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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라는 이름을 듣고 먼저 떠오르는 것은 주로 위대한 문학 작품일 것이다.

 

나 역시 톨스토이를 처음 접한 것은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였다. 러시아라는 먼 나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마치 별세계의 이야기 같았고, 그렇게 톨스토이는 내게 몇 편의 작품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가로서 뇌리에 새겨졌다.

 

그러한 톨스토이가 쓴, 노동의 문제를 다룬 책을 읽기 전 노동의 문제를 접한 나의 경험에 대해 먼저 말해보고자 한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에 대해 배웠던 시점인 것 같다. 당시의 노동 시간은 현재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인적이었고, 그토록 살인적인 노동 시간과 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은 서서히 죽어나갔다. 당시에는 꽤 어린 나이였기에 노동이라는 단어가 잘 와닿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블루칼라의, 공장 노동자들을 상상했지만(써놓고 나니, 무척이나 편협했던 것 같다.) 노동이라는 단어가 체감되기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십년 전과 다를 바 없이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다양한 이유로 다치거나 사망했고, 노동자는 단순히 블루칼라 직종만이 아니라 나를 가르쳐주던 선생님, 엄마와 아빠, 친한 언니에게도 해당되는 단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사람들은 악습이나 제도적 제약을 끊임없이 타파하려 노력하지만, 아직도 쳇바퀴 같은 노동 환경 속에서 죽어가는 걸까?

 

톨스토이는 이러한 점을 [거대한 죄]에서 시사한다. 그의 후기 사상은 러시아 사회와 제도에 대한 강력한 윤리적인 고발과 더불어, 대안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는 현 사회에서조차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현대의 노예제'를 고발한다. 노예제는 옛날처럼 단순히 쇠사슬로 인간을 구속하는 구조가 아니다. 교묘하게 법과 제도로 포장했지만, 결국은 노동자의 삶과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는 구조로서 자행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토지 소유권, 재산권, 조세 제도 등 합법화의 명목 아래 유지되고 있기에 노동자가 노예제의 형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 또한 알지 못하게 만든다.

 

그는 "일하지 않는 자의 토지 소유보다 큰 죄는 없다"고 단언하며, 노동자가 태어난 땅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은 사회를 비판한다. 이러한 톨스토이의 비판은 단순히 체제를 뒤엎자는 외침으로 끝나지 않는다. 톨스토이는 정부 주도의 토지 기부나 강제 몰수형 토지개혁 등, 당대의 여러 현실적 해법들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는 정부의 몰수와 재분배 방식이 결국 또 다른 권력 구조를 만들 뿐이며, 새로운 지배계급의 형성을 초래할 것이라 경고한다.

 

그러한 우려는 이후의 사회주의 실험들이 보여준 결과를 놀랍도록 정확히 예견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특히 시사할 만하다. 그러나 톨스토이 사상의 핵심은 제도적 처방만이 아니라 의식의 혁명에 있다. 그는 모든 권력이 폭력에 기반하고 있으며, 조직화된 폭력인 국가를 없애는 길은 오직 개인의 ‘종교적 자각’과 ‘도덕적 각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톨스토이는 정부가 사라져도 인간의 내면에 윤리가 자리한다면 무정부적 혼란은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이러한 톨스토이의 사상은 거의 15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느끼기에는 다소 어렵거나, 이상적이고, 혹은 과격하게까지 느낄 수 있다. 나 또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윤리에 무언가를 의존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했고, 정부를 없애기보다는 되려 복지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채로 이 책을 읽었다.

 

그러나 [거대한 죄]는 단지 토지 문제나 경제 불평등에 대한 이상적인 내용을 담은 비판서를 넘어, 우리가 노동자로서, 그리고 하나의 국가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성찰을 촉구하는 철학적 선언이다.

 

톨스토이가 말하는 ‘거대한 죄’란, 누군가를 강제하고 지배하는 구조에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우리 모두의 자기 기만이다. 그것이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위험한 악이라는 자각으로부터 톨스토이가 말하는 혁명은 시작된다. 혁명은 깃발과 횃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야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물론 광장으로 나가 배우고 듣는 것이 정말 크다는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는 없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몸담고 있는 구조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개선해야 할 방향성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작점을 톨스토이의 [거대한 죄]와 함께 한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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