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디어 컬렉터

글 입력 2023.12.2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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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예술, 소통하는 아트 컬렉션


사는 곳도,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지만,

예술과 대화하고 예술로 연결된

현대미술 컬렉터 21인의 다이얼로그

 

 

이 책을 쓴 김지은은 우리에게 [뉴스데스크]와 심야 라디오를 진행한 MBC 아나운서로 익숙한 이름이지만 알고 보면 국내외 유수의 교육기관에서 예술학, 미술시장, 미술이론 등 미술에 관한 다양한 공부를 해온 미술 전문가이자, 20여 년간 작품을 수집해온 컬렉터다.

 

뉴욕, 파리, 상하이 등 작품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설레는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던 그였지만, 2020년 갑작스레 맞닥뜨린 코로나19는 미술 여행은커녕 외출 동선마저 간결하게 만들고 말았다. 전시 관람은 물론 이전처럼 자유로운 외부 활동이 언제쯤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고립감과 우울감을 느낀 김지은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친구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서로 가진 아름다운 것들을 공유하자"고 제안한다. 그것이 '디어 컬렉터'라 이름 붙인 '예술로 연결하기' 프로젝트의 시작이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일상 속 예술의 힘'은 서로를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주었다.

 

팬데믹에 시작해 엔데믹까지 약 3년간 진행한 프로젝트에는 모두 21명의 현대미술 컬렉터가 참여했고, 수백 통의 이메일, 수십 통의 전화가 오고갔으며, 방문 가능한 곳은 직접 찾아가 예술에 관한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작품을 수집한 컬렉터들의 컬렉팅 철학부터 현대미술의 선단에서 활약하는 예술가들과 동시대 미술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400여 점이 넘는 풍부한 작품 이미지를 감상하는 재미와 함께 미술의 현주소를 살피기에 더없이 좋은 자료가 되어준다.

 

사는 곳도,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지만 예술로 무한하게 열리는 소통과 연결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21명의 현대미술 컬렉터들의 목소리는 '지금' '우리' '여기'의 예술이 갖는 의미와 가치에 귀기울이게 하며, "현대미술의 매력을 컬렉터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들려준다는 점에서" [디어 컬렉터]는 분명 "새로운 형식의 현대미술 입문서"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과 위안

현대미술이 품은 현재성의 미학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왔다. 답은 아주 간단하다. 지금 친구네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이는 벽에 걸린 그림이다. 커피 테이블 위의 조각이다.] (6쪽)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미술을 아주 쉽게 정의한다. 현재를 담고 있는 예술이 곧 현대미술이라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와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 고민하고 답을 찾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현대미술가들에게 '현재성nowness'은 그래서 언제나 중요한 화두다. 그렇게 구현된 작품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발굴해내는 컬렉터들은 현대적 고고학자이자, 자신만의 안목으로 작품들을 배치해 새로운 의미의 집을 짓는 건축가라 할 만하다.

 

책에는 양혜규, 이수경, 조지 콘도, 니콜라스 파티, 펑정지에, 구사마 야요이 등 국제적 명성을 쌓은 작가들은 물론, 이제 막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신진 작가,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주류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독창성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 컬렉터 각자의 철학으로 일군 '아주 특별한' 아트 컬렉션이 풍부하게 실려 있다.

 

책은 전문 컬렉터, 예술가 컬렉터, 일상 컬렉터 등 다섯 개의 부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지만, 독자는 "일단 아무 페이지나 열어 쭉 훑어보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끌리는 작품이 나오면 잠깐 그 순간을 즐겨"주면 된다. 그러다 "작품을 그리거나 조각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지면 그때 작품 근처에 있는 본문의 내용을 읽어"보자. "누구나 작품을 컬렉팅할 수 있고 현대적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강조하는 저자의 말처럼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조금씩 알아가고, 현대미술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실마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컬렉팅은 세상을 내 안으로 들여오는 일


 

[작품을 소장하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내 안으로 들여오는 일이다. 내 안의 세계는 나를 성장시키고 확장시킨다. 내 고민의 진정한 출처를 찾게 되고 세상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관찰할 수 있으며 나란히 걷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다.] (71쪽)

 

지난 3년은 집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난 시기였다. 그러다보니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탐색하려는 이들이 늘었다. 미술에 대한 흥미와 컬렉팅에 대한 호기심을 키운 이들도 적지 않다. 최근 국내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미술전시 및 아트페어에 수만 명이 몰리는 것만 봐도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부쩍 커졌음을 방증한다. 한때 미술 투자에 쏠렸던 관심이 점차 소유와 감상, 향유로 컬렉팅의 의미가 옮겨가면서 '나만의 컬렉션'을 일구고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안목과 취향, 가격이라는 벽에 부딪혀 컬렉팅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에게는 미술 애호가이자 앞서 자신의 컬렉션을 일군 선배 컬렉터들의 조언과 철학이 얼마간 도움이 될 것이다. 서울, 뉴욕,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세계 각지에서 모인 21명 컬렉터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흥미롭다. 그들에게 미술 컬렉팅은 금전적 가치가 아닌, 경험의 확장이다. 프레임이라는 벽을 허물고 광활한 자연으로 나아가는 모험의 통로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컬렉터로 아방가르드 예술을 적극 옹호한 거트루드 스타인이 말했듯 우리는 옷을 살 수도 있고 예술작품을 살 수도 있어요. 엄청난 부자가 아니라면 둘 다 하기 쉽지 않겠죠. 만일 옷을 안 산다면 그 돈으로 얼마든지 예술작품을 살 수 있어요. 작은 작품이라도 일단 사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세요. 갤러리, 아트페어 같은 곳을 다니며 하나하나 배워보는 거예요. 작가 스튜디오도 방문해보고요. 예술가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일은 인생을 정말 풍요롭게 만듭니다.] (71쪽)


내 안에 또다른 세상을 만들어보는 경험. [디어 컬렉터]는 이제 막 컬렉팅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인 컬렉터들은 물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 사고의 지평을 확장하고 싶은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김지은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 [뉴스데스크] [출발! 비디오 여행] [즐거운 문화읽기] [라디오 북클럽 김지은입니다], 라디오 코너 [미술관 가는 길] [뉴욕 스토리]를 진행했고, 기획국장, 편성국장 등을 거쳐 여전히 MBC에 재직중이다.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예술학 석사를 마치고 뉴욕 크리스티대학원에서 미술시장, 감정, 경매, 미술이론에 이르기까지 미술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공부했다. 이 모든 과정은 한 장의 그림 때문에 일어났다. 어린 시절 우연히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투시력]을 보고 "작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한 이후 작품은 늘 가까이 두고, 사랑하고 싶은 존재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중에게 알린 베스트셀러 [서늘한 미인] [예술가의 방]을 썼으며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을 우리말로 옮겼다. 단순히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책에 나오는 '일상의 숙제들' 아트 프로젝트를 국내에서도 진행하면서 한국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첫 월급으로 그림을 산 후 작품 소장은 세계를 내 안으로 들여오는 일이라는 생각을 변함없이 갖고 있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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