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데미안’. 이 고유명사가 주는 느낌은 너무도 원초적이고 강렬해서 그 어떤 소설 속 인물의 이름보다 강렬한 힘을 견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크기변환][포맷변환]20250805030404_anrquqfg.jpg


책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시절로 기억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이 구절을 우연히 어딘가에서 듣고 생긴 호기심 하나로 책을 읽은 건데, 그런 호기심 하나로 책을 읽기에는 당시의 나에게 꽤나 어렵게 느껴졌고, 이 책을 읽기에 아직은 이른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이 책을 펼쳐봤을 때, 그래도 조금은 쉽게 읽히지 않을까하는 나의 기대가 무색할 정도로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너무도 새롭게, 여전히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너무도 많았다.

 

두 번째면 그래도 무언가 다른 새로운 발견과 해석이 있어야 할텐데, 고교 시절에 내가 느낀 그 정서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정서를 느끼고 있는 내 스스로를 발견했을 때는 무력한 기분마저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얼마간 사색에 잠겨 문득 생각해보니, 여전히 내가 이 책을 결코 쉽게 읽히는 책으로 생각하진 않는구나,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구나라는 피상적인 소견을 넘어서 근본적으로 처음의 독서 경험과 다르게 느낀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데미안’이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인데, 처음에 ‘데미안’이라는 인물이 내게는 너무도 신화같은 인물, 현실에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것이, 소설 속 그에 대한 묘사를 보면, 마치 신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고, 평범한 소년인 싱클레어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책의 특성상 그러한 점이 더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데미안’에 대해 느끼는 바는 그 역시 싱클레어와 별반 다를바 없는 소년이라는 것이다. 그가 초인적인 힘을 갖고 있고, 도저히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외적, 혹은 내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또한 언제, 어디에서 변할지 모르는 가변적 존재일 뿐이라고, 그런 면에서 그 또한 미숙한 소년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데미안 뿐만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 에바 부인도 그렇고, 데미안과 더불어 당시의 나에게 신비한 존재처럼 느껴졌던 베아트리체라는 인물 또한 싱클레어와 다를바 없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정답을 이야기하는 책이 결코 아니다. 흔히 이 책을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우정을 바탕으로 한 성장 이야기라고 정의 내리곤 하는데, 단지 ‘성장’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기에는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이 너무도 방대하기에, 결코 한 가지 주제로 결론지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방황과 혼돈, 시련과 불안, 깨달음과 내적 성장 등 수많은 정서와 주제가 이 책 안에 담겨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이 책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미숙한 소년으로 시작한 싱클레어가 책의 결말에 다다랐을 때, 그가 성장한 소년이 되었다고 확신하여 말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책을 읽는 우리는 책의 결말에 다다랐을 때,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애초부터 미숙한 소년이었나 정의내리는 것조차 힘든 지경에 다다를지도 모른다.

   

수많은 시련과 방황의 소년기를 지나온 우리에게 여전히 방황은 끊이질 않는 것처럼, ‘성장’이라는 것은 항상 ‘시련과 방황’을 동반한다고 생각한다.

   

깨고 나온 알 뒤에는 더 단단한 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새가 결국 그의 세계를 파괴하고 자유로이 날 수 있는 것은 죽은 뒤에나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새는 그의 세계인 알을 깨려고 살아있는 동안 수천번 투쟁한다.

   

‘데미안’이라는 소년을 통해 작가인 헤르만 헤세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의도가 무엇인지, 애초에 그런 의도 같은 것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나에게 있어 유일무이하고 절대적 존재, 불멸의 존재처럼 느껴진 이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부서질 수 있는 존재였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이 나에겐 새로운 발견이었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흘러, 이 책을 다시금 꺼내볼 때가 있을 테고 그때의 나는 지금과는 또다른 느낌을 받고, 또 다른 발견을 할지도 모르겠다.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미숙함에서 여전히 미숙함, 그리고 의아함으로 나아가기까지의 시간 속 자리잡은 수많은 사건, 그 사건에서 비롯된 정서를 독자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정서임에도 많은 이들이 이 책에 열광한 건, 그런 의아함, 불가해함 때문인 것 같다. 결코 같다고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모두 싱클레어와 비슷한 순간을 지나쳤고, 여전히 그런 순간 속을 유영하듯 살아가고 있다.

   

소설 ‘데미안’이 내게 그러했듯, 그런 순간들이 결코 방황이라고, 성장을 담보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난해함 때문에 삶은 고루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어디론가 나아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