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태어나는 사람, 만들어지는 괴물

글 입력 2022.10.2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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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셀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 출간된 이후 수많은 작품의 모티프가 되어 왔다. 실제로는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인 ‘프랑켄슈타인’을 많은 사람이 괴물의 이름으로 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작품에서 괴물의 존재가 주는 파급력과 충격이 컸음을 보여준다.


극단 하이카라의 연극 <괴물>은 일제강점기 경성에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천재 과학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또한 괴물과 프랑켄슈타인의 대결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작과 달리 괴물이라는 존재 자체에 초점을 맞춰본다.

 

 

 

경성의 프랑켄슈타인, 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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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실력양성운동을 벌이던 기업가 아버지와 여성해방운동을 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성 김승희는 뛰어난 재능으로 어릴 때부터 수석을 놓치지 않는다. 그 마음속에는 언제나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펼치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하다. 자신의 욕망을 포기할 수 없었던 승희는 수십 번의 실험 끝에 이제까지 세상에 없던 존재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뛰어난 재능과 위험을 야망을 가졌다는 점에서 승희는 프랑켄슈타인과 닮았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이 영국 귀족 가문 출신의 남성이라면, 승희는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조선인 여성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출신과 주어진 성별 덕에 사회의 기득권으로 인정받았지만, 승희에게 그것은 족쇄로 작용한다. 물론 당시 일제의 수탈을 겪으며 비참하게 살아야 했던 수많은 이들과 달리 그에게는 공부하고 직업을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그렇지만 그 능력 탓에 그는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하고 겉돈다. 지식인 사회에 끼려 할 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소외되고, 같은 여성들과 어울리려 하면 교육받은 신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그를 바깥으로 내몬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픈 욕망의 표출이라면, 승희의 괴물은 ‘자신만의 것’을 갖기 위한 분투의 결과다. 승희는 착한 남편, 안정된 직업,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지만, 그걸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은 학계에서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는 일이었다. 자신이 만든 괴물을 보고 공포에 질려 도망간 프랑켄슈타인과 달리 승희는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이상하고 기이한 존재에게서 실낱같은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은 서로 다른 길로 나아간다.

 

 

 

태어나는 사람, 만들어지는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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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희는 자신이 만든 존재에게 말과 글을 가르치며 그의 지능을 연구한다. 그러나 끝까지 그에게 이름을 붙여 주지는 않는다. 승희는 그가 사람이 아니기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고, 자신밖에 만나지 않기 때문에 이름도 필요 없다고 말한다. 승희가 곧 사회고 세상이기에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던 괴물은 전쟁이 시작되고 갑자기 진짜 사회와 맞닥뜨렸을 때야 이름이 없다는 것, 괴물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온몸으로 이해하고 절망한다.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나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준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어 왔고, 그때마다 사람 같지 않은 이들은 괴물로 호명되었다. 연극에서의 괴물 역시 살아있고 생각하고 말하지만 ‘사람 같지 않아서’ 괴물 취급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승희의 말은 그가 의도한 바와는 다르겠지만 맞는 말이다. 사실은 승희도 그중 하나였다. 그 시대 화목한 가정을 가지고도 ‘자신만의 것’을 갖겠다며 탐욕을 부리는 여자는 사람 같지 않은 이상한 존재였으니까.


<괴물>에는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괴물로 호명된 또 다른 존재가 있다. 바로 승희의 딸인 미영과 미영의 연인 지혜다. 간호사로 일하던 둘은 연인 사이였다. 이들은 독일에서 파독 간호사를 모집하자 함께 독일어를 공부해 지원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동성연애를 한다는 걸 알게 된 가족들 때문에 지혜는 죽음을 맞는다. 지혜는 괴물로 판단되자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받고 장례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채 죽은 다음에도 뒷말을 듣는다.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거’, ‘동성애자’로 불리는 지혜의 얼굴은 승희가 탄생시킨 괴물의 얼굴과도 겹쳐 보인다.

 

 

 

남겨진 사람들이 만들어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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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성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2022년 서울까지 다다른다. “나를 조금이라도 사랑하지 말아주세요.”라며 절규하던 괴물은 이제 무표정한 얼굴로 평범한 옷을 입고 평범하게 말하며 거리에 섞여 살아간다. 그동안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괴물의 말처럼 “세상은 계속해서 바뀌었다. 아니, 그렇게 바뀌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연극에서 80여 년을 훌쩍 건너뛰는 동안 세상이 계속해서 새로운 괴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유는 매번 달랐지만 누군가를 낙인찍고 밖으로 밖으로 밀어내는 일은 한결같았다.


하지만 이 연극은 비극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비극보다 부각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삶이다. 찰나의 연민은 승희가 괴물을 폐기 처분하는 것을 막았고, 마찬가지로 괴물이 미영을 죽이는 것을 저지했다. 그렇게 우연과 변덕의 결과로 주어진 삶이었지만 괴물과 미영은 거기에 충실했다. 


괴물은 복수를 포기하고 미영을 돌봤고, 나중에는 임신중절을 하러 온 여성들을 돌보며 살아간다. 괴물로 만들어진 그는 또 다른 ‘괴물’ 들을 돌본 셈이다. 미영 역시 지혜를 잃었지만 낯선 땅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낸다. 시대와 불화했던 김승희라는 인물이 탄생시킨 두 존재는 자신의 창조주가 죽은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다. 이렇듯 <괴물>은 괴물로 호명되었지만 세상에 발붙이고 자신의 생을 살아가려는 이들의 이야기다. 


오늘을 살아가는 둘의 얼굴은 객석에 앉은 관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끊임없이 괴물을 만들어내는 사회에서는 괴물의 얼굴과 사람의 얼굴이 매번 오버랩된다. 죽지도 늙지도 않는 괴물은 우리와 함께 계속 살아갈 것이다. 시간이 100년 더 흐르면 괴물의 입에서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남겨진 이들이 만들어갈 이야기가 걱정되면서도 기대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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