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락페에서 살아남기 - 부산국제록페스티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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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행 기차를 탔다. 플레이리스트를 예습하기 위해 에어팟을 귀에 꽂고 모자란 잠을 채우며 한 숨 자고 일어나니 부산에 도착해있었다. 역 근처에서 돼지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기분을 내고 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삼락생태공원. 창밖 너머로 슬쩍 모습을 드러내는 바다와 습지를 바라보며 이곳이 부산임을 실감한다. 버스에서 내려 부푼 기대를 안고 걸음을 뗀다.
넓게 펼쳐진 삼락생태공원 너머로 수많은 인파와 행사용 천막들이 보이고,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화창한 날씨와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반갑다. 주변을 돌아보니 전부 페스티벌을 향하는 사람들이다. 꼭 보고싶은 아티스트라든지, 먹고싶은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며 저마다 기대감을 드러낸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길면 3일, 짧으면 하루동안 함께 페스티벌에서 뛰어놀 생각을 하니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렇다. 함께 공연을 보고 노래하면서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고, 각자의 일상과 피로를 잊고 뛰어놀 수 있는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이 이제 막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입장권을 교환받고 간단한 가방 확인을 마친 뒤 행사장에 들어왔다. 공식 MD를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 보이고 그 옆에 늘어선 F&B존이 보인다. 부산의 특색을 살린 돼지국밥과 밀면, 페스티벌에 빠질 수 없는 김치말이국수와 유독 인기가 많던 돼지갈비후라이드를 비롯해 수많은 메뉴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가격도 나름 합리적인 편이었다. 하나씩 꼭 맛보리라 다짐하면서 마저 행사장을 돌아본다.
스테이지는 총 4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메인 스테이지인 삼락 스테이지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출입구 인근에 위치해 있었고, 메인 스테이지 옆 문으로 들어가 조금 걷다보면 서브 스테이지인 그린 스테이지가 나왔다. 이 두 스테이지에서 모두가 가장 기대하는 메인 라인업의 무대들이 교차로 진행되었다.
메인 스테이지에서 약 10분정도 거리에는 리버 스테이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역시 놓칠 수 없는 라인업의 무대들이 준비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산책 겸 걷다보면 생태공원의 모습이나 나들이를 나온 부산 주민들의 모습, 생태공원 한켠에 마련되어 있는 야외 헬스장 등을 마주할 수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리버 스테이지로 향하는 길에는 ‘루키즈 온 더 부락’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루키들의 공연과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는 히든 스테이지가 있었다. 노래방 점수로 상품을 나누어주는 노래자랑 시간이나 요리왕-라따뚜이 시간도 진행되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웃음을 주었다.
삼락 스테이지와 그린 스테이지 근처에는 돗자리를 펼칠 수 있는 피크닉 존이 마련되어 있었다. 공간의 특성상 잔디밭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흙이나 약간 축축한 곳도 있어 잘 확인해서 자리를 잡아야 했다. 자리를 잡고나면 보고싶은 무대를 찾아 마음껏 뛰어다니거나 행사장 내부에 준비된 다양한 행사를 즐겨볼 수 있었다. 부산의 특색을 살린 음식들을 먹거나 돗자리에 누워 한가롭게 음악과 날씨를 즐기는 일도 빼놓을 수 없었다.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이 이루어지는 삼락생태공원의 매력은 스탠딩 존이 흙바닥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페스티벌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버려도 괜찮은 신발이 준비물로 항상 언급되곤 한다. 삼락생태공원은 비가 오면 그야말로 진흙밭이 된다. 팬들 사이에서 ‘부락은 생존이고 전투다!’라는 말이 항상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에는 행사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야자매트를 까는 등 주최측이 신경쓰고 관객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돋보이긴 했지만, 3일차에 내린 비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비를 쓰고 진흙탕에서 락을 들으며 뛰고 슬램하고 떼창하는 관객들의 모습이란 그야말로 낭만 그 자체였다. 쾌적한 공연 환경은 공연 관람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는 날씨나 환경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공연을 즐길 일종의 각오를 하고 모여있어 우천이나 진흙은 장애요소가 될 수 없고, 오히려 낭만을 더하고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우리가 락페스티벌을 사랑하는 이유, 매년 전국 각지에서 부산까지 찾아오는 이유, 진흙밭에서 뒹구면서도 함께 뛰어노는 이유는 이곳에 분명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피크닉 위주로만 즐기는 페스티벌에 비해 락페스티벌은 음악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함께 몸을 부대끼며 뛰어노는 재미가 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전우애를 느끼고, 일상에서의 나를 잊고 함께하는 경험은 다른 곳에서 느끼기 어려운 락페스티벌만의 특별함이다.
락페스티벌의 문화인 다양한 깃발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매년 참신한 깃발들이 새로 얼굴을 내밀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관련된 깃발이나 다른 페스티벌 혹은 작년에 봤던 깃발이 저 멀리 보이면 반가운 마음도 든다. 깃발러들은 대부분 공연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들이라 그 주변에 있으면 십중팔구 공연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슬램을 주도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과도한 락놀이'에 즐겁게 참여해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올해도 역시 라인업에 많은 이목이 주목되었다. KASABIAN, ELLEGARDEN 등의 해외 정상급 락스타나 실리카겔, 잔나비 같은 국내 아티스트도 반가운 얼굴 드러냈고, 국가스텐은 3집 발매 예정 소식을 들고와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SPYAIR나 STARSAILOR도 팬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훌륭한 무대를 보여줬다. 최근 페스티벌은 다양한 장르가 조금씩 섞여드는 경향이 있다. 이번 부산국제록페스티벌에도 Anne-Marie나 악뮤, Phum Viphurit 같은 락이 주 장르가 아닌 아티스트도 여럿 참여했다.
락페스티벌의 정체성을 흐린다며 아쉬움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지만 행사의 저변을 넓히고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도들이기도 하다. 아쉬워하던 사람도 막상 경험하고 나면 즐겁게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장르의 구분을 떠나 훌륭한 아티스트들임에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이승윤의 말을 빌리면, 어디까지가 락이고 라인업에 누가 올라오고 이런 논의들(일명 아웅다웅)은 문화를 즐기는 재밌는 방식 중 하나이지만 그것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공연을 다니다보면 최근 밴드음악과 페스티벌을 즐기는 향유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현장에서 체감이 된다. 자기만의 색과 탄탄한 실력으로 무장한 신예 밴드들이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있고, 인기의 상승폭이 몇달만에도 확연하게 체감이 되는 수준이다. 이처럼 밴드붐이 일고 있는 이 시점에,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함께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과 이 문화를 공유하고 즐기고 파이를 넓혀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일시적 유행으로 그치지 않도록 말이다. 그것은 이 문화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일종의 숙제일 것이다.
2024년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이 10월 4일 금요일부터 6일 일요일까지 3일간 부산삼락생태공원에서 진행됐다.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부산문화관광축제위원회의 주도로 수십년간 이어지고 있는 국내 최장수 락 페스티벌이자 국내외의 다양한 아티스트를 만나볼 수 있는 페스티벌로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더위가 물러가고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에 행사가 진행되고, 일정과 동선을 조율하면 부산국제영화제도 함께 즐겨볼 수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내년에도 낭만이 가득한 부산에서 만나 함께 뛰고 즐기고 노래할 날을 벌써부터 기대하며 기다린다. 흙이 묻어도 좋을 신발 한 켤례와 체력, 신나게 즐길 마음의 준비만 되어있다면 낭만 가득한 추억을 새길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김인규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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