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새', '노을무새'. 무언가에 쉽게 감탄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나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여행지에서 서점, 꽃집, 노을 명소를 찾아다니는 것이 나만의 루틴이기도 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같은 태양이 지는 풍경일 텐데, 나는 왜 이토록 장소를 옮겨가며 노을을 수집하는 걸까.
똑같은 하늘 아래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마주했던 노을의 기억을 꺼내어 그 해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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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본 - 지연된 기차가 선물한 찰나의 위로
독일 교환학생 시절, 처음으로 내가 살던 도시를 벗어나 독일의 도시 쾰른과 본 여행을 했다. 연착으로 악명 높은 독일 철도(DB)는 Delay Bahn 이라는 별명을 붙여도 될 만큼 이날도 어김없이 연착되었다.
하지만 초조함도 잠시, 기차역 플랫폼에서 마주한 노을과 불빛들은 모든 것을 용서하게 했다. 낯선 곳으로의 첫 여행이 주는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마음 위로, 붉은빛이 부드럽게 내려앉으며 잠시 기다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여유를 품게 해주었다.
이후로도 기차를 이용할 때마다 반복된 연착은 내 일정을 꼬이게 만들고 피로감을 안겨주었지만, 덕분에 정시 출발이 당연한 한국 열차의 고마움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불편함 속에서 때로는 아름다운 풍경을, 때로는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이다.
어쩌면 여행이란 이렇듯 계획 없는 순간에 찾아오는 위로를 발견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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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 여행자에게 건네는 환영
'비의 도시' 런던으로 떠난 첫 홀로 여행, 신기하게도 그날만큼은 거짓말처럼 해가 쨍쨍했다.
타워 브리지, 빅 , 런던 아이 등 런던의 랜드마크 너머로 해가 저물며 만들어내는 풍경은 마치 여행자에게 도시가 선사하는 선물과도 같았다. 매일같이 흐린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더 특별했을 그날의 노을은, 혼자 왔다는 사실마저 잊게 할 만큼 따스하고 다정했다.
낯선 도시가 건네는 친절함을 때로 이렇게 예기치 못한 날씨의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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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 태양을 닮은 사람들의 뜨거운 낭만
스페인은 여행이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사람들의 다채로운 옷차림과 피부를 태울 듯한 햇살, 해변에서 마시던 샹그리아의 달콤함까지, 그곳의 노을은 유독 더 뜨겁고 정열적이었다. 바다 위로 부서지던 태양의 마지막 조각들은 이 도시 사람들의 활기와 낭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꼈던, 가장 '여행'다 기억의 한 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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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저녁의 위안
나의 노을 사랑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지 돌이켜보면, 고3 시절 교실 창문이 떠오른다. 석식을 먹고 돌아와 야간 자율 학습을 준비하던 짧은 틈, 창밖을 물들이던 주황빛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치열하고 고단했던 하루의 끝에서 노을은 '오늘 하루도 잘 흘러갔구나'라는 무언의 위로를 건넸다. 화려한 여행지에서의 노을도 결국은 이 작은 위안의 기억에서부터 출발했음을, 나는 이제 안다.
결국 노을의 아름다움은 하늘의 색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독일에서는 우연이었고, 영국에서는 환영이었으며, 스페인에서는 열정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위안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지는 해가 아니라 그 하루에 내게 일어났던 일들, 빛이 머물렀던 공간의 공기, 나의 감정, 스며든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을을 찾아 헤는 '노을무새'로 살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