

 

이 책은 이방인으로서의 고독, 사랑의 설렘,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추억을 담고 있다. 그래서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은 이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읽고나면 당장 짐을 싸서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가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한우림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울림의 미학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