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 잠수정이 실종되고 내파된 잔해를 발견했다는 뉴스를 실시간으로 본 기억이 있다. 저 때 물체가 내부 압력 증가로 인해 붕괴하거나 수축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내파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다.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그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올라왔다고 해서 보게 됐다.
해양 탐사와 타이타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혹할만한 마케팅과 전문가를 섭외한 신뢰도를 바탕으로 잠수정 ‘타이탄’ 사업을 이어나간 오션게이트 사건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평생을 특권층으로 산 남자의 우매함의 봉우리가 낳은 인재였고, 전문가의 말을 귀담아들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었다.
![[크기변환]imgi_9_titan-stockton-rush-ac6e44b44df04901ba0acab603358826.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07192925_nryigpkw.jpg)
CEO 스톡턴 러쉬는 졸부 출신도 아니고 미국 건국 때부터 부유했던 집안 출신인데도 명예에 집착한 게 징그럽게 느껴졌다. 평생을 특권층으로 살았는데도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에게 열등감을 느꼈다는 걸 보며 명예라는 게 대체 뭐길래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싶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조아리는 모습이 좋아서?
주변은 생전 스톡턴에 대해 매우 자신감 넘치고 열정적인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중간중간 나오는 생전 인터뷰나 타이탄 제조 과정을 담은 영상에서도 자만에 가득 찬 게 보였다. 아직 테스트 단계임에도 전문가를 동행하지 않고 혼자 타이탄에 탑승하는데 반팔 티셔츠에 트렁크 하나만 덜렁 입고 있는 걸 보고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라고 느꼈다.
형편없는 대학 성적과 달리 안 좋은 쪽으로 똑똑한 사람이긴 했구나 싶었던 부분은 탑승객들을 승객이라고 부르지 않고 ‘임무 전문가’라고 불러 무슨 일이 일어나도 회사가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끔 했다는 것, 임원진에 여성이 있고 그 여성이 회사의 얼굴이 된다면 여성 인권을 생각하는 회사라는 좋은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젊은 여성을 임원 자리에 앉히지만 임금은 올려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크기변환]imgi_37_MV5BY2E3Y2M2ZWEtMzk1ZS00Mzg0LWI5ZTgtYzAyMWFjZTk2NTlkXkEyXkFqcGc@._V1_.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07164418_hcoswxks.jpg)
오션게이트의 전 회계사
임원진 회의에서 수석 파일럿이 타이탄에 대한 여러 부분들을 지적한 걸 본인에 대한 지적으로 받아들이며 급발진 하는 모습은 무서울 정도였다. 타이탄 운영을 위한 지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듣기 싫은 소리를 했다며 해고를 시키는데 전문가의 말을 안 들을 거면 왜 데려왔는지 이해가 안 갔다.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했다가 좋은 결과를 본 일이 드물어서인지 더 답답하고 화가 났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있는 사람일수록 더 주변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이후 차기 수석 파일럿 자리가 공석이 되자 여자 수석 파일럿이라고 하면 언론에도 좋게 비칠 거라며 비전문가인 회계사를 앉히는 걸 보고 역겨울 정도로 이미지에 집착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완벽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다 뜯어고쳐야 되는 수준의 타이탄 테스트 단계에 자신만만하게 직접 기자를 섭외해 취재를 요청하고 결국 심해 3939m까지 찍고 올라오는 데 성공한 걸 보면 좀 짜증나지만 이때까지 운도 따라줬던 것 같다. 하지만 운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준비가 된 상태에서 따라주는 거라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 같았던 타이탄이 결국 내파 되며 끝나버렸지만.
오션게이트 전직원이 타이탄이 얼마나 불안정한 잠수정인지 폭로하려고 하자 오션게이트는 고소를 했고 이에 맞고소로 대응하며 싸웠지만 결국 개인이 부담할 수 없는 금전적인 문제로 소송 취하로 끝나고 만다. 이 직원의 폭로가 공개됐다면 타이탄이라는 잠수정도 사라지고 안타까운 죽음도 없을 수 있었을 텐데 현실은 전부 미스 슬로운 같지 않나 보다.
![[크기변환]imgi_38_MV5BMmMzZTE1MjQtYWNjNC00MTA0LTgyOWMtYTZiOWVkZjk1ZDlmXkEyXkFqcGc@._V1_.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07164729_fchanoha.jpg)
깊이 내려갈 수록 탄소 섬유가 끊기는 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래프
심해 테스트에서 탄소 섬유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뚝뚝 끊기는 소리가 끊임없이 나는데도 스톡턴은 이를 두고 탄소 섬유가 ‘시즈닝’되고 있다 말한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선체가 산산조각 나기 일보 직전의 상태를 시즈닝이라고 포장하는데 사이코패스 아닌가 싶었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기술에 비해 자신감이 매우 높은 상태를 나타내는 ‘우매함의 봉우리’라는 단어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톡턴 러쉬가 딱 전형적인 우매함의 봉우리의 예시 같았다.
![[크기변환]더닝-크루거-효과.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07185615_czrxfwot.jpg)
명성이 부족했지만 (죽음으로써) 원하는 걸 얻었네요라고 말하는 내부고발자의 뼈 있는 말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에고만 크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그런 사람을 왜 피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 컨트롤러로 잠수정을 제어한다는 것부터가 구멍가게나 다름없어 보여 왜 거액을 지불하고 저런 잠수정을 탔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더 심해라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타이타닉에 대한 환상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마케팅과 안전이 보장된 것처럼 잘 포장해 살인 기계에 태운 오션게이트, 중에서도 CEO인 스톡턴이 문제지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탄 피해자들만 안타깝게 됐다.
미국에서는 이 황당한 사고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보다는 타이타닉과 심해 탐사에 대한 환상을 조롱하며 무능한 CEO 때문에 죽게 된 탑승객들까지 비하해 유가족들과 지인들이 힘들어하는 장면을 보고 새삼 놀랐다. 초반부터 이런 부분이 나와 아직 일어난 지 얼마 안 됐고 화제성이 높았던 사고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으로 다루는 것 아닐까 걱정됐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아주 잠깐 언급되고 사고의 전말과 CEO인 스톡턴 러쉬를 중점으로 다뤄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한다는 느낌 없이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사건을 살인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주변 전문가들의 경고, 위험이 감지되면 소리가 나게끔 만든 음향 모니터링 시스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고 승객을 태워 내파라는 결과를 만들어냈으니 살인이 아닐까.
당시 순식간에 내파 돼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사망했을 거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는데 다큐멘터리에서는 그런 이야기조차 없어 사실 판단은 어렵지만 기사 내용이 맞길 바란다. 적어도 고통스럽게 죽어간 건 아닐 테니.
제목처럼 이건 참사가 맞다. 탑승객들의 유가족들이 오션게이트를 상대로 건 소송에서 이겨 금전적 보상이라도 받길 바란다. 천재지변처럼 피할 수 없는 사고도 아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사고가 개인의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걸 볼 때마다 너무 괴롭다. 이런 사고를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더 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