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계절이 찾아옴과 동시에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내겐 다른 계절들 중 유독 겨울이 그러하다. 겨울 하면 생각나는 영화. 그 영화는 바로 이제는 하나의 고전이 된 듯한 작품인 <러브레터>이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개봉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전부터 볼 사람들은 숱하게 봤다는 그 작품. 수도 없이 들어온 영화의 제목 때문에 이젠 그 눈발마저 조금은 바랜 듯한 느낌이 드는 그 영화.
그럼에도 여전히 겨울 하면 나는 이 영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러브레터> 만큼이나 하나의 어떤 고유명사가 된 듯한 이름이 있는데 그건 바로 감독인 이와이 슌지이다.
원래 광고계에서 활동하던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93년에 tv 중편 드라마로 만든 <쏘아 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가 세상에 나오고부터이다.
1994년에
필름의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누군가는 웃고, 반대로 누군가는 울었을 것이다. 더 다양한 영화가 나올 수 있는 대안점이 된 디지털의 도입은 영화팬들 입장에선 축복과도 같은 일이었겠지만 그와 동시에 필름 자체가 그 감독의 정체성이었던 몇몇 감독들의 팬 입장에서는 꽤나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일명 ‘러브레터’ 세대라 불리는 그 세대는 아니고, 그 영화가 개봉한 뒤 한참 뒤에 그 유명세를 듣고 찾아본 그 뒷 세대의 영화팬이지만, 이런 나도 그의 초창기 다양한 영화들을 접하다 최근에 ‘키리에의 노래’를 봤을 때는 여전히 건재한 ‘이와이 월드’ 속 캐릭터와 비주얼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더 이상 볼 수 없는 지나간 옛 추억을 상기하듯, 헛헛함과 아련함에 휩싸인 채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젊은 시절부터 이와이 슌지 감독의 초기작들을 보고, 이제는 중년이 된 그의 팬들이 디지털의 색채로 찍힌 그의 영화들을 마주했을 때, 그들 중 몇몇은 나의 그러한 감정에 그들의 추억까지 합쳐져 더더욱 출처 모를 애상감에 그의 초기작들을 다시 상기하였을지도 모르겠다.
꽤나 많은 필모를 남긴 그이지만 그의 영화들에는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서 혹은 장면들이 분명 내포한다. 그리고 그건 필름이 아닌 디지털로 찍힌 그의 영화에서도 여전히 느껴지는 정서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초창기 작들에서 보았던 어딘가 먼지 낀 듯한 뿌연 화면, 그리고 그 화면에 잔잔히 내려앉은 햇살이 여전히 그립다. 내가 이와이 슌지의 작품을 사랑했던 이유, ‘이와이 월드’라고 부르는 그 세계 속에는 ‘필름’이라는 것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음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듯하다.
이제는 과거의 유물처럼도 느껴지는 필름 영화.
이건 이와이 슌지뿐만 아니라 수십년의 세월간 필모를 남긴 수많은 감독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그러나 타협해야만 하는 지점일 것이다.
앞으로 마주할 그의 영화들 역시 필름이 아닌 디지털이겠지만 한 번이라도 좋으니, 필름으로 찍힌 그의 작품을 보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