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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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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지구에 12개의 UFO가 등장한다. 외계 생명체인 ‘헵타포드’의 언어를 파악하기 위해 언어학 박사인 루이스가 파견되고, 루이스는 과학자인 이안과 함께 헵타포드의 언어 체계를 학습하며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루이스와 이안이 처음 셸(지구에 등장한 UFO를 이르는 말)에 오르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거대하고 웅장한, 인간의 기술로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물체에 들어간다는 두려움과, 일반적인 건물에 들어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입장, 중력이 다르게 적용되는 내부까지. 어두운 통로와 대조적으로 헵타포드가 위치한 곳은 밝게 빛나고 있어서, 그들이 셸에 입장하는 것은 어떤 구조물의 내부가 아니라 다른 세계로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외계인의 등장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사람들과 각지에서 일어나는 소동, 군대가 동원되어 철저하게 감시되고 있는 현장처럼 현실적인 묘사 속에서 헵타포드와의 만남이 그려지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어딘가 기묘하고 서늘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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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으스스한 첫 만남과 달리 그들의 교류는 나름대로 순조롭다. 루이스와 이안은 헵타포드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지구인들은 헵타포드의 언어를 학습한다. 서로의 언어를 배워가며 소통의 길을 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헵타포드가 사용하는 언어는 기본적으로 원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안은 “말과는 달리 도형문자엔 시제가 없다. (...) 그들의 문자에도 앞뒤 방향이 없다. 언어학자들은 이걸 ‘비선형 철자법’이라 부른다. 그래서 드는 의문 하나. 생각도 그런 식으로 할까? 두 손으로 양쪽 끝부터 어떤 문장을 쓸 경우 써야 할 각 단어를 미리 알아야 한다. 얼마큼의 공간이 필요한지도. 이들은 복잡한 질문도 2초 만에 쉽게 쓴다. 우린 그 답을 간단히 작성하는 데만 한 달이 걸린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순간, 그들의 방식으로 시간을 인식하게 된다. 단순히 미래를 아는 것을 넘어 현재와 미래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비선형적 시간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 중 유일하게 헵타포드의 언어를 이해하게 된 루이스는 그들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는 사실 영화의 시작부터 암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루이스가 딸 한나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딸의 성장을 지켜보다 그가 불치병에 걸려 사망하는 장면까지 나열한 후, 헵타포드가 지구에 도착한 첫날을 보여준다. 루이스의 과거를 보여주는 듯한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야 그것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미래의 일임을 드러낸다.

 

이처럼 루이스가 헵타포드의 언어를 이해해 비선형적 시간 속에 놓이게 되는 순간, 이것은 놀랍게도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12개국이 마음을 합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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헵타포드의 등장에 대응하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초반, 셸이 등장한 12개의 나라는 서로 협력해 정보를 나눈다. 그러나 중국이 무력 사용을 예고하며 통신을 끊자 다른 나라들도 협력보다는 단절을 선택하고, 종래에는 모든 나라들이 자기 자신만의 정보를 가지고 각자 헵타포드에 대해 알아내려 한다.


그러나 루이스가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순간, 루이스는 헵타포드를 향해 군대 동원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인민 해방군 총사령관 섕 장군을 설득해 전투태세를 철회하게 만든다. 섕의 개인 번호로 전화해 그의 아내의 유언을 이야기하며 설득했다는 내용은 루이스가 본 미래에서 이야기되고, 현재의 루이스는 그 정보를 이용해 섕을 설득하게 된다. 즉, 현재와 미래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영화 내내 헵타포드에 대한 대응 방향에 차이를 두고 단절의 길을 걷던 각국이 중국을 시작으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장면은 너무나 이상적이어서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의 극후반부에 가서야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통합이 마냥 어색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것은, 영화에서 계속해서 언어를 이해하고 상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헵타포드가 말한 '무기'는 사실 '선물'이었으나 다만 인류는 제대로 된 해석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루이스가 비로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순간 분쟁과 단절을 넘어 협력의 길이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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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한 축이 '언어'와 '화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다른 한 축은 루이스의 현재와 미래가 점점 뒤섞이다 마지막에 루이스가 던지는 질문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안, 당신의 전 생애를 다 볼 수 있다면 삶을 바꾸겠어요?"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생각한다. 이미 미래를 알고 있다면, 다른 선택을 하면 미래가 바뀌는 걸까? 아니면 무슨 짓을 해도 바꿀 수 없는 운명 같은 미래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게다가 루이스가 보는 미래는 마냥 밝은 미래가 아니다. 한나와 함께하는 시간은 분명 아름답고 행복했겠지만 결국 남편이 떠나고 아이가 병에 걸려 죽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이미 끝을 알고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그 이야기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

 

루이스의 질문에 이안은 이렇게 답한다.

 

 

"그보단, 내가 요즘 느끼는 걸 얘기할게요. 난 평생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살았어요. 근데 요즘 제일 놀라운 건 그들을 만난 게 아니고 당신을 만난 거예요."


 

이안이 이야기하는 것은 미래가 아니다. 현재다. 루이스가 던진 질문과는 약간 다른 결의 대답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것이 정확한 대답이라고 느꼈다. 미래의 이야기가 어떠하든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현재이다. 지금의 내가 하고 싶은 것, 지금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그리고 루이스의 행복이 이안과 함께 하는 것에 있기에, 루이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의 시작을 선택한다.

 

외계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이 영화가 인간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외계인의 '선물'을 통해 여러 나라의 협동을 끌어내고 있어서, 미래를 알면서도 다시 한번 같은 선택을 하는 용기를 보여주고 있어서. 이 모든 것들이 외계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것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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