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푸른 초록의 잎사귀 사이로 새어 나오는 오렌지빛의 노을.
지는 노을에 집중하다 보면 모든 게 느리게 보인다. 저 멀리 지나가는 퇴근길의 차들은 노을의 별 같이 보이고, 사람들에게 잔뜩 닿은 노을빛은 사람들의 온기를 잔뜩 머금은 진한 호박색의 빛. 저물어간다는 마음에 갑자기 여름이 아련해 보이는 걸까. 혹시 오늘이 마지막 여름밤일까, 하루아침에 떠날 여름일까 싶어 조바심이 나는 걸까.
여름을 어항에 담고 싶어졌다.

이리저리 땀나게 하고 숨도 못 쉴 만큼의 더위를 준 여름이 밉지 않은가. 갑자기 오는 거센 비에 예정된 하루를 망치기도 너무 더운 날에 지쳐 주저앉기도 따가운 햇살에 등 떠밀려 양산으로 해를 막아버리기도 했는데. 시끄러운 매미는 끊임없이 울어대 선잠마저 깨버린 더운 여름이지만 그런 여름이 좋았다.
거센 비 덕분에 조금은 차분해진 공기가, 너무 지쳐서 주저앉았을 때 건네오던 얼음 보리차 한 잔과 선풍기가 포근하지 않은 딱딱한 대나무 자리가. 양산을 펴기가 귀찮아 그냥 받아들이던 따가운 햇살마저도 좋았다. 그토록 좋아하는 가을을 기다리면서도 여름이 떠날까 아쉬웠다.
초록이 가득 섞인 하늘이 좋았다. 여름의 푸르름이 좋았다. 더운 여름을 뚫고 새벽이면 잠깐 나타나는 서늘함이 좋았다.

풀벌레 소리가 섞인 바람 소리가 좋았다. 여러 색의 여린 풀들과 꽃, 나비와 잠자리가 맴맴 도는 것도, 물이 얼지 않아 자유로이 움직이는 한강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보트도, 모두가 가볍게 훨훨 날아다니는 것도. 여름을 온전히 알려주는 매미의 울음소리로 들리지 않을 땐 서운했다. 사실 여름을 많이 좋아했다.
어떻게 이 많은 걸 품고 있었을까 여름은. 그런 여름을 유리 어항에 두고 여름이 좋아하게끔 가장 햇빛이 잘 드는 곳에다 놓고 싶다. 두고두고 바라보면서, 존재만으로도 계절을 느끼게 끔.우리의 기억이 너무 뜨거워 녹지 않도록, 어항에 넣어 여름의 모든 기억을 흐르게 두고 싶다. 떠나보내지 못해 넣어버린 나의 여름.
그 생기 어린 반짝임이 그리워질 계절이 점점 다가온다. 곧 마지막 여름을 보낸 자리에는 나이테가 옅게 남았겠지.
잘 지내 여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