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유전적 문화요소의 예술적 전승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3.1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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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전적 문화요소의 예술적 전승 : 예술과 공간의 기술성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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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유명 저서 <이기적 유전자>의 주요논지는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생존 기계다” 라는 것이다. 철저히 도킨스에 따르면 유전자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고, 그것들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해 주는 유일한 이유로 상정된다. 따라서 유전자는 유전자 자체를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며, 생물의 몸을 빌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동물과 인간을 막론한 절대적 사실로서 우리 인간이 누리는 막대한 이점들을 잘 설명해주지 못한다. 나는 인간의 이성, 도덕성, 놀이를 모두 총체해 문화라는 것이 존재하고 이것이 바로 인간종을 포괄한다고 생각한다. 도킨스도 인간의 특이성은 ‘문화’라고 하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고 주장할 만큼 문화의 중요성을 매우 크게 보았다. 이에 비유전적 문화요소(meme)라는 용어를 붙여가며 문화적 진화를 설명하려 시도하고 있는데, 문화적 전달은 일종의 진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유전적 전달과 유사하다는 점이 특히 인상깊었다. 그 말인즉슨 인간의 특유한 문화 속에 모방의 단위가 될 수 있는 문화적 전달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전적 진화보다 빠르고 진보적이면서도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과 같이 영속적이고 보편적이기도 하다. 보는이로 하여금 이목을 끄는 것은 '밈은 비유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라고 한 부분이다. 과연 밈은 어떤 실체를 가졌을까? 마냥 추상적이기만 한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할 수 있을만한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 명확한 해답을 구하기 앞서 짚고넘어가야 할 부분은 자기 복제를 할 수 있는 모든 유전자가 성공적이지 않은것처럼, 밈도 자연선택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자연환경과 사고방식, 정치형태와 경제상황 모두에게서 선택받은 문화 전달자만이 살아남는다.


앞서 말한 밈의 실체는 바로, 집단의 문화를 함축적으로 가시화한 예술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오종우의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구체화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예술적 상상력은 보이는 것 너머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힘이며 삶을 고양하는 능력이다”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삶을 고양하는 능력은 우리 몸으로 바꿔말하면 유전자가 될 것이고, 우리의 논의에서는 바로 예술적 산물, 즉 미의 감각을 환원시키는 음악,문학,미술,건축 등이 될 것이다. 본문에서는 예술의 본질이 ‘기술’ 이라는 산뜻한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것은 영단어 Art의 뜻만 봐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겠는데, 예술도 뭔가를 가공하여 만든다는 점에서 테크놀로지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유전자의 전달자는 예술이고, 예술은 기술이다.

 

예술, 특히 미술작품들은 미적관조의 대상에 한정되지 않는다. 미술은 고대사회에서 기록의 수단으로 출발하여 신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도구로 존재하였고 중세시대에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어찌보면 과학 기술의 발전과 같은 양상을 띄는 것이 미술이지 않나 한다. 즉 존재 목적이 뚜렷하고 시대와 흐름을 같이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견을 이 책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 뒷받침할 수 있었다.

 

“예술은 테크놀로지로서 사람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지만, 장식은 모자란 부분을 숨긴다. 화려할지는 몰라도 꾸밈은 말 그대로 미화일 뿐이다. (중략)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꾸밈과는 거리가 멀다.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꽃을 보더라도 그 아름다움은 꽃의 입장에서는 존재하기 위해 꼭 필요한 모양이다.”

 

이제까지 미술이 주는 인상이 화려함이 전부였던가? 그러나 그 본질은 가식적인 꾸밈에 내재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연금술로서의 예술. 모래를 값비싼 금으로 바꾸는 것처럼 유전자의 생존기계인 자연을, 또 우리 인간을 한 차원더 높고 가치있는 존재로 바꾸는 것이 예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채 1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박물관과 미술관에만 너무 익숙한 우리에게는 예술이 기술이다 라는 말은 아직 설득력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그럼이제 유현준의 <공간이 만든 공간> 과 함께 조금 색다른 이야기를 나눠보자. 건축은 예술과 기술의 뗄래야 뗄수없는 관계를 무엇보다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공간의 변화가 보여주는 문화의 진화’를 모든 장에서 거론하면서 문화인류학 저서라고 분류되어도 무방할 만큼 문화와 자연, 인간과의 인과관계를 잘 풀어내고있으며 특히 동서양의 자연환경과 문화차이에 따른 공간의 이색점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동양에서 건축물이 자연을 바라보게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한다면, 서양에서는 건축물 자체가 목적이 되는 건축이 되었다."

