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알을 깨고 나오는 한 인간의 여정
이 책은 싱클레어의 “나는 내 이야기를 내가 열 살 났을 때 살던 소도시의 라틴어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의 체험으로부터 시작하겠다.”라는 회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린 싱클레어의 집에는 편안함과 따뜻한 안락함, 깨끗한 옷과 훌륭한 예절이라는 선, 괴상하고 유혹적인, 아름답고 끔찍한 악이 공존했다. ‘집’이라는 공간은 중요하다. 한 개인에게, 특히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는 무조건적인 안락함과 편안함을 제공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싱클레어에게 집은 “두 개의 세계가 서로 경계를 접하고 있으며, 그것이 서로 가까이에 동거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한 발짝만 나서면 정반대의 세계에 속할 수 있다는 모순은 싱클레어에게 가장 매력적이고도 혼란스러운 환경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런 싱클레어에게 찾아온 아이가 바로, 막스 데미안이다. 다른 보통의 아이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아주 매혹적인 말을 건넨다. 아벨을 죽여 이마에 낙인이 찍힌 카인을 비범한 인물로 칭하며,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는다. ‘성경’이라는 불가침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금기에 가까운 말을 하는 것이다. 이 대화는 지금까지 지내온 선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속한 것에 혼란스러워하던 싱클레어가 새로운 탐구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된다. 어린 시절의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다음과 같은 문장에 드러난다.
‘이 순간에 데미안과 나 사이엔 다시금 연관이 생겼다. 그리고 특히 - 같은 영역에 두 영혼이 함께 속하고 있다는 공감을 느끼자마자, 마술처럼 그것이 공간으로 전파됨을 느꼈다.’
같은 공간에서,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공감’.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공감을 느꼈다.
하지만, 데미안은 여행을 떠나고 싱클레어는 사춘기를 겪으며 방탕한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싱클레어는 아주 오랜만에 데미안을 만났고, 그를 많이 그리워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과는 달리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지 않다는 반발 섞인 의식을 드러낸다. 그런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우리의 내부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자가 하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라고 충언한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이 말을 오랜 시간이 지나 전쟁에 참전하고 나서야 진정으로 감각하게 된다.
선과 악의 공존을 받아들이다
책의 마지막에 싱클레어는 이렇게 말한다.
‘그 이후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내가 때때로 열쇠를 발견하고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나 자신 속으로 완전히 내려가면, 나는 검은 거울 위에 몸을 구부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는 인제는 완전히 ‘그’와 같은 - 내 친구이며 지도자인 ‘그’와 같은 나 자신의 모습을 거기서 본다.’
어린 시절의 싱클레어는 선과 악이라는 두 세계가 공존하는 집을 감각하며 의도적으로 ‘다른 세계’에 종속되지 않으려고 하지만서도 데미안이 선사한 금기의 매력을 느꼈고, 사춘기 시절의 싱클레어는 ‘다른 세계’에 속하며 데미안을 외면했다. 이 밖에도 사랑과 동경, 새로운 철학의 탐구를 온몸으로 감각한 싱클레어는 이제 ‘그’를 자기 자신에게서 발견한다. 선과 악 그 경계를 넘을까 두려워하고 피하는 것이 아닌, 선과 악의 공존을 깨닫고 살아간다. 그렇게 싱클레어는 알을 깨고 나온 존재가 된다.
번역가,라는 직업에 대한 나의 인식은 낮은 편이었다. 같은 책을 다른 번역으로 읽을 때 내용이 조금 다른 것에 신기해한 경험은 있어도, 번역가들에 대해서나 그 번역이 해당 도서의 감정선이나 내용을 얼마나 다르게 표현했는지를 주의 깊게 본 적은 없었다. 해서 ‘최초의 유학파 한국 여성 독문학자 전혜린’이 ‘독일어 원문의 문법과 화법을 거의 그대로 옮긴’ [데미안]이라는 소개는 매우 매력적으로 와닿았고, 책을 읽어본 결과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번역을 볼 수 있었다.
관념적인 내용을 떠올리며 읽기란 쉽지 않다. ‘데미안’은 알을 깨고 나오는 한 인간의 여정을 보여준다. 집이라는 작은 공간에 담긴 세계는 전쟁이라는 세계와 연결된다. 이런 방대한 철학이 담긴 책을 읽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최대한 직관적으로 표현된 단어들과 어조가 읽는 데에 몰입도를 더해주었다. 특히 “데미안은 확실히 우리 자신의 분신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싱클레어의 여정을 마치 나의 여정으로 표현한 듯하여 앞으로 내가 걷게 될 길을 싱클레어를 통해 엿본 듯한 감상을 받았다.
선과 악의 공존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이 아닌가. 둘은 물과 기름과 같이 섞이는 게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 나와 가까운 인간을 떠올려보자. 친구, 가족, 애인 등 여러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이들은 온전한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 편안함과 따뜻한 안락함을 제공해 주더라도 '다른 세계'가 공존한 어린 시절 싱클레어의 집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선과 악의 공존을 얼마나 더 온전히 감각하느냐, 혹은 감각하지 못하느냐, 혹은 외면하느냐 셋으로 나뉠 뿐이다. 나는 우리가 이 공존을 더욱 온전히 감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것으로부터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이 탄생할 것이다. 자신이 갇혀있던 알을 깨면서 말이다.
전혜린 번역의 [데미안]은 앞으로의 나의 여정에 대한 기대를 조금 더 키우는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데미안’이라는 나 자신의 분신을 확실히 감각할 수 있도록, 내가 갇혀있는 알을 깰 수 있도록, 그리고 선과 악의 공존을 온전히 감각할 수 있도록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