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삶이 북극처럼 춥고 쓸쓸했으리라. 아빠에게 버림받고 홀로 남아 견뎌야하는 시간이 녹록했을리 없다. 그걸 관객들도 느껴보라는 듯이 지하에 위치한 공연장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서늘하고 차가운 공기가 덮쳐온다.
자리를 잡고 앉으면 그리 크지 않음에도 시야 전체를 채우는 압도적인 무대가 관객들을 맞이한다. 무대 정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심장이 두근거리는 가운데 북극에서 헤메는 두 존재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뮤지컬 '더 크리처'는 프랑켄슈타인 서사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수작이다.
메리 셀리의 고전 '프랑켄슈타인'은 시대를 넘어 다양한 작품으로 변주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선택권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와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했던 프랑켄슈타인의 대립을 보여준다. 이는 각각 아들과 아버지의 은유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시체더미를 뒤져 몸들을 기워붙여 생명을 창조한다. 그에게 그 모든 과정은 빛과 같은 행복한 순간이었으나,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이 만든 창조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를 홀로 버려둔다. 하지만 책임을 저버린 프랑켄슈타인에게 행복만 남아있을리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창조물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
고통과 슬픔에 휩싸인 프랑켄슈타인은 어떤 부름에 따라 그의 창조물이 숨어든 북극으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둘은 재회한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이기도 하고, 슬퍼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둘은 서로를 이해해나간다.
다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것은 프랑켄슈타인을 북극으로 부른 건 그가 만든 창조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를 부른 건 일종의 '신'이다. 북극은 프랑켄슈타인이 그를 만들었을 때의 행복했던 시간을 돌아보고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고통을 함께 겪어본 후에 자신의 책임을 어떻게 할지 다시 한 번 선택권을 부여받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프랑켄슈타인이 다시 한 번 선택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한 번 그 책임을 내던져버린 프랑켄슈타인(아버지)이 그의 장조물(아들)이 겪었던 춥고 아팠던 시간들을 직접 경험한 끝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구조로 돼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은유로 프랑켄슈타인 서사를 차용한 이번 작품 '더 크리처'는 그 과정에서 겪는 둘의 감정을 심리묘사와 압축된 연기를 통해 전달한다. 배우 두명의 열연으로 진행되는 공연은 제한된 예산으로 최대한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 구성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덜어낸 산물로 보였다.
공간을 완전히 채운 무대장치며 북극이라는 배경에 걸맞는 서늘한 온도며 각 연출마다 활용되는 빛 한줄기까지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창작진들은 빛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인물들이라고 느꼈다. 각 장면마다 색감과 조도에 따른 인물의 감정표현은 물론 빛의 방향과 성질까지 온전하게 연출의 한 요소로 담아냈다.
스토리와 대사의 특성상 오글거리거나 부담스러워지기 쉬운 작품이었으나 기본기가 탄탄한 배우들의 뛰어난 노래실력과 몰입감으로 인해 불편함으로 작용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웬만한 대형 뮤지컬보다 만족스러운 음향과 시각적 만족감을 줬다. 적재적소에 배치돼 풍부한 사운드로 울리는 넘버들도 작품에 인상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가격을 고려하면 대형 뮤지컬보다도 큰 만족감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6월 16일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에 개막한 이번 작품은 메리 셸리의 고전 프랑켄슈타인의 결말해서 출발해 북극에서 다시 조우한 박사과 괴물의 이야기를 새로운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소극장이라는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입체적인 무대와 조명 연출로 호평받고 있으며 두 명의 배우가 선사하는 연기와 가창력은 관객들을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평을 받는다.
6월 16일부터 23일까지 열린 10회의 프리뷰 공연에서 호평을 받은 이번 공연은 오는 6월 25일부터 본 공연에 돌입했다. 뮤지컬과 연극 장르를 넘나들며 흥행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글림아티스트가 준비한 작품이며 김지호 연출을 필두로 김지식 작가, 유한나 작곡가, 이현정 안무감독 등 젊은 창작진이 의기투합해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박사 역에는 박민성, 정인지, 이형훈, 신은호가 캐스팅됐으며 괴물 역에는 묵태유, 전성민, 조화니, 옥진욱까지 개성과 연기력을 갖춘 실력파 배우들이 연기한다. 공연은 오는 8월 31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