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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엘시노어>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원작으로 삼지만 비극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 대신 성벽을 지키는 두 경비병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왕자도, 복수의 주체도 아닌 이들은 사건의 시작과 끝을 가장 먼저 목격하지만 서사의 중심에 설 수는 없는 인물들이다. 공연은 바로 그 주변부의 시선에서 고전을 다시 바라보며 관객을 익숙하면서도 낯선 《햄릿》의 세계로 이끈다.

 

 

 

웃음과 동선으로 완성되는 공간


 

무대 위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웃음이 발생한다. 성벽과 방, 안과 밖을 오가는 장면 전환이 과장된 몸짓과 함께 이루어지며 무대는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관객은 웃음을 따라가다 어느새 다른 장소에 도착해 있다. 배우들의 동선과 시선, 조명 변화에 따라 같은 장소는 때로는 덴마크 성의 성벽이 되고 때로는 고독한 사유의 방이 된다. 우스꽝스러운 동작과 과장된 제스처, 조명을 활용한 유령의 표현, 두 인물 사이의 티격거림은 관객의 긴장을 낮춘다. 그러나 이 웃음은 감정을 풀어주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이후에 다가올 선택을 더 선명하게 만들기 위한 예고처럼 느껴진다.


연극이 흥미로운 이유는 《햄릿》을 모르는 관객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점이다. 두 경비병은 조끼를 입고 벗는 단순한 동작만으로 햄릿과 병사, 화자와 인물을 넘나든다. 이 전환은 복잡한 설명을 대신해 신체와 리듬으로 고전을 번역한다. 결과적으로 공연은 원작을 해체하거나 요약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극은 마치 누군가가 옆에서 《햄릿》을 읽어주되, 중요한 대목마다 자신의 판단을 덧붙이지 않는 낭독을 듣는 기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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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에서 주체로


 

2인극이라는 형식 역시 이 작품의 주제와 맞물려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두 경비병은 단순한 관찰자의 위치에서 벗어난다. 이들은 더 이상 햄릿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계속 말할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멈출 것인지를 고민하는 주체로 변화한다.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이들의 말은 이야기의 내용보다 이야기를 하겠다는 선택 자체를 문제 삼는다.


햄릿이 연극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려 했던 것처럼 이 공연 역시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다만 그 믿음은 순진하지 않다. 두 경비병은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선택하고 구성하는 존재로 남지만 그 선택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다. 관객은 그 결정의 순간을 함께 지켜보며 이야기란 언제나 누군가의 위험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말한다는 것은 곧 결과를 감수하는 일이며, 공연은 그 결과를 끝까지 무대 위에 남긴다.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핵심 키워드는 ‘침묵’이다. 두 경비병은 몰라서 침묵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을 아낀다. 말하는 순간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침묵을 다루는 방식에서 <엘시노어>는 판단을 서두르지 않는다. 침묵을 비겁함으로 밀어붙이기보다 그것이 언제 생존이 되고 언제 방관이 되는지를 따라간다.


결말에서 프란시스코가 마주하는 것은 극적인 승리나 명확한 해답이 아니다.  말하지 않음으로 버텨왔던 인물이 끝내 말하기를 택하는 순간은 침묵을 통과해 도달한 하나의 변화처럼 읽힌다. 끝내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이들은 더 이상 침묵 속의 목격자가 아니라 말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변화는 무대 위 인물들만의 선택으로 남지 않는다. 이 선택은 개인의 결단에 머물지 않고 함께 버텨온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침묵을 벗어난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이 이러한 결말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든다.


선택과 침묵의 시간을 지나온 이 이야기는, JS아트홀에서 3월 29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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