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바다와 이야기 [공간]

사색의 공간

by 이한별 에디터
2025.07.17 21:33

 

 

바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했다.


바다에 가면 늘 생각을 하게되니까.


뭐라도 떠올라 집에 돌아올 땐 그 모래 한 줌만큼의 생각으로 어딘가 모르게 성장해있는 나 자신을 마주한다.

 

목포에 다녀왔다.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기온에 전날부터 예고된 호우주의보까지 합쳐져 습하고 위험한 여름 여행이 예상됐다. 그렇기에 날씨에 대한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걱정보단 ‘비가 오면 우비를 쓰지 뭐!’라는 생각과 날씨가 안 좋은 게 이번 여행의 컨셉으로 잡자는 기대감이 넘쳐흘렀다.

 


KakaoTalk_20250717_211659828.jpg

 

 

날씨 결과부터 말하자면 폭우는커녕, 이슬비마저 내리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가는 날 하늘색이 심상치 않아 숙소를 나서며 우산을 펼칠 준비를 했는데, 나갈 준비가 끝나니 동시에 비가 멈췄다. 목포역에 다다라서야 비가 다시 와서 잠깐 우산을 폈는데, 마치 챙겨 온 우산이 섭섭하지 않게 챙겨주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 목포는 아주 맑았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낌새도 없이 쾌청하고 시원해서 바닷가 돌계단에 앉아있을 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여름에 이렇게 시원해도 돼?”



KakaoTalk_20250717_203517898_01.jpg

 

  

감격적인 날씨에 인위적인 에어컨 바람을 맞고 있을 순 없어서 자연 바람을 끼고 바다를 산책했다. 모래사장이 있는 해안가인 줄 알고 찾아갔는데, 방파제가 있어서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바다였다. 새하얀 구름이 그림 같고 햇빛을 받아 윤슬이 빛나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비가 내렸다 멈춰 시원한 바람이 보호해주는 공간 속 돌계단에 잠시 몸을 의탁했다. ‘잠시’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시간은 저녁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다음날 밤, 또 다시 그 공간을 찾았다.


그 공간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고받았던, 끝에는 시공간 개념이 바다에 둥둥 떠다녔지만 결코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던 안락했던 순간의 이야기를 아래에 방류해 본다.

 

*

 

(*A와 B의 대화)

 

A: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있어? 좋아하는 거 말고 사랑하는 거.


B: 음.. 없는 것 같아.


A: 그럼 “사랑해”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사실 나는 진심으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 거짓으로는 전혀 뱉어지지 않더라구. 그래서인지 누굴 미칠 듯이 좋아해 본 적은 있어도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아직 없는 것 같아. 지금까지 좋아함의 100레벨까지는 경험했어도 사랑의 1레벨에는 문턱도 못 간 느낌.


B: 어라 그럼 나는 사랑을 해본건가? 나는 “사랑해”라는 말 꽤 하는 것 같아. 그리고 어떤 순간에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해도 괜찮겠다.’라는 마음이 들던 때도 있었던 것 같아. 음.. 나, 사랑해본 건가?


A: 평생이라는 건.. 그 사람과 미래를 내다봤다는 건 사랑한 거 아닌가?!?!


B: 사랑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


A: 물론 10분 뒤에 바뀔 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바다에서 이 시간에 떠올리는 사랑은 ‘보고싶다’ 같아. 직접 보지 않더라도, 갑자기 머릿속에 누군가가 보고싶을만큼 떠오른다는 건 사랑한다는 말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 같아. 엇, 잠시만 나도 해본건가? 사랑? 

 

흐르는 대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이 물결에 따라, 상대의 말에 따라 내 생각이 바뀐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내 것을 나누고, 이미 정의 내린 생각도 순식간에 재창조되면서 무수히 많은 물음표와 느낌표가 바다로 던져진다.


‘사랑’이라는 다소 뻔하지만 인생에 없어선 안될 주제도 그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피해갈 순 없다. 살아 있는 내내 모든 만물에서 사랑을 떠올렸던 내게 사랑은 꽤 자신 있는 주제였다. 하지만 주고받는 대화에서 스스로 다음 물음표를 떠올릴 때마다, 문장을 명쾌하게 끝마치지 못할 때마다 어쩌면 생이 다할 때까지도 사랑에는 마침표를 찍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형성하는 대화를 바다도 듣고 있었을까? 우리는 나란히 앉았으니까, 사실 내 눈을 더 많이 맞춘 건 바다인데. 그 시원한 파도 소리가 우리 대화에 주는 리액션이었을까? 공감의 끄덕임이었을까, 박수였을까, 한숨이었을까? 바다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을까?


바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했다. 바다에 가면 늘 생각을 하게되니까.

 

하지만 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야기는 우리가 들려주고 있었다.


바다 앞에 서면 시야는 확장되지만 나는 어딘가 쪼그라든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일까, 그 넓은 바다의 품에 의지하고 싶어지는 게? 바다의 존재만으로 그런 격려와 성장의 기회를 받아온 거라면, 나는 기꺼이 내 이야기를 내어줄 수 있다. 언제고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이한별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서투름을 잃지 않는 기세!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