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는 마지막의 마지막을 버틴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주어진 과제와 시험을 해치우고 있다.
대학교에 막 입학했던 새내기 시절, ‘3학년’은 왠지 모르게 대단해 보였다. 실제로는 몇 살 차이 나지 않지만, 노트북과 아이스커피를 손에 들고, 숄더백을 멘 채 바쁘게 교정을 누비는 모습에서 묘한 선배미와 어른스러움이 느껴졌다. 학교에 적응하기도 바빴던 내게, 능숙하게 학교를 돌아다니며 포트폴리오를 쌓는 그들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어느새 내가 그 3학년이 되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노트북을 든 건 맞지만, 바쁘게 걷는 모습은 멋지다기보다 정신없는 일상에 지친 좀비 모습에 가깝다고 느낀다. 오히려 예쁘게 꾸미고 학교에 오는 1학년 새내기들이 더 경이롭게 느껴진다.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며 매 학기를 쪼개어 단편적으로 매꾸며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그 조각들이 모여 긴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나간 시간을 자주 반추하면 괜히 미련한 곰이 된 기분이 들기에 되도록 피하려 하지만) 왠지 이번 만큼은 숨 가쁘게 달려온 3년을 잠시 되돌아 보아야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갑작스레,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시시하다고 볼 수도 있고, 잘 버텼다고 볼 수도 있는 지난 시간들을 하나의 챕터로 묶고, 또 언젠가 다가올 ‘다음’을 위해 준비하고 싶었다.
그리고 휴학을 결심한 뒤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지금 살고 있는 자취방의 계약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문득, 지난 대학 생활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나의 자취방, 오롯한 나의 첫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House와 Home
한국어에서 ‘집’은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국어사전을 찾아본다면 맨 상위에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는 정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제사상에 새우튀김을 올린다’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집’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가족과 내력, 가정환경을 아우르기도 한다.
영어에서는 이를 좀 더 명확히 구분한다. ‘House’는 물리적인 건물로서의 집을 뜻하고, ‘Home’은 정서적 공간이자 가정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집이라는 단어는 비단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서 그 속을 채우는 관계, 정서, 기억과 같은 무형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오늘날 ‘집’은 자산으로서의 가치와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풍요를 위한 수단이자 계층을 구분 짓는 지표로서 작동하는 현실이 때로 씁쓸하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는, 단순히 머물 공간을 넘어서 ‘나의 삶에 진정으로 어울리는 집’—나만의 가치와 리듬을 품을 수 있는 보금자리—를 찾는 일에 더욱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삶에서 중요한 과업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거쳐 온 House들
기숙사 생활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곳은 내게 home이 될 수 없었다. (내가 늘 말하듯, 매주 기숙사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마음과도 같았다...)
아는 친구 하나 없이 낯선 환경에 혼자 들어가, 처음 보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엄격한 규율에 맞춰 살아간다는 일은 어린 나에게 너무나 벅찼다. 매번 ‘후회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에는 다 컸다고 생각했지만) 내 자신이 너무 어리고 미성숙했다.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많이 느꼈다. 게다가 낯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부모님께 더 이상 투정도 부릴 수 없고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섭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입시 스트레스에, 친구이자 경쟁자인 이들과 함께 보내야 했던 하루하루는 내게 더 큰 부담이 되었다.
기숙사는 몸과 마음 모두가 쉬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아침마다 방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던 기상송에 정신없이 눈을 뜨고, 새벽녘에야 겨우 돌아와 잠만 자던 곳. 언제든 아래층의 독서실로 공부하러 내려갈 수 있게 마련된 공간이라는 느낌은, 오히려 쉼이 아닌 또 다른 압박이었다. 잠시 숨 고를 틈조차 없는 일시적인 머무름,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단점만 보였던 기숙사 생활도, 시간이 흐른 지금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떠오른다. 친구들과 나눴던 소소한 장난, 몰래 웃었던 밤들, 사감 선생님의 눈을 피해 시켰던 배달 음식까지—생각해보면 충분히 즐겁고 따뜻한 순간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그곳은 내가 ‘주어진 환경만을 탓하지 않고, 그 안에서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법’을 처음으로 배운 공간이었다. 완벽하지 않았고, 낯설고 불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적응해 나가며 성장할 수 있었던, 값진 출발점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나만의 첫 공간
서울 소재의 대학교에 입학하며, 지방에 살던 나는 자연스레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낯선 도시의 작은 방. 이십대의 시작을 함께한 새로운 house였고, 동시에 나만의 home을 가꾸고자 처음으로 노력했던 공간이었다.
서울에서 맞이한 첫 밤, 혼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던 순간은 지금도 또렷하다. 어색하고 두렵고, 또 조금은 설레었다. 직접 작은 서랍장을 조립하고, 간단한 요리를 해보며 삶을 스스로 채워나가는 과정은 기숙사 생활에 비해 훨씬 높은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처음으로 내 일상에 주도권이 생긴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온전히 나의 에너지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은 때로 버거웠다. 나만의 공간이라는 점은 분명 편안했지만, 동시에 끝없이 나태해질 수도 있었고, 생활의 리듬을 놓치면 쉽게 깊은 우울로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장소이기도 했다.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는 현실은 자립심을 키워주었지만, 그만큼 헛헛함도 커졌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끔은 그런 공간이 절실히 필요해 도망치듯 숨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매번 느낀다. 나 혼자만의 에너지로는 이 거대한 일상의 여백을 채워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따. 누군가의 손길, 나를 챙겨주는 존재로부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도 배웠다.
앞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시점이 온다면, 단순한 원룸이 아닌 더 넓은 생활 반경을 가진 집에서 어떤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게 될지, 첫 자취는 그 가능성을 잠시나마 미리 경험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약 3년간의 자취는 단지 혼자 사는 생활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익숙했던 것들과 떨어져 나와, 비로소 스스로를 이해하게 되는 조용한 성장의 공간. 그 안에서 나는 미약하게나마 더 단단해졌다.

Home Sweet Home
어쩌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본가일지도 모른다. 물리적으로는 내가 가장 자유롭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고, 정서적으로는 내가 가장 편히 기대어 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맛있고 따뜻한 밥 냄새, 익숙한 풍경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집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다.

가끔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고, 이것저것 앙탈을 부릴 때면 스스로도 민망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한 기분을 애써 부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그렇게, 조금은 철없는 아이로 남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내가 대구의 집을 가장 큰 안식처로 여기는 이유는 그저 내가 편안함을 느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곳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꼭 대구가 아니더라도 —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그곳이 바로 나의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어주지 않을까.
지구 상의 어디든, 혹은 지구 밖의 어딘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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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공간의 의미는 모두에게 다를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주거 문화가 확산된 시대에는, 집이 더 이상 ‘소유’의 개념이 아닌 ‘대여’의 대상으로 여겨지면서 전통적인 집의 의미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하지만 ‘까막 까치도 집이 있다’는 속담처럼, 인간에게 집은 여전히 정서적·육체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간의 인식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 하나로, 억지로 눈을 비비며 아침 알람에 일어나고, 출근과 등교라는 고된 일상을 견뎌낸다.

그렇다면 나에게 진정한 집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 질문에 쉽게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어쩌면 그 답은 거창한 공간이 아니라, 나를 조금 덜 외롭게 하고, 조금 더 나답게 만들어주는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만의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 저녁, 나는 나의 작고 아기자기한 방에서, 이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 나를 위해, 먼지를 털고 새 바람을 들여야 겠다. 집이라는 이름 아래, 또 한 번 마음을 정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