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서울로 놀러 갈 때마다 사당역을 거치는 편인데, 제대로 온 게 맞나 싶어 지도를 볼 때마다 한 미술관이 눈에 띄었다. 바로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이다. 사당역 6번 출구로 나와서 10분이 안되게 걸으면 도착하는 미술관이었는데 매번 시간이 애매해서 흘깃 보고 지나치곤 했다. 혹은,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오늘은 조금 피곤하니 다음번에 가 보자' 한다거나.
그러다 지난 수요일에 기회가 생겼다. 전날 고양에 사는 친구네 집에서 밤새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에 얼른 집에 가야지 했는데 다음 버스가 40분 뒤에나 온다고 했다. 그 숫자를 보자마자 홀린 듯이 남서울미술관을 떠올렸다.
무슨 전시가 진행 중인 지도 모르고 무작정 걸어갔다. 신발 앞 코로 빗물을 튀겨대며 도착한 그곳은 마치 저택 같기도 했다. 묘하게 비대칭적이지만 조화로운 나무들과 축축하게 숨이 죽어있는 잔디들, 안쪽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까지. 언젠가 유치원에서 집을 그리라고 빈 종이를 주면 슥슥 만들어냈던 2층 집의 전경 같았다.
들어가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1층에서 진행 중인 상설 전시의 이름이 「권진규의 영원한 집」이었다.
권진규
2021년 7월 (사)권진규기념사업회와 유족은 많은 사람들이 권진규의 작품을 접하길 바라며 서울시립미술관에 총 141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덕분에 회고전과 순회전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작품들은, 2023년부터 벨기에 영사관이었던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상설전시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1950년대부터 탄생한 조각, 소조, 부조, 드로잉, 유화들이 드디어 집을 찾아온 것이다.
그 모든 작품들의 아버지인 권진규는 일제 강점기였던 1922년 4월 7일에 함흥에서 유복한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그는 1949년 3월에 무사시노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미술 교육을 받았다.
그는 프랑스의 조각가인 부르델(Antoine Bourdelle, 1861-1929)의 제자 시미즈 다카시에게서 부르델의 정신과 조각 이론에 근거한 교육을 받았다. 부르델은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의 조수였지만 그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찾고자 했고, 이를 위해서 서구 문명의 근원인 고대 그리스 아케이즘(archaism) 양식을 탐구하며 새로운 예술을 창조했다.
"나는 영원한 면을 찾아, 비본질적인 것에서 도망쳤다."
부르델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부르델의 정신을 계승한 권진규는 신라시대의 조각 전통을 탐구하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갔다. 「도모」 연작에서 볼 수 있듯이 초기부터 전체적인 구조와 본질을 중요시하며 세부적인 묘소를 생략하고 형태를 단순화했다.
권진규에게 진정한 작품이란, 자기 주변의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 연구하여 본질을 찾아내고 그것을 순수하게 표현해 내는 것이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사실적인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혼, 그리고 영원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현세와 내세,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다가 종래에는 전부 무화無化하는 작품으로 자신만의 모더니티를 구현했다.
인연
1965년, 권진규는 신문회관에서 수화랑 초대로 첫 개인전을 개최했는데, 이 전시는 미문화원장 부부, 평론가, 작가, 언론인 등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전시를 보러 온 사람 중에서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학생 이선자가 있었다.
그녀는 출품 작품들을 보고 감동을 받아 권진규의 아틀리에로 직접 찾아왔다. 그리고 조각을 배우고 모델도 서며 그와 깊이 교류했다. 이후에 선자의 고등학교 친구들인 남명자, 강애자, 최명자 등까지 아틀리에로 찾아와서 교류하며 기꺼이 모델을 해 준 덕분에 그는 여성의 두상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위의 작품은 1967년에 석고로 만들어진 「선자」이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시선과 머리카락을 최대한 생략하면서도 입체적으로 묘사한 것은 권진규의 여성 인물상에서 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권진규의 테라코타 특징은 두상의 머리 가운데 선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데 있다"는 전처의 말처럼 이 작품에서도 코를 중심으로 상하좌우의 선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에게는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전문 모델보다는 잘 알고 지내는 주변의 지인들을 작품의 대상으로 삼았다.
영원이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들 하지만, 영원한 것이 없다는 사실만큼은 영원하다. 그러한 진실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영원한 것이 하나쯤은 존재한다는 명제가, 전부 무화되어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 단출하게 빛나기 때문이다.
권진규는 생의 마지막까지 영원을 향해 달려가던 사람이다. 언젠가는 세상이 무너지고, 현재를 이루는 모든 것이 증발하고, 그가 정성을 들인 작품들마저 전부 깨어져 사라져버리겠지만, 조각가 권진규가 남기고자 했던 본질만큼은 시간 선의 어느 곳에서 영원히 머무르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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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의 영원한 집」은 사당역 근처의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에 휴관을 하며, 평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주말 및 공휴일에는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관람료가 무료인데도 불구하고 매주 화, 수, 금, 토, 일요일의 2시마다 도슨트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시간을 맞춰서 방문하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