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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나는 자꾸 왼손으로 세상을 만졌다 [영화]

영화 〈왼손잡이 소녀〉(Left-Handed Girl, 2025)를 보고서

by 최은파 에디터
2026.05.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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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던 아이


 

“너 생각나서 추천했어.”


친구는 아주 가볍게 영화 〈왼손잡이 소녀〉(Left-Handed Girl, 2025)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제목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오래된 감각 하나였다. 어린 시절 밥상 앞에서 몇 번이고 숟가락을 고쳐 쥐어야 했던 기억. 왼손으로 글씨를 쓰다가 연필을 다시 오른손에 쥐어야 했던 순간들. 손등을 가볍게 맞으며 “반대로 하지 마”라는 말을 듣던 날들.


생각해보면 나는 자꾸 왼손으로 세상을 만지려 했던 아이였다.


하지만 세상은 대부분 오른손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가위도, 책상도, 악수도, 식사 예절도, 심지어 “보기 좋은 모습”이라는 감각까지. 왼손은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자꾸 교정되어야 하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상한 것은 그런 말을 오래 듣다 보면 정말로 자기 몸의 방향을 의심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나는 한동안 왼손으로 무언가를 하는 일이 괜히 민망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영화를 단순히 왼손잡이 아이의 성장담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는 예상보다 훨씬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이 작품에서 ‘왼손’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몸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몸은 끝내 고쳐져야 하는 것으로 취급되는 세계의 질서를 드러내는 상징처럼 보인다.

 

 


타이베이의 밤과 살아남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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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은 타이베이의 야시장이다. 네온사인과 오토바이 소리,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인 공간. 영화는 이 장소를 관광지처럼 낭만적으로 찍지 않는다.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이 끝없이 움직이는 생활의 공간으로 보여준다. 세 모녀는 이곳에서 작은 국수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좁은 골목과 번잡한 시장은 영화 전체를 계속 흔들리는 상태로 만든다. 누구도 완전히 안정되어 있지 않고, 인물들은 늘 생계와 관계의 불안 속에서 움직인다.


나는 영화 속 야시장이 하나의 거대한 몸처럼 느껴졌다. 뜨겁고 시끄럽고, 쉼 없이 움직이는 몸. 그리고 그 안에서 세 여성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세 여성의 몸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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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슈펀의 몸은 노동의 몸이다. 그녀는 쉬지 않는다. 국수를 삶고, 손님을 받고, 가게를 정리하고, 가족을 먹여 살린다. 영화는 그런 그녀를 위대한 어머니처럼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슈펀은 자주 지쳐 있고 날카롭고, 때로는 무심해 보인다. 그런데 나는 그 점이 좋았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다정한 얼굴만 하고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어머니라는 존재에게 끝없는 희생과 헌신을 기대한다. 하지만 영화는 생존 앞에서 조금씩 마모되는 여성의 몸을 훨씬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슈펀의 몸은 돌봄과 노동을 동시에 수행하지만, 그 노동은 너무 자주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보이지 않게 된다. 영화를 보며 나는 여성의 몸이 얼마나 자주 기능으로만 소비되는지 생각했다. 누군가를 먹이고, 돌보고, 버티게 만드는 몸. 그러나 정작 그 몸 자체는 거의 돌봄받지 못하는 현실 말이다.


첫째 딸 정이안의 몸은 또 다른 방식으로 흔들린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통해 독립하려 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시선 속에서 끊임없이 평가받는다. 영화 속 정이안은 예민하고 날카롭다. 쉽게 상처를 드러내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위태롭게 보인다.


