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파먹기」는 사랑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이 선택한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독자들은 이 모습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모습을 돌아보고, 어떤 사랑의 모습이 바람직한지 고민해 볼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세나, 정인, 윤주는 결국 같은 대상을 사랑하며 자신들의 사랑을 지속하는데, 그들이 선택한 덕질이라는 사랑은 마냥 아름다운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 파먹기」는 덕질을 세 인물의 시점에서 그린 소설이다. 3명의 인물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세나와 정인은 사람 아이돌에서 AI 아이돌로, 윤주는 남자 친구에서 AI 아이돌로 사랑을 지속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은, 사랑에 실망했을 때 사랑을 포기하거나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다른 대상으로 사랑을 옮겨가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책의 제목과도 연결된다. 먹는 행위는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에 사람은 사랑을 파먹으면서 생존해 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공통으로 파먹기로 한 덕질이라는 사랑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첫 번째, 덕질은 감정의 정량화가 가장 쉬운 사랑의 형태이다. 추운 겨울날 윤주가 일하는 카페에 사람들이 한 시간 동안 기다린 것은 아이돌의 생일 카페에서만 파는 마카롱, 컵홀더, 포토 카드, 부채 등을 받기 위해서고, 포토 카드 한 장이 25만 원에 거래되는 것 또한, 그것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덕질은 다양한 물품과 문화로 공유되며, 특정 물품을 소유해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엠마뉘엘 레비나스가 경고한 감정의 형태이다. 그는 감정이란 최초의 능동성이라고 말했다. 감정은 관념이고, 상징적 차원으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감정이 어떠한 물건이나 수치로 구체화한다면 감정은 그 고유한 능동성을 상실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 감정의 대상화, 구체화는 욕망에 근접한 것으로 보았는데, 덕질에서는 이 욕망이 소유욕, 구매욕과 연결된다. 사랑을 물건의 소유와 연결시키고 수치화할 때, 인간은 욕망에 지배될 수 있는 것이고, 자신의 감정에 대한 능동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두 번째, 덕질은 사랑의 대상을 이상화한다. 3명의 인물은 자기 전에 모두 똑같은 문자를 받는다. 이들은 사람이 아니므로 논란에서 오는 불안도 없고, 항상 모닝콜을 해주며, 외모와 실력도 떨어질 수 없다. 아쿠아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의 대상이 된 이유는, 이들은 사랑할만하기 때문이다. 마치 이젠 아쿠아보다 부족한 대상은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그 사람이 사랑할만해서 사랑하는 것을 뛰어넘는 것이다. 로버트 스턴버그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통해 사랑은 친밀감, 열정, 책임감이 균형을 이룰 때 성숙한 사랑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인물들이 아쿠아의 이상적인 모습에만 기대서 사랑을 지속하는 것은 사랑에서 오는 불편함과 어려움을 감당하겠다는 책임감 있는 자세가 결여된 모습이다. 소설에 등장한 ‘인스턴트 러브’라는 단어 또한 대상을 책임지지 않고,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부분만 누리겠다는 표현이다. 덕질은 성숙하고 지속적이고, 현실적인 사랑의 형태가 아닌 책임감이 결여된 미성숙한 사랑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따라 사랑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인물들은 각자의 서사와 투쟁을 통해 모두 같은 사랑의 대상에 도착한다. 하지만 이들이 선택한 덕질이라는 사랑의 형태는 사랑을 물질로 바라보게 하며, 사랑의 책임감을 외면하게 한다. 덕질의 사랑이 모두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 재고해야 하는 사랑의 형태이다.
3명의 인물 모두 같은 사랑에 빠진 것을 볼 때,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