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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보통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목표들을 버킷리스트라고 하지 않나.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중세 시대에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를 차 버린다는 'Kick the Bucket'이란 말에서 유래했으니, 사실은 제법 무시무시한 말이다.

   

그런데도 현대의 버킷리스트는 제법 희망찬 의미로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사는 동안 꼭 한번 이루고 싶은 소원이라 했을 때 '꼭 한 번'에 방점이 찍힌다고 해야 하나. 꼭 한 번을 해냈을 때의 기쁨, 짜릿함, 감동, 뿌듯함. 이런 종류의 즐거운 감정들과 연결되다 보니 자연스레 설레는 목표들로 수렴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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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비슷하다. 물론 도파민이 엄청나게 도는 목록은 아니다. (너무 고리타분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상하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그 내용이 다듬어지는 듯하다. 아주 어렸을 적의 버킷리스트를 떠올려 보자면, 1) 하버드 대학을 나와 백댄서 되기 2) 꾸준히 활동하는 최고의 스타 되기 3) 부자가 되어 가장 친한 친구 2명과 함께 거대한 저택에 살기 4) 스카이다이빙하고 생을 마감하기 등,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았다.

 

어쩌면 사대주의적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적어도 3번까지의 배경은 한국이 아닌 미국이었고, 왠지 모르게(혹은 너무 이해할 수 있게) 당시 이상향의 본거지는 서양이었으니까. 아마 그때 자주 읽었던 영미 문화권의 책이나 흔하게 보이던 할리우드의 영화로부터 영감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또는 완전히 다른 접근으로, 초등학교 내내 인상 깊게 기억하던 황진이의 삶으로부터 영향받았을 수도 있고.


뭐가 됐든, 많이 가지고, 많이 뽐내며, 많이 표현하고 싶은 시기였다. 많이 갖췄다고 자신만만하게 굴던 시기기도 했고. 원 없이 눈치 없을 수 있었던 어린 날의 버킷리스트는 참 대담하다. 그래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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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현재의 버킷리스트는 어떤가.


사실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2024년도부터 모아두었던 쪽글들을 다시 봤다. 생일 때 선물로 받은 손바닥만 한 종이에 고양이 두 마리가 그려진 메모장인데, 그곳에 재작년부터 '새해 목표'라는 거를 적어놨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느낀 건, 상당히 현실적인 내용이라는 것. 한 해 동안 이루고 싶은 것들과 함께 나의 성장과 건강과 관계에 대해 염려하고 다짐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1) 일과 삶의 균형 찾아가기(2026), 2) 소진과 낭비의 날 줄이기(2025), 3) 솔직하게 '연기' 없이 표현하기(2025), 4) 애써야 할 관계에 애쓰기(2025), 5) 꿈 따라가기(떠나기를 두려워하지 말기)(2024) 6) 지나간 일에 붙잡히지 말기(2024) 7) 자기혐오 대신 자기 객관화 시도하기(2024), 8) 휘둘리지 말고 단단해지기(2024) 9) 곧 없어도 괜찮을 만큼, 늘 그런 마음으로 지내기(2024) 등.


이제는 알게 모르게 자신을 다독이고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욕구가 반영된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하고 싶은 마음. 잃은 것도, 얻은 것도 많아지는 동안 이 목록은 그렇게 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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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낭만적인 소망들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문득문득 떠올리는 간질간질한 소원들이 있다. 꼭 이뤘으면 좋겠는, 결국엔 이뤄질 거라 믿는 영역의 바람들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1) 버지니아 울프, 『파도』 정독하기. 올해면 벌써 네 번째 다짐이 된다. 계속해서 끝까지 읽으려 시도해도 파도에 휩쓸리듯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올해는 기필코 마지막 장을 넘기고야 말겠다.


2) 세계 여행 이어가기. 최근에는 대만의 타이중과 일본의 삿포로에 가고 싶어졌다. 머지않은 미래에 영국, 프랑스, 스위스도 방문할 것이다. 발칸 반도나 호주의 멜버른, 스페인/포르투갈도 다시 가고 싶고,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터키와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여행지도 뇌리에 남아있다.


3) 타투하기. 왼쪽 손목 안쪽이나 오른쪽 귀 바로 아래 볼록 들어간 목 부분에, 벌새나 파도를 새기고 싶다. 후회하지 않을 시기에 후회 없는 도안으로 하나는 꼭 해볼 것이다.


4) 일해보고 싶은 곳에서 일하기. 알맞은 보수를 받고 해보고 싶은 일을 시도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독립 서점, 개인 카페, 독립 영화관에서 일해보고 싶다. 평소에 자주 가는 곳들이기도 하고, 갈 때마다 좋은 기운을 받고 돌아와서 그런 듯하다. 요즘에는 에디터로 일하면서 흥미가 생긴 곳도 꽤 있다. 아트인사이트를 포함해 문화/예술을 콘텐츠로 다루는 곳이나, 다양한 인스타 매거진을 발행하는 곳들이 궁금하다. 각각의 희망지들을 천천히 섭렵해 보고 싶다.


5) (아주 먼 미래일지 모르지만) 우주 다녀오기. 영원히 사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화성이나 달에 발을 디뎌보고 싶긴 하다. 거기서 지구를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SF 소설을 보며 상상했던 순간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지구라는 행성을 지구 바깥에서 바라보면서 우리의 존재를 다시 가늠할 수 있게 되면, 이전과는 또 다른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 단 하루만이라도 중력을 벗어나고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한 채 지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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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원대한 꿈들인가. 하지만 버킷리스트는 원래 그런 게 아니겠는가. 당장의 내일도, 바로 몇 분 후의 미래도 알 수 없기에, 저마다의 ‘사는 동안’ 꼭 한번 이루고 싶은 소원은 품고 있을 만하다. 실제로 이뤄질지 안 이뤄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덕분에 지루하고 고된, 복잡다단하고 변덕이 심한 일상 속에 한 번씩 미소 지을 수 있으니까.


그거면 충분하다. 지금은 그저 이 리스트들이 영원히 빛이 바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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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을 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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