나는 그녀를 보며 여성의 몸이 늘 모순된 요구 속에 놓여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는 여성에게 아름다움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기를 바란다. 자유롭기를 바라면서도 함부로 욕망하지 않기를 요구한다. 정이안은 그 모순 속에서 자기 몸을 견디고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사건은 그런 여성의 몸이 얼마나 쉽게 타인의 소유가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이안은 가게 사장과 관계를 맺고 아이를 갖게 되지만, 자신은 그 남자가 이미 이혼한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생일잔치 자리에서 사장의 아내와 가족들이 들이닥치며 모든 것이 폭로된다. 그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잔인한 순간 중 하나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정이안의 감정보다 그녀의 몸과 아이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다. 특히 사장 부부가 “남자아이면 우리가 키우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오래 잊히지 않았다. 유산을 받을 수 있으니 돈은 자신들이 대겠다고 말하는 그 태도 속에서 아이는 생명이 아니라 가문의 계승 수단처럼 취급된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 선명하게 가부장제의 얼굴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몸은 욕망의 대상이 되지만, 동시에 출산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마저도 누군가의 혈통과 재산을 이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계산된다. 그런데 더 비극적인 것은, 그렇게 소유권을 주장하던 아이가 이미 유산되었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끝내 그 모든 욕망과 계산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는 또 하나의 비밀을 드러낸다. 막내 정이징은 사실 슈펀의 딸이 아니라 정이안의 딸이었다. 나는 그 설정이 단순한 반전이라기보다, 이 영화가 ‘정상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흔들기 위해 준비한 장치처럼 느껴졌다. 영화 속 가족은 전통적인 질서로 설명되지 않는다. 누가 엄마이고, 누가 딸이며, 누가 가족인가 하는 문제는 계속 흐트러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는 그 흔들림 속에서 오히려 더 강한 유대감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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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이징에게 남겨진 것은 왼손이다. 영화 속 어른들은 왼손을 불길한 것으로 여기고, 아이는 점점 자신의 손이 잘못된 것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나는 그 장면들을 보며 이상할 만큼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평균과 규범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다수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몸은 쉽게 설명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이해하기보다 먼저 고치려 한다. 결국 문제는 효율이 아니라 불안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는 자신이 익숙하게 이해해온 질서 밖의 몸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정이징의 왼손은 단순한 손이 아니다. 그것은 정상 바깥에 놓인 몸 전체를 상징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 몸을 억지로 교정하려는 세계의 시선을 아주 조용하게 보여준다.

 

 


끝내 자기 방향으로 살아남는다는 것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세 여성의 몸을 통해 정상성과 여성성을 함께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여성은 무엇인가. 잘 돌보고, 적당히 희생하며, 과하지 않게 욕망하지 않고, 조용히 사회에 적응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세 인물은 모두 그 기준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슈펀은 지나치게 지쳐 있고, 정이안은 위태롭고, 정이징은 애초에 “올바르지 않은 손”을 가진 아이다. 영화는 그들을 결핍된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왜 사회가 여성의 몸을 끊임없이 단속하고 교정하려 하는지를 묻는다.


나는 영화를 보며 ‘오른손잡이 세계’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단지 손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가 정해놓은 표준에 대한 말이다. 그 세계 안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수정한다. 더 얌전해지고, 더 정상적으로 보이려 하고, 더 무난한 사람이 되려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기 몸의 일부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적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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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이상하게도 조용한 위안처럼 남는다. 정확히 무엇이 해결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그 결말이 좋았다. 아마 영화가 끝내 이 인물들을 “교정된 사람들”로 만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파탄 난 뒤에도 사람들은 다시 살아간다. 슈펀과 정이안, 정이징, 그리고 슈펀의 새로운 남자친구는 다시 가게로 돌아온다. 국수를 삶고, 가게를 정리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거창한 화해도, 극적인 해결도 없다. 대신 영화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오래 바라본다.


세상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바뀌라고 말한다. 더 정상적이 되라고, 더 이해 가능한 사람이 되라고, 더 보기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바뀌지 않아도 되는 것들인지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아주 오래 내 왼손을 바라봤다. 어릴 적에는 고쳐야 한다고 들었던 손. 하지만 결국 평생 나와 함께 살아온 손.


생각해보면 나는 여전히 자꾸 왼손으로 세상을 만지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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