 

신이 천지를 창조하기보다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인간사를 좌우했을 정도로 강수량은 인간의 생활양식과 건축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강수량이 많은 동양은 지붕중심의 건축, 그렇지 않은 서양은 벽중심의 건축을 하게되었는데 이는 건축의 자제, 지속기간등에도 영향을 주며 종래에는 사람과 사람사이 관계의 속성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또 많은 물이 필요한 벼농사는 주로 동양에서 짓게되었고 상대적으로 서양에서 밀재배가 많이 이루어졌다. 논에서 논으로 물을 대기 위해서는 공동경작이 필요했고 그래서 마을 사람간의 유대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였고, 척박한 땅에 씨만 뿌려도 수확이 손쉬운 밀 재배지역에서는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하였다. 이 모든것은 단편적인 예시가 아니라 하나의 별자리 처럼 서로 구분되면서도 연결된 공간의 성질이다. 동서양은 몇천년간의 역사속에 각자의 전통 건축양식을 만들어왔고 이따금 교통의 발달로 ‘공간의 압축’이 이루어지면서 문화간의 융합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서로 다른 문화간의 교류와 융합은 앞서 이야기 나눈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다른 품종간의 교배로 볼 수 있을것이다. 유현준 교수도 다른 지역에서 발전한 문화는 이종교배를 통해서 2차적인 창조를 만들고 그것이 다음세대의 문화로 재탄생한다고 보고있다.

 

그러나 20세기를 지나 21세기 세계화의 큰 바람을 맞으며 흡사 노래 ‘네모의 꿈’의 가삿말과 같이 주위엔 온통 네모난 것들만 남았다. 네모난 건물과 네모난 창문이 한국의 서울에도, 독일의 베를린에도, 어딘지 모를 그 어떤곳을 가도 있다. 한옥이라던지 이글루, 수상가옥과 같은 자연을 담은 건축물들은 점점 종적을 감춰간다. 근대 지나치게 강조된 실용주의로 탄생한 무수한 빌딩들은 우리에게 크나큰 효용을 가져다 준것은 맞으나 그 변화가 자못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유현준 교수는 이에 대해 지역 문화를 배재한 상태에서 철근 콘크리트, 엘리베이터, 유리 같은 기술만 적용했기 때문이라는 일침을 가한다. 진정한 창조는 문화와 기술 모두를 잡았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화적 요소의 융합이 배제된 채 기술적인 부분만 적용하면 다양성이 소멸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큰 함의를 가지는  ‘공간의 이종교배’가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을 필두로 이루어지고 있긴하다. 그 예시로  루이스 칸의 기하학, 도가사상, 유대민족의 문화가 합쳐진 건축물과 안도 다다오의 서양의 기하학과 동양의 관계성이 융합된 건축물 등이 있다.

 

공간의 변화는 문화의 진화를 보여준다고 했다. 자연의 세계처럼 보다 우수한 문화만이 살아남는다. 트렌드는 그 시대에 폭발적으로 번식하는 개체일 뿐이고 좀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종교배를 통해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해야만 한다. 가끔 개체와 집단이 무지막지한 복잡성을 띠면 레트로로 돌아가려는 시도도 한다. 그것이 또 융합되어 뉴트로를 만든다. 이 변화는 절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유전자의 생존기계로 살아숨쉬는 우리가 있는 이곳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언뜻 전혀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세권의 명저를 두고 ‘예술과 공간의 변화가 우리의 문화유전자를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과감한 시도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로서는 문화와 예술의 관계성에 대한 명제를 스스로 찾는, 그리고 그동안 내가 막연히 생각하던 ‘문화’라는 인류를 지배하는 거대한 실체를 조금 더 실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결론적으로 문화는 인류를 정의하는 그무엇이며 자연환경으로 부터 파생된 생활양식, 사고방식 등 모든것의 집합체로서 구체적으로는 예술의 형태로 인류의 역사를 함께해왔다. 그 과정에서 유전자가 선택받고 진화해 온것처럼 많은 문화요소가 소멸과 진화를 거듭했고, 인류를 생물학적 존재 뿐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 생존하게끔했다.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것만 들어서 하나의 가설 정도로 제시한 이야기이니, 부족하고도 모순된 부분이 많을 것이다. 꼭 기회가 된다면 밈 이론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쓰임을 전제하는 건축물의 미학도 다뤄보고 싶다.

 

 

*리처드 도킨스, (2018) 이기적 유전자, 오종우, (2019) 예술적 상상력, 유현준, (2020) 공간이만든공간 을 인용,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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